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청년의 집, 새로운 혐오시설

[밀레니얼 어젠다 11] 청년주거 ①

정인선 2017년 04월 20일

"기자님도 뉴스 보셨으니까 아시죠. 얼마 전에 인천에서 정신에 이상이 있는 17세 아이가 8살 짜리 초등학생 데려다 살해한 일이 있었잖아요. 신원 보장도 안 되는 대학생들이 행복기숙사에 들어와서 우리 아이들도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누가 책임지나요. 여성이 밤길을 지나다 낯선 남성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그 남성이 '왜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냐'고 화를 낼 수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약자로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을 알아달라는 겁니다." 김형재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행복기숙사 추진 반대 위원회 소속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주거문제는 대학의 입학과 함께 시작된다. 2016년 기준 수도권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15.1%에 불과하다. 4년제 대학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20.1%다. 교육부는 대학생들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행복기숙사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교 내에 기숙사를 지을 만한 부지가 많지 않은 터에, 학교 바깥에 기숙사를 지어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2014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문을 연 홍제동 행복연합 기숙사가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2015년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 후문 인근의 공터를 매입했다. 인근 대학 학생 751명이 거주할 수 있는 연합기숙사 건립 사업을 한국사학진흥재단에 위탁했다. 재단은 지난해 4월 성북구에 건축허가 접수를 신청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 8월 성북구 도시계획위원회는 주민설명회를 개최한 뒤 건립 여부를 결정하라는 중재안을 냈다. 재단과 구청이 지난해 9월부터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주민설명회와 민원회의를 개최했지만 주민들을 설득하기는 커녕 회의가 제대로 열리지도 못했다. 동소문동 행복연합기숙사 건설 계획에 참여한 홍제동 행복연합기숙사 윤병춘 행정실장은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회의장에 들어와서 의견을 펼치는 대신 회의장 밖에서 시위를 하며 일방적으로 주장을 펼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반대위원회에 돈암초등학교 학부모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김형재 씨는 "반대한다는 것 자체가 주민들의 의견이므로 의사 표현을 충분히 했다."고 반박했다. 결국 지난 2월에야 건축허가 승인이 났다.

청년 혐오, 기숙사를 가로막다

주민들이 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아이들의 안전이다. 18일 방문한 돈암동 해오름한신한진아파트 곳곳에는 "우리 아이들의 통학로를 공사장과 중장비에 내줄 수 없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행복기숙사 건립 예정 부지가 돈암초등학교 후문과 불과 5m 너비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고, 이 길이 4000여 세대가 거주하는 해오름한진아파트와 돈암초등학교를 잇는 통학길이어서 학생들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image 4월 18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해오름한신한진아파트에 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정인선

image 4월 18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해오름한신한진아파트에 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정인선

반대 주민들이 주장하는 안전 문제 뒤엔 청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숨어 있다. 반대위원회 총무 유정분 씨는 "대학생들은 성인들이니 자유분방하게 행동할 수 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울 수 있고 애정행각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느냐"라고 주장했다.

김형재 씨는 "신원을 보장할 수 없는 외지인들이 들어오면 주민들은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지역사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대학생들이라면 몰라도, 연고가 없는 곳에 나와 사는 대학생들은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아도 잃을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나도 대학을 다녀 봐서 대학생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한지 안다. 내가 봤던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다 그랬다. 아마 내가 바깥에 나와 살았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다." 김 씨는 "기숙사에 공실이 발생하면 재단이 임대 사업을 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초등학교 앞에 여관을 짓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보다 앞서 지어진 홍제동 행복연합기숙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상생의 방법을 마련했다. 건물 관리인, 구내식당 조리원, 청소 인력 등을 지역 주민들 가운데 채용했다. 체력단련실과 회의실, 구내식당 등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중학생들과 기숙사 거주 대학생을 연결해 주는 멘토링 사업도 진행한다. 지난해부터 행복기숙사 거주 대학생과 멘토링을 진행 중인 한 중학생의 어머니 구은미(가명)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유정분 씨는 "그런 건 주민들이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유 씨는 "요즘 엄마들은 다 자기 자녀의 수준에 맞는 학원을 보내려 하지, 공짜로 공부를 가르쳐 준다고 해도 좋아할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형재 씨도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는 대학생들에게 아이를 가르치게 하거나, 대학생들이 사는 기숙사에 아이들이 드나들게 하는 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동소문동 행복연합기숙사에도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유정분 씨는 "우리는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image 행복연합기숙사가 들어설 예정인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공터는 수년 전부터 주민들에 의해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정인선

