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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끝나지 않은 세월

영혼을 위로하는 '씻김굿'과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법

하민지 2017년 04월 03일

이 기사에는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image 사진=ⓒ자파리 필름, 설문대영상, 영화사 진진

영화 오프닝. 쏟아진 제기 그릇이 나온다. 그리고 영혼을 모시는 '신위', 영혼이 머무는 '신묘', 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눠먹는 '음복', 신위를 태우며 영혼을 보내는 '소지'에 맞춰 영화가 전개된다.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는 '씻김굿'의 순서에 따라 영화를 구성한 것이다. 영화 엔딩. 오프닝에서 보여줬던 제기 그릇을 다시 보여준다.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은 4.3 사건으로 희생당한 영혼을 위해 영화를 통해 제사를 드린다. 영화에 제사 장면이 나온다는 말이 아니다. 씻김굿의 차례에 맞춰 시퀀스를 구성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그 이야기에 희생자들이 보여준 생의 의지가 시리게 녹아있다.

군인도, 제주도민도 모두가 '피해자'

이 영화에는 진짜 '가해자'가 안 나온다. 가해자는 '섬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에 제주도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미군정이 개입해 '초토화작전'이라는 진압을 펼쳤고, 무고한 민간인 수만 명이 희생됐다.

영화에는 이런 가해자들이 나오지 않는다. 제주도민이 '빨갱이'이기 때문에 죽이는 군인과 군인을 피해 동굴로 숨은 도민들만 나온다. 군인은 쫓고 도민은 동굴로 숨는 과정 중, 생의 의지와 인간애를 보여주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제사 형식으로 위로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겉으로는 군인-가해자, 도민-피해자의 구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니다. 군인은 총을 들고 "빨갱이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수행하지만, 왜 빨갱이인지 모른다. '빨갱이'의 정확한 정의조차 모른다. 명령하는 사람이 빨갱이라고 하니까 빨갱이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들도 탈영, 보복 등으로 서로 죽인다. 도민들도 자신들이 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죽어야 하는지 모른다. 세상이 흉흉해서 그런 줄 안다.

영화는 누가 가해자인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를 한 컷도 등장시키지 않은 채 말이다. 영화는 죽이라 하니까 죽이고 죽인다 하니까 도망간 모두를 피해자로 본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이념 전쟁을 하느라 죄 없는 사람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image 순덕에게 감자를 몰래 챙겨주다 사살당한 박상덕. 사진=ⓒ자파리 필름, 설문대영상, 영화사 진진

씻김굿 마지막 단계인 '소지(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에서 신위는 쓰러진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군인 앞에서도 태워진다. 박상덕(어성욱 분)은 군인이지만 눈 앞에 있는 제주도민 순덕(강희 분)을 쏘지 못 한다. 오히려 제주도민이 왜 빨갱이냐며 의문을 품는다. 순덕은 생포된 후 감금당한다. 늦은 밤, 박상덕이 굶고 있는 순덕에게 몰래 삶은 감자를 전해준다. 그러다 김상사(장경섭 분)에게 발각되고, 박상덕은 그 자리에서 사살당한다. 엔딩씬에서 신위는 사살된 박상덕 앞에서도 태워진다.

영화는 갑이 벌이는 거대한 싸움 속에서 갑은 숨고 을만 피 흘리는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 흘린 모두를 위로한다. 비극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한 여느 한국영화와 다른 점이 이 부분이다. 보통의 한국영화는 쫓는 가해자와 쫓기는 피해자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에 집중한다. 실화가 오락거리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지슬>은 내밀한 개인사로 들어간다. 제주도민들은 동굴 밑에서 굶고 있는 돼지 걱정, 만철(성민철 분)의 연애 걱정 등을 한다. 군인들은 "폭도가 있긴 있는 거냐"며, "좆 같은 명령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라며 상부의 명령에 합리적 의심을 품는다.

생의 의지, '감자'

영화 제목의 '지슬'은 '감자'의 제주도말이다. 영화에서 감자는 생의 의지를 의미한다. 도민들은 군인을 피해 숨은 동굴에서 감자를 나눠 먹는다. 군인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자, 다리가 불편해 자식을 먼저 동굴로 보낸 노모는 감자를 끌어안고 죽는다.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동굴을 잠시 빠져나온 자식은 타 죽은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 품 안에서 익은 감자를 가지고 동굴로 돌아와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군인이 감금된 도민의 끼니를 위해 몰래 가져다 준 것도 감자였다.

image 사진=ⓒ자파리 필름, 설문대영상, 영화사 진진

이들이 감자를 통해 보여준 생의 의지는 별다른 게 없다. 살고자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소박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다였다. 순덕을 쏘지 않은 박상덕에게 전우인 동수(김형진 분)가 "쏘지 그랬냐. 저게 사는 거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자, 상덕은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며, "그래도 사는 게 나을지도 몰라"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이들에게 생의 의지는 그저 '사는 것', 그뿐이었다. '감자'로 형상화된 생의 의지는 씻김굿의 제의를 통해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곡 <이어도 사나>로 이어진다.

<이어도 사나>는 제주민요다. 제주 사람들이 바다에서 물질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삶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제주바당에 배를 띄왕 노를 젓엉 혼저나가게
(제주바다에 배를 띄워 노를 저어서 어서야 가자)
이승질 저승질 갓닥 오랏닥 숨 그차지는 숨비소리
(이승길 저승길 갔다 왔다하며 숨 끊어지는 숨비소리)
좀녀 눈물이 바당물 되언 우리 어멍도
(해녀 눈물이 바닷물 되어 우리 어머님도)
바당물 먹언 나도 낳곡 성도 나신가
(바닷물 먹고 나도 낳으시고 형님도 낳았는가)
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 어머님의 어머님의 어머님들)
이어도 가젠 살고나 지고 제주 사름덜
(이어도 가려고 살고자 하네 제주 사람들)
살앙 죽엉 가고저 허는게 이어도 우다
(살아서 죽어서 가고자 하는곳이 이어도입니다)
<이어도 사나> 中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의 이상향이다. 이어도까지 가서 바닷물을 먹어야만 가족을 부양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어도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과 바다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다.

이 민요에서 표현된 삶이란 영화에서 '감자'가 보여준 삶과 다르지 않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제주의 바람을 맞고 바다에 생을 적시는 것이다. 영화는 핵심 소재인 감자와 엔딩크레딧의 <이어도 사나>를 통해 강대국의 이념 전쟁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이런 방법으로 표현하고 기억한다.

끝나지 않은 세월

4.3 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배상은 아직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때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문이 발표됐고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최대 8만 명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중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1만 여명 뿐이다. 또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아직 행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동안, 매년 4월 3일에 한 번도 제주도를 찾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과거를 헤집고, 상처를 뒤집어서 갈등을 선동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미국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영화는 201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이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 오멸 감독은 "미국에서 상영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의의를 두었다"고 말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후손들이 영화를 제작하고, 매해 추념식을 가지는 동안 사태 해결에 책임 있는 자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69번째 4.3 추념일이 돌아왔다. 제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지슬'의 세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커버 사진=ⓒ자파리 필름, 설문대영상, 영화사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