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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공약? 안 믿어요

[밀레니얼 어젠다 11] 알바노동 ①

윤지원 2017년 04월 21일

대선후보 5인의 공약집에 '최저임금 1만 원' 조항이 모두 포함됐다. 2017년 현재 6,470원인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는 안은 지금까지 진보 진영의 노동 의제였지만, 보수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마저도 대표 공약으로 내걸면서 19대 대선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전혀 별세계의 이야기라는 말이 나온다.

필요한 건 빵과 고기지, 피클이 아니야

19살, 수능을 치르자 마자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7년째 '알바' 라이프를 이어오고 있는 H씨를 만났다. "남자만 채용하는 피시방 새벽 알바 말고는 웬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말하는 그녀는 대학원생이 된 지금도 두 개의 주말 알바를 하고 있다. 대선후보들 중에서 '이것만큼은 지킨다면 투표하겠다'라고 할 만한 정책이 있냐고 물어보니 단박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있는 거나 잘 하라고 해요. 주휴수당도, 야근수당도 안 지켜지는 와중에 최저임금이요? 햄버거에 지금 빵과 고기가 없는데 피클을 올려줄 지, 치즈를 끼워줄 지 자기들끼리 논의하는 게 청년에게 무슨 도움이에요."

한국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은 보통 '알바생'이라고 불린다. 청년 알바 노동자를 지칭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 말은 ‘아르바이트’와 ‘학생’의 합성어다. 법적으로 노동이 가능한 나이는 만 15세부터지만, 근로기준법상 부모의 동의서 없이도 노동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만 18세 이상임을 감안하면, 여기서의 학생은 대개 대학생을 말한다. 2015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실태 및 고위험 아르바이트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50.4% 이상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알바몬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41%는 학기나 방학 구분 없이 알바를 하고 있었다. 대학생의 알바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한 달에 과외 한 개만으로도 몇십만 원을 용돈벌이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생활비를 온전히 본인이 충당하기 위해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루트는 '대학생 - 높은 학점 - 좋은 직장'이다. 아르바이트의 유무, 아르바이트의 개수, 아르바이트의 질은 당연히 대학생의 미래와 연관이 깊다.

image 이미지=알바몬

조모임이라도 마음 편하게 했다면

H씨의 경력은 '알바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다양했다. 백화점 안내데스크, 주차장, 편의점, 호프집, 베이커리, 카페, 콜센터, 패스트푸드점, 독서실, 교복판매점, 수학학원, 회사행정팀 등 7년 간 최소 14군데의 일자리를 거쳤다. 재수해서 대학에 간 이후 생활비를 혼자 벌어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주중 이틀 동안 호프집 새벽타임 알바를 했고, 주말 이틀 간은 낮 3시부터 밤 10시까지 편의점에서 카운터를 봤다. 그렇게 해서 수중에 들어온 돈은 한 달에 약 50만 원. 교통비와 통신비를 합해 내면 대략 15만 원이었다. 나머지 35만 원은 '대학생으로서 하는 모든 활동'에 들어갔다.

H씨는 인터뷰 내내 조모임에 대한 부채의식을 언급했다. 기자가 '다른 친구들처럼 놀고 싶다'거나,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해 슬펐다'같은 대답을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H씨가 특출난 모범생이라거나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금전적)부채가 (인간 관계의)부채를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대학생이 공감하는 유머 영상으로 '팀플잔혹사'가 있잖아요. 거기서 나오는 민폐 캐릭터로 꼭 등장하는 사람이 알바 여러 개 해서 조모임 빠지는 사람이에요. 조모임은 일단 다 같이 시간을 각출해서 만나야 하는 건데, '미안, 나 알바 있어' 이러는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거죠. 유머인 거 알지만, 솔직히 뼈아픈 개그예요. 진짜 알바가 생활인 사람한테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얘기죠."

image 예시 이미지=SNL '조별 과제 잔혹사'

H씨가 학과 생활과 더불어 최소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을 잘 아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같이 하는 조모임이 있던 학기에 H씨는 새벽 알바를 뛰고, 시간대를 바꿔 가며 조모임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매번 조모임에 참석했지만 어쩔 수 없던 단 한 번, 빠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친구는 교수에게 H씨가 조모임에 많이 기여하지 않았으니 조에서 빼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조모임은 학점으로 이어지고, 학점은 곧 취직으로 이어진다. 취직은 H씨에게 끝나지 않는 알바 인생을 종결할 수 있는 하나의 사다리였다. 다만 H씨의 사정이 아무리 절박하다고 한들,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취직을 바라보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 친구가 특별히 나쁜 애라서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과하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빠진 건 제 잘못이었죠. 다 이 좁은 판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려는 거잖아요. 이 상황이 그 친구를 이기적으로 만든 거고, 서로를 잔혹하게 대하게 만든 거죠. 솔직히 나는 매일 아등바등 사는 게 일상인데 조모임하기 싫어서 알바 핑계댄다 하면 많이 상처도 받아요. 하지만 나 때문에 그 쪽도 피해입었다는 걸 아니까 미안함이 커요."