'행복'이란 이름이 부르는 분쟁

언론도 거들었다. 머니투데이는 동소문동 행복기숙사 사업이 재산세 등 세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북구청이 건축 허가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대체로 대학생들의 경우 재산세를 직접 낼 정도의 독립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기존 거주민들을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행복기숙사 만이 아니다.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도 가는 곳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애초 국토교통부는 서울 양천구 목동의 유수지에 행복주택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법적 소송까지 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2015년 7월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지정을 해제해야 했다.

2012년 서울시는 광진구 구의동에 행복기숙사 건립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그뒤 2015년 11월 행복주택 건립 계획이 세워졌다. 2016년 상반기까지 사업 승인을 받고 2016년 하반기 착공 예정이었지만 2017년 4월 현재까지 사업계획안이 서울시의회에 계류중이다.

2015년 8월 28일 구의동 행복주택 건설 주민설명회에 참여한 청년주거운동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임경지 위원장은 "당시 주민설명회에서 행복주택의 필요성을 설득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한 시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공공기숙사를 비롯해 청년 주거 문제를 둘러싸고 계속돼 온 갈등이 행복기숙사 주민설명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당시 분위기를 기억했다. 주민들은 "이제껏 피땀 흘려 산 집인데 행복주택으로 날아가면 책임질거냐. 이 무슨 도둑놈 심보냐", "청년 주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알지만 왜 하필 여기에 지어야 하냐" 등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주장을 펼쳤다.

image 2015년 8월 구의동 행복주택 건설 주민설명회에 참여한 주민들이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민달팽이유니온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물러설 수 없는 대립

거꾸로 청년의 이미지가 권리를 얻어내는 무기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인 청년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성북구와 성동구, 강동구 등 지자체가 SH공사, 서울지방중소기업청과 함께 지은 자치구 맞춤형 임대주택 '도전숙'이 대표적이다. 도전숙은 입주 자격 조건을 예비 창업자 또는 1인창조기업으로 한정했다.

청년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정책 하에서는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창업가 등 사회가 바라는 긍정적인 면모를 갖춘 청년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그 바깥에 있는 청년들은 배제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장기 미취업자,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 소속 근로자 등이 대표적이다.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은 "청년 주거 문제를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한 의무를 수행하고 그 보상으로 권리를 얻는 식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미지 경쟁에서 이긴 청년만이 권리를 제한적으로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주거권네트워크가 대선 후보들에게 보낸 5대 정책요구안에 대한 답변 내용에 따르면, 답변을 제출한 3명의 후보(문재인, 안철수, 심상정)는 모두 공공임대주택의 재고를 OECD 평균의 8%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에 동의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경우 대학생과 주거취약계층에게 매달 일정 금액의 주거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정된 자원을 사회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할 현실적 방안 없이는 청년 유권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직장인 심영훈(가명) 씨는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의 경우 주거급여나 행복주택과 같은 정책의 수혜 바깥에 있다. 대학 상권에서 단합을 강하게 형성하고 있는 임대사업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도록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나현(가명)씨도 "청년들은 상속이나 증여가 아닌 한 자기 재산을 스스로 모으고 집을 마련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시대다. 성실하게 돈을 벌면 다소 고단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 가능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저서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에서 한국의 기성세대를 ‘아파트 세대’라고 정의한다. “아파트 세대에게 아파트는 복지였다.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는 직장에만 들어간다면 분양가 상한제와 청약통장제도와 저금리 대출로 싸게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언젠가 비싸게 팔아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보증을 받았다.” 청년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한 공공기숙사와 공공임대주택이 자기 앞마당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주민들을 모두 악인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아파트 세대’와,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빚을 내지 않고서는 독립된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자녀 세대 사이의 갈등이다.


  1. 청년주거
    ① 청년의 집, 새로운 혐오시설

  2. 알바노동
    ①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안 믿어요

  3. 취업실업
    ① 현대판 '관노비', 공공기관 체험형 청년인턴
    ② 중소기업 다니는 내 꿈은 '대기업 신입 이직'

  4. 출산육아
    ① 여전한 대선 공약, "돈 줄게, 낳아줘"

  5. 동물복지
    ① 표 계산 속에 살아도 산 게 아닌 동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