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여전한 대선 공약, "돈 줄게, 낳아줘"

[밀레니얼 어젠다 11] 출산육아 ①

윤지원 2017년 04월 25일

부부는 서른 셋, 동갑내기였다. 결혼한 지 막 1년이 넘은 그들은 자녀 계획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이리저리 계산을 하다 보면 지쳐서 '아이를 왜 낳아야 하나'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대충 올해 말, 혹은 내년 말에 임신을 할 예정이라고 둘러댔다. 서른 다섯 살 마지노선에서 아이를 품는 열 달을 되짚어 거꾸로 계산하면, 아무리 늦어도 내년에는 임신을 해야 했다. 서른 다섯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산부인과학회에서 고령 출산의 기준으로 삼은 나이다.

서른 셋의 부부에게 35라는 숫자는 다가오는,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경계선이었다. 특히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인 아내 L씨는 그러한 압박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35에서 거꾸로 세는 부부

"안 그래도 '빨리 아이를 낳으라'는 부모님과 주위의 이야기가 저를 불안하게 했어요. 35세가 넘으면 받아야 하는 검사의 종류도 많아지고 비용도 만만찮다고 하더라고요. 여자가 느끼는 고통도 커지는데다가 기형아 출산 비율이 높아진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어요."

만 35세 이상의 나이에 임신한 임신부들은 '고령 임신부'라고 해서 '고위험 임신군'에 포함된다. 고령 임신부는 유산, 난산의 위험이 높고 임신중독증, 임신성당뇨와 같은 임신 합병증에 걸릴 가능성도 높다. 출산을 할 때에도 제왕절개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전문가에 따르면 임신에 위험한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35세 이상의 임산부들은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특별히 건강 관리에 유의를 기울여야 한다. L씨와, 임신을 생각하고 있는 30대 초반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시기에 신경쓰는 이유다.

image 출처=아이사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06년 ~ 2015년 사이 임신 및 분만 경향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분만 평균연령은 30.3세에서 32.2세로 증가했다. 그 중 35세 이상의 분만비중은 13.7%에서 27.6%로 상당한 상승을 보였다. 40세 이상의 분만비중도 3%를 차지해 전체적으로 임신 및 출산하는 여성들의 연령대가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청년들을 결혼으로, 그리고 출산으로 이끌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우리 사회가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면서 청년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고 있는 추세인데다가 새로운 트렌드로서 비혼과 비출산족이 늘어나면서 정책은 주로 '돈을 줄 테니 결혼하라, 아이를 낳으라'고 생각 없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막상 독립하고 가정을 꾸린 30대 청년 부부들은 소외되고 있다.

image 일러스트레이션=Grace Heejung Kim

'부부=부모'는 틀렸다

S와 L씨 부부는 정작 아이 생각이 있으나 현실적 조건으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초보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과 정보가 없는 것이 제일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결혼하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임신이라는 숙제가 또 주어지는 지 몰랐어요. 그런데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건 계산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35살에서 역으로 계산하면 올해 말이나 내년 말에는 임신을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경제적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아요. 말하자면,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압박 사이에 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셈이에요."

기존의 보육 복지제도가 현장에서 쓸 수 없는 '그림의 떡'이란 것은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S씨는 아이를 낳는다 해도, 직장에서 그 어떤 남자 직원도 쓰지 못했던 육아 휴직을 자신이 신청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한다. 설령 1년 간 휴직이 허락된다고 해도 무급으로 버텨야 한다. L씨는 현재 2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임신하게 되면 고용 승계 여부는 불투명해진다. 임신과 출산에 따른 정당한 유급 휴가, 휴직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L씨의 언니는 임신하면서 회사와 휴직 기간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서러운 경험을 했다. 10년 넘게 다니던 곳이라 그래도 배려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사측에서는 6개월만 쉬거나 그만두는 방법 말고는 없다고 주장했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려하던 와중에 다행히 계약직이 구해져 1년 간 쉴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대신 자리를 채운 사람이 일을 더 잘 하면 복직 여부는 불안해진다.

"서울에 사는 3인 가구 평균 한 달 생활비가 355만원이래요. 아이가 생기면 아내가 몸을 푸는 동안 저는 일을 해야겠죠. 아내가 직장을 잃기 전에 회사로 돌아가게 되면 제가 아이를 돌봐야 할 텐데 아내가 벌어오는 돈만으로 셋이 생활할 수 없어요. 당연히 저까지 벌어야하는데 그럼 우리 아이는 누구에게 맡기죠?"

image 출처=서울인포그래픽스 제124호

양가 부모님들은 이미 S씨와 L씨 형제자매가 낳은 손주를 돌보고 있다. 흔히 결혼하고 나면 생기는 갈등 중 대표적인 것이 시댁에 자주 오라고 눈치 줘서 생기는 고부갈등이라고 하지만, L씨는 그런 재촉도 받지 않는다. 시동생 부부의 아이를 돌보는 시부모님이 너무 지쳐 공휴일에도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기 때문이다. 연례 가족 행사도 대폭 줄였다. 시댁은 하던 가게도 그만두고 아예 시동생의 집으로 '출퇴근'을 한다.