"그 시간에 공부를 해" 생활비 없는 이에겐 태평한 소리

알바하는 대학생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있다. 돈이 필요하면 장학금 제도를 왜 활용하지 않냐는 거다. 적은 돈 받고 고생하면서 '그 일'할 바엔-여기서 '그 일'은 상당한 무시가 담겨 있다- 공부해서 학점을 올리라는 소리다. 언뜻 들으면 일리 있는 말이지만, '결국 힘들게 사는 건 다 네가 자초한거다'란 말과 다르지 않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H씨는 이런 소리가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장학금은 누가 받을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교통비, 생활비, 식비가 있는 친구들에게나 가능한 얘기예요. 혼자 잘하면 받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경쟁하는 중에 가장 잘하는 한 명이 받는 것, 그게 장학금이에요. 당장 생활비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몇십만 원 쪼개서 몇 달 살아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먼 가능성이란 말이에요. 내가 지금 버는 돈은 비록 힘들고 적은 돈이지만 한 만큼 하면 일단 손에 뭐라도 쥐어져요. 오늘 벌어 5만 원으로 먹고 사는 청년들이 불투명한 미래의 장학금을 선택할 수나 있겠어요?"

image 2017년 3월 25일, 경산 CU편의점사건 해결을 위한 모임의 기자회견 및 항의방문. H씨는 '편의점의 문제는 알바생이 혼자 돈통을 지킨다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안전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알바노조

이렇게 말해도 '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거다'고 말할 사람이 있다. H씨는 그들이 말하는 노력을 하는 건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H씨는 과 수석을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다음학기 등록금 고지서에 숫자 '0'이 찍혔을 때는 기뻤다. 하지만 지난 학기는 '인간적인 삶'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했는데 '과연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회의가 들었다. 과중한 알바와 공부로 몸이 깨져 결국 입원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했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라고.

"누군가에게 따져 묻고 싶었어요. '너네가 하라고 한 게 이거야? 이런 삶이었어? 그래서 내게 지금 남은 결과가 뭐지?' 이건 인간적인 삶이 아니었어요. 이게 청년의 '노오오력'인가? 거기다가 더 요구하잖아요. 젊었을 때 연애도 하라 하고, 나라에서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라 하고. 차라리 기계가 되라고 하지 왜 인간이 되라고 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냐고요."

정치가 가져가버린 텅 빈 '1만 원' 구호

H씨는 최저임금을 받는 집단 내에서도 차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주 입장에서 같은 삯이면 학생보다는 대학생을, 대학생보다는 성인을 선호한다. 결국, 알바시장에서 가장 노동가치가 떨어지는 계층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다. '문턱이 낮은 알바일수록 열악하다'고 H씨는 설명했다.

"그래도 대학생이라고 전공책이라도 끼고 다니는 친구들 말고, 기본소득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본인이 대상자임에도요.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이런 데서 발생합니다. 본인이 주휴수당과 야근수당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정책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다수예요. 다만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는 걸 꺼릴 뿐이죠."

선거관리위원회에 올라온 대선후보별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약속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년 뒤인 임기 내 인상을 언급했다.

'최저임금 1만 원'은 그동안 노동계만의 목소리였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순자 후보가 알바노동의 열악한 환경을 조명하면서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 시작이었다. 김 후보의 공약은 2013년 1월 출범한 알바연대로 이어졌다. 같은 해 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알바연대가 기자회견을 열면서 알바 노동자들의 1만 원 인상 투쟁이 시작됐다.

image 이미지=알바연대

그러나 2012년 4,580원 2013년 4,860원으로 최저임금이 5,000원도 안 되는 현실에서 1만 원으로의 인상은 말 그대로 알바노동의 이상향이었다. 반대자들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언급하면서 저임금 비정규직이 실직할 위험을 언급하며,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7월, 2017년도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자리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했지만 노동계는 1만 원 인상을 외쳤다. 그러나 노동계마저도 현실적으로 인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가격 에누리를 할 때 3,000원을 기대하면서도 5,000원을 부르듯이, 구호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1만 원'보다는 '인상'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랬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주요 대선 후보 다섯 명이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내건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 받을 만 하다. 그러나 H씨는 부정적이었다.

"최저임금 1만 원 하면 물론 좋죠. 근데 애시당초 1만 원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를 그동안 보여줬던 사람이 누가 있나요? 최저임금이 만 원인데 내가 사 먹을 수 있는 빅맥 세트가 만이천 원이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정책이란 실행 과정에서 간극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영세 자영업자들이 죽어나가는 게 문제예요. 남의 얘기가 아니거든요. 우리 엄마아빠, 삼촌들 얘기예요. 알바하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값을 못 받는 아들딸들과, 치킨집 편의점 하는 엄마아빠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정치를 누가 능숙하게 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image 서울노동권익센터 심야노동 종사자 실태조사 자료집(2016) 중 캡쳐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작년 12월 발표한 '심야노동 종사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심야노동 임금의 대부분은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임금인 야근 수당보다는 낮았다. 알바생들은 '그래도 최저시급보다는 높네'라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하지만, 고용주들은 주간 임금의 1.5배인 야근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 H씨가 최저임금 1만 원보다 기존에 법으로 명시된 수당 중 누락된 것부터 철저한 집행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올해 최저임금이 6,500원이라고 치면, 야근수당은 시간당 9,750원이어야 해요. 만약 최저임금이 만 원으로 오르면 야근수당은 만오천 원이겠지요. 지금 9,750원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데 만오천 원을 제대로 주겠어요? 기존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대선 후보의 공약에 들뜰 리 없죠."

H씨의 본명은 독특한 데다가 현재도 알바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연구실 교수에게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인터뷰이의 요청을 받아들여 익명으로 표기했다.

기사의 H씨와 사진 속 알바생은 무관하다. 커버=박상현


  1. 청년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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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알바노동
    ①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안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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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중소기업 다니는 내 꿈은 '대기업 신입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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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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