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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임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1)

대한민국, 게임이라는 거울 앞에 서다

고준우 2017년 04월 18일

변화하는 공간 인식

게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꾼다. 이는 단순한 음모론적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다. 작년 여름에 공개돼 최근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증강현실게임 포켓몬GO를 생각해보자. 포켓몬GO는 우리가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전통적으로 장소를 인식하는 방법은 시선을 잡아끄는 특징적인 사물, 혹은 랜드마크(landmark)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포켓몬GO는 증강현실을 이용해 공간에 전에 없던 가상적인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장소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어디에 포켓스톱이나 체육관이 있는지, 어디에서 어떤 포켓몬을 잡을 수 있는지가 주요한 관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생활을 바꿔놓는다. 먼저 공간을 둘러싼 상호작용의 양상이 바뀐다. 과거에 사람들은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공간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 특히 해당지역의 특색있는 랜드마크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예컨대 안양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와는 온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SNS 등을 통해 희귀한 포켓몬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여행을 다녀온 친구와 랜드마크나 맛집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특정 지역에서만 잡을 수 있는 포켓몬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아예 기존의 랜드마크를 밀어내고 포켓몬에 대한 내용이 주된 관심사를 형성하기도 한다. 포켓몬GO에 대한 제한이 풀리기 전 ‘포켓몬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날렸던 속초가 그렇다.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전에는 없던 새로운 요소가 추가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간 자체도 재구성된다. 공간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려는 자본의 전략 등이 개입하면서 공간의 광경(spectacle)이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 예컨대 이동통신사 대리점과 편의점에 붙어있는 포켓스톱 안내판, 포켓몬GO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선로에 빠지지 말라는 지하철 경고문 등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물론 이것은 아주 단순한 예에 불과하다.

세대가 공유하는 공통 경험

대한민국에서 게임이 갖는 의미 역시 각별하다. 대한민국에서 게임은 밀레니얼 세대가 공유하는 하나의 공통 경험이자 또래문화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한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를 보면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게 게임이 아주 익숙한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할 경우, 주여가활동(1순위) 비중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순위는 3위(4.9%)이다.

그러나 이를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게임이 전체 3위라는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10-30대의 역할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게임의 비중은 10대에서는 2위(18.1%), 20대와 30대에서는 3위(각각 11.3%, 6.1%)를 차지하다 40대 이상부터 5위 이하(3% 미만)로 떨어진다. 또한 게임이 여가시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점점 증가하고 있고, 젊은 세대일수록 여가활동으로서의 게임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터넷과 더불어 밀레니얼 세대가 그 이전 세대와 여가생활을 향유하는 방식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하는 시장에 힘입어 게임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문화 콘텐츠들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당장 소설만 하더라도 과거엔 만화나 소설을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그 방향이 뒤바뀌어 《달빛조각사》, 《소드 아트 온라인》, 《열렙전사》 같은 인기 만화나 소설들은 게임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image 이미지=네이버 웹툰 '열렙전사'

인터넷 방송에서도 게임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머(streamer: 인터넷 방송의 실시간 송출을 말하는 ‘스트리밍’을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게임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국들이 유명 스트리머와 계약하기 위해 서로 경합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게임메카’, ‘인벤’과 같은 게임 전문 웹진이 일일 방문자수 100만 명에 육박하는 등 강세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전병헌 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의 경우, 2013년부터 한국e스포츠협회의 회장에 취임해 게임문화 조성에 우호적인 활동을 주도했다. 전 의원은 이를 계기로 누리꾼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게임이 뭐라고?

이처럼 게임은 어느덧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경제, 사회 측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게임이 뭐라고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게임이란 말 자체는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정작 게임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는 답하기가 어렵다. 게임의 종류는 너무나도 다양해서 얼핏 봐서는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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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핵심은 ‘놀이’와 ‘규칙’이다. 첫째로 게임은 놀이다. 놀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다. 게임은 생존이나 부의 축적을 위해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과는 다르다.

둘째로 게임은 그 중에서도 ‘규칙이 있는 놀이’다. 『놀이와 인간』을 쓴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 1913-1978)에 따르면 놀이는 규칙의 유무, 의지의 개입 여부를 중심으로 4가지로 구분이 된다. 경쟁놀이(agon)는 규칙 하에서 서로의 의도와 실력을 견주는 놀이를 말한다. 우연놀이(alea)는 정해진 규칙 하에서 우연적인 요소가 목적 달성에 중요하게 개입하는 놀이를 말한다. 모방놀이(mimicry)는 소꿉장난처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즐기는 놀이를 말하며, 현기증놀이(ilinx)는 통제되지 않는 움직임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아찔한 스릴을 느끼는 놀이를 말한다. 게임은 이중에서도 경쟁놀이와 우연놀이의 성격을 뚜렷하게 갖는다. 게임은 특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참가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규칙을 무시하는 순간부터 게임은 성립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게임이 우리를 매혹하는 핵심이 놓여있다. 공정성과 안정성이 동시에 보장되기 때문이다. 강요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규칙에 동의하기 때문에 게임의 규칙은 공정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합의된 규칙에 따라서 서로의 행위에 대해서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이 형성된다. 이와 같은 공정성과 안정성의 기초 위에서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목적을 성취하면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왜 우리는 RPG에서 즐거움을 느낄까? 먼저 RPG는 그에 개입하는 자신의 역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직업, 내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현실적 제약이나 필요로부터 벗어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또 한편 RPG는 노력한 만큼, 들인 만큼 보상 받을 수 있다는 안정성을 담보해준다. 우리가 사냥에 투여한 시간만큼 경험치는 정직하게 오른다. 열심히 투자해도 그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실에 비해 RPG는 훨씬 매력적이다. 이는 비단 RPG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발견되는 요소이다.

image 이미지=리니지

한편 게임은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게임 역시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사회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당대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규칙들을 반영하고 이를 통해 사회구조를 재생산·강화하거나 변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게임이 마치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예컨대 체스와 장기의 원형이 된 인도의 차투랑가(Chaturanga)는 고대 인도의 병법과 전투대형을 그대로 모방하여 만들어진 게임이다. 차투랑가는 사회적 현상을 모방해 만들어진 구성물이자 동시에 그를 통해서 사회를 이해하고 학습하도록 도움으로써 그 사회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매체가 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까지 논의한 게임의 핵심에 정보기술의 발전이라는 맥락이 더해져 완성된다. 정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컴퓨터가 가정에 보급되고, 전자기기를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면서 비디오 게임(Video Game)의 이미지가 게임 위에 덮어씌워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연작 시리즈에서 지칭하는 ‘게임’ 역시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즐기는 ‘비디오 게임’을 지칭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게임이라는 거울 앞에 서다

게임이란 ‘(컴퓨터를 통해 즐기는) 규칙을 가진 놀이’로서,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게임문화가 어떻게 밀레니얼 세대의 주류문화로 부상하게 됐는지를 살펴보면, 그 이면에 놓인 한국의 사회적·경제적 구조, 그리고 게임문화를 통해 형성되고 있는 신세대의 의식적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또 게임이 어떻게 사회구조를 재생산하거나 강화하는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임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면, 새로운 모습의 게임을 상상해 봄으로써 사회에 대한 상상력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Deepr는 <우리는 게임으로 세상을 인식한다>연재를 통해 이 질문들에 답해 보려 한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게임의 플레이어다. 우리가 만들고 동의한 적 없는 규칙 속에 던져졌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러면 이 게임의 룰에 대해서 우리 플레이어들이 할 말이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서 이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보자. 자, 이제 로딩은 끝났다!

커버=Glenn Carstens-Pe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