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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변한 트럼프와 한반도: 우리는 과연 얼마나 걱정해야 하는가? (2)

박상현 2017년 04월 12일

어느 독재자의 초상

무력으로 나라를 지배한 독재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 중 하나가 지도자의 지위를 세습하게 될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큰아들을 지목했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아들이 그의 뒤를 잇게 되었다.

뜻밖의 결론이었지만, 주변국에서는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을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형제와는 달리 유럽에서 오래 살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문화와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했던 그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국가를 좀 더 개방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나라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고, 국민은 기회만 있으면 국경을 넘어 탈출했고, 경제는 회생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피폐해졌다.

하지만 최악은 자신의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었다. 서방세계에서는 그 나라의 인권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고, 각종 제재가 가해졌지만, 새로운 독재자는 그럴수록 더욱더 철권정치를 강화했다.

시리아의 지도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이야기이다.

현대 독재국가의 패턴

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동시에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두 나라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가 우연일까?

정도는 달라도 많은 현대의 독재 국가들이 비슷한 세습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들도 유럽의 명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본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독재정치를 도왔을 뿐 모국의 개방이나 민주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중동의 숱한 왕정국가들도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image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사진=AP

비슷한 패턴이 생기는 원인은 이렇다: 서구의 민주화된 선진국들은 국내의 정치적 이상으로는 독재 국가들의 폭정을 용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개별 국가는 하나의 이상인 동시에 실재이다. 어떤 정부체제도 경제적 뒷받침이 없이 생존할 수 없음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을 비롯해 모든 사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가령 석유의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외국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그 조건이 독재의 용인이라고 해도 국내 정권의 보호를 위해서라면 감내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 독재 국가들의 존재 조건이다. 많은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독재 국가들에게 민주화를 요구하고, 정권을 교체하려고 으르렁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식들을 런던이니, 제네바니 하는 선진국의 도시로 유학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해관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독재자였어도 미국의 카터는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못했고, 레이건은 전두환, 노태우라는 군사독재자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는 미국 문화원을 대학생들이 점거하거나, 빌딩에 방화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졌는데, 바로 미국의 그러한 독재자와의 거래에 대한 항의였다).

그러는 중에 나이든 독재자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후계자를 지명하고, 대개는 아들이 그 뒤를 잇지만 젊은 나이에 경험한 서구 민주주의의 기억은 독재자로서 누릴 수 있는 안위에 비할 바가 아니며, 오히려 경험이 없는 젊은 독재자는 아버지보다 더 심한 폭정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러시아 영향력의 남방 한계선

한국의 독재자들이 중국과 소련의 동진을 막으려는 미국의 비호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시리아는 러시아의 보호를 받아왔다. 흔히 ‘-스탄’으로 끝나는, 구소련의 영향 하에 있던 나라들의 서쪽에 붙어있는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의 그룹에 속한 국가가 시리아이다. 하지만 그런 “러시아 영향력의 남방 한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이라크가 미국에 무너졌고, 아프가니스탄 역시 미국의 전쟁터가 된 마당에 IS를 소탕한다는 이유로 미국이 중동 정세에 개입하는 상황에서 시리아는 푸틴이 지역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이다.

image 이미지=구글 지도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무너진 경제 속에서 국내 반군에 이어 IS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은 사실상 모스크바로부터 오는 군사적 원조에서 온다. 반정부군을 상대로 폭격을 하고 민간인을 살상해도 미국이 도울 수 없는 이유는 러시아군이 사실상 시리아의 주둔 해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알아사드의 정부군을 공격하다 보면 러시아군을 공격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미국과 러시아의 전면전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의 미군의 미사일 공격은 일부러 러시아군이 주둔하지 않은 공항들만을 노렸고, 그렇게 하면서도 미국은 공격 직전에 러시아에게 사전 통보를 했다).

게다가 알아사드를 공격하는 반군은 종종 (미국이 반테러 전쟁을 벌이고 있는) IS와 종종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도 워싱턴이 쉽게 반군을 돕는 공습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중동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람은 중동문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미국 외교관들의 농담은 그래서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패턴에서 벗어나 버린 북한

북한도 한때 지금의 시리아와 다르지 않았다. 구소련의 영향력의 동쪽 끝이었고, 미국으로서는 태평양을 걱정 없이 확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의 동진을 막아야했고, 그 교두보가 일본과 남한이었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김정은까지 흔들림 없는 독재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소련과 중국의 비호였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본주의로 돌아서면서 한국, 미국과의 교류에서 더 큰 국익이 발생하면서 ‘거대한 세력의 교두보’로서의 북한의 존재 조건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도록 압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북한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하자 경제지원을 줄이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졌으며, 러시아는 이미 대북한 영향력을 포기한 상황이다. 즉, 북한은 이제 현대 독재국가의 존재 조건, 혹은 패턴에서 벗어난 하나의 아웃라이어(outlier)가 되어버렸다.

image 북한군, 사진=AP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과 (미국 서부해안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개발시설을 폭격하는 것을 막고 있는 유일한 장애물은 남한과 중국의 반대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하려던 계획을 김영삼 정권이 막았던 이유는, 북한이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남한을 공격할 경우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패트리엇 미사일을 남한에 배치했지만, 그 성능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온 트럼프가 돌연 태도를 바꿔 오바마 정권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직접 공격을 한 상황은 이제까지의 모든 가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그것이 요즘 나돌고 있는 ‘4월 위기설’의 배경이다.

커버 사진=AP


돌변한 트럼프와 한반도: 우리는 과연 얼마나 걱정해야 하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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