"실제로 당신들도 '출근', '퇴근'이라고 표현하세요. 그 집도 맞벌이기 때문에 새벽부터 자식 집으로 가셔서 아이들 유치원에 보내시죠. 동생 부부가 퇴근이 늦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밤 열한시까지 애들을 보다 그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세요. 육아 도우미로 전락해버린 어머니, 아버지도 안타깝고 아이를 제 손으로 키우지 못하는 동생 부부도 안타깝고요. 하루종일 엄마아빠 얼굴 제대로 못보는 아이들도 안타까워요. 대체 누구를 위해 이렇게 애를 키우는지 모르겠어요."

이들은 주거지 내에서 주민들과 공동 생활을 통해 육아 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임대주택'에 대해서도 찾아봤지만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서울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어 몇년 뒤 이사를 간다면 L씨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S씨는 아내가 그렇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image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임대주택 홍보 책자. 출처=위스테이

“저는 아내가 전문적인 직업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요. 어머니가 되어서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 케어하는 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삶이죠. 하지만 별개로 아내가 엄마가 아닌 개인으로서 성취하는 커리어가 있잖아요. 이 사람이 엄마들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삶의 중심이 아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결혼할 때 이미 그 점에 합의하기도 했고요.”

‘두(頭) 당 얼마' 아이를 돈 주고 사는 정부

S, L 부부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버겁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이후 몇십 년간 아이와 이어나갈 생활에 대한 부부 자신만의 충분한 준비를 할 시간이 주어지기도 전에 나이의 압박과 주위의 압력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 선봉에는 정부가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는 4월 17일 발표한 '10대 공약'에서 '노동, 여성'분야의 목표를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다.


2016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OECD 평균인 1.68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 지난 11년간 100조원 넘는 예산을 퍼부었으나,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음.


2017년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 예산으로 편성한 금액만 해도 지난해보다 8.8% 늘어난 38조4000억원이다. 저출산 대책은 출산장려금 등 출산수당과 양육수당에 집중되어 있다. 세 자녀 이상의 가정에는 국가장학금을 8분위까지 지원해주고, 임산부에게는 국민행복카드를 통해 진료비 50만 원을 지급한다. 각 지자체에서는 대표적으로 출산장려금을 통해 지역으로 인구 유입을 꾀하고 있다.

아이를 낳기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돈 문제라고는 하지만, '돈 줄테니 아이를 낳아라'식의 접근은 결국 국가가 국민을 돈 주고 사는 노동력으로 본다는 식이다. 단적인 예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둘째부터는 1천만 원을, 셋째부터는 자녀교육비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으로 걸었다. 복 중 태아를 ‘두(頭) 당 얼마'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출산은 공약이 될 수 없다. 이는 각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할 문제다.

생애 주기별 건강관리 서비스를 운영해 임신 전부터 가임기 여성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과 다르게 우리나라의 보육 제도는 임신이 확인된 이후부터 제공된다. 출산과 보육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된 예비 노동력'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이러니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저출산 대책도, 지자체의 출산 장려 정책도, 대선 후보가 발표하는 공약도 누가 더 많이 아이를 낳은 임산부에게 돈을 더 줄 것인지 경쟁하는 홍보의 장이 되었다.

image 출산이 대선 후보의 공약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사진=정경록

L씨는 정부가 사회가 달라지는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늘 두 발짝 늦은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 불황과 취업난으로 인해 청년들의 사회 진출 자체가 늦어지면서 그에 따른 '정상적인 삶의 단계'인 졸업, 취업, 저축, 결혼, 임신의 순차적인 흐름이 어그러졌다. 20대 안에서 취업, 결혼, 출산이 해결됐던 과거에 비해서 모든 단계가 30대 초중반까지 미뤄지다 보니 그 사이에 낀 청년들은 닥쳐오는 문제를 등떠밀려 숙제 해치우듯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20년을 준비되지 않은 육아에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일단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가 정상적인 가족의 이미지라고 강요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부 포스터 보면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 혹은 아빠가 아이를 목마 태우고 엄마는 그 옆에서 웃고 있는 그림만 쓰잖아요. 근데 지금은 사회가 많이 다양해졌고 그만큼 가정의 형태도 많은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이를 낳는다'가 도식화되었어요."

image 출처=보건복지부

S씨는 요즘 주위에 왜 아이를 낳냐고 물어보고 다니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위 자녀가 있는 선배・상사들은 '일단 낳으면 애가 삶의 보람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직업적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았고, 온 가족이 달려들어 아이에게만 매달려 전쟁처럼 육아를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30대의 젊은 부부는 혼란스러운 기로에 서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도 낄 수 없고, 또래의 미혼자나 비혼자 그룹에도 낄 수 없다. 하지만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결혼한 부부라면 마땅히 아이를 낳고 애 키우는 재미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는 아이를 낳아서 경제에 이바지하고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생명을 노동력으로 치환해서 보는 사회적 시선 속에서 '왜 애를 낳아야 하는지' 묻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일러스트레이션=Grace Heej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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