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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커밍아웃

박상현 2017년 04월 26일

어젯밤 대선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사회적 보수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커밍아웃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군대 내 성 소수자에 대한 문 후보의 견해를 계속 다그치자 자신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을 강하게 세 번 반복했다. 더는 이 주제에 관해 자신을 오해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문 후보가 믿는 기독교를 비유로 들자면, 마치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나는 예수를 모른다"며 세 번 부인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물론 베드로는 예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처럼 자신도 체포될 것이 두려웠던 베드로는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시 유대 지역에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예수가 군중 선동죄로 붙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한 것은, 의심받을 만한 사람의 과민 반응이었다. 홍준표는 문재인이 어떤 쪽으로 대답해도 잃을 게 없었고, 문재인은 어떻게 대답해도 누군가에게서는 비난을 받을 상황이었다. 정치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니 억울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문재인은 홍준표의 거듭된 질문에 대해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합법화(법제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준표가 동성애를 좋아하냐고 물은 것도 아닌데 굳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이유가 뭘까?

게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보수 기독교인들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연초에 보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목사들을 만나 동성혼 허용에 관해서는 그들과 같이 반대하는 입장이므로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설득하면서 보수 목사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젯밤 토론에서 문재인은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평소의 주장을 넘어, 동성애 자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먼저, 문재인의 그 발언에 문재인 캠프의 성평등위원회에 비상등이 켜지지 않았다면 임무에 등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 후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술이나 스포츠 같은 개인적 기호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타고난 성적 정체성이다. 유권자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정체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1) 특정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거나 2) 동성애가 정체성이 아닌,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동성애를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흔히 "게이문화는 서양에서 수입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수입된 것은 동성애라는 성향이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혐오다. 근대화 이전에도 동성애를 암시하는 기록은 존재했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배척하고 혐오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저 조금 다른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인식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1980년대에도 게이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친구들은 한 반 건너 하나꼴로 있었지만, 대개 오히려 인기 있고 친구도 많았다. 그저 사고나 행동이 다른 친구들이었을 뿐이고, 그렇게 치면 사고나 행동이 다른 아이들이 그들만도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교회가 1970, 80년대 미국 기독교의 (Francis Schaeffer 류의) 문화전쟁(Culture War) 논리를 수입하면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기독교회 대형화를 통한 정치세력화라는 미국 교회의 성장과정을 답습하는 과정에서 동성애는 한국 기독교의 주요 어젠다로 부상했다. 아직은 미국에서의 게이, 레즈비언 혐오처럼 폭력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점점 이슈화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와 반대 뒤에는 거의 예외 없이 보수 기독교 목사들이 존재한다.

문재인이 생각하는 차별

2006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유명한 테드 해거드(Ted Haggard)라는 목사가 사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해거드가 3년 동안 돈을 주고 성매매를 했던 게이 남성이 폭로한 것이다. 그로 인해 해거드가 시무하던 초대형교회인 뉴 라이프 처치와 그가 이끌던 동성결혼 법제화 반대단체는 멘붕에 빠졌지만, 흥미롭게도 비슷한 일은 종종 있었다. 2007년에는 동성애자들의 권익확대에 반대해온 공화당 상원의원 래리 크레이그(Larry Craig)가 공중 화장실에서 남성 사복경찰에게 성행위를 제안했다가 현장에서 경범죄로 체포된 사건이 큰 뉴스가 되었다. 그 경찰관은 미네소타의 공항 화장실에서 성매매/성행위가 잦다는 제보를 받고 잠복근무 중이었다가 상원의원을 체포해버린 것이다.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자 2009년에는 성 소수자 권익확장에 앞장서서 반대하다가 후에 위와 같은 스캔들을 통해 게이로 밝혀진 보수 의원들만을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졌다. '아웃레이지(Outrage)'라는 이 영화는 그해 트라이베카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조차도 바꾸지 못한 것이 성 정체성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 정체성이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2017년에 이야기하고 있어야 할까?

평소 "동성간 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정도에서 선을 긋던 문재인이 어제 토론회에서 홍준표의 주장에 가감 없이 동의하면서 군대 내 동성애자들이 국방전력을 약화시킨다고 하고, 더 나아가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럼요, 반대하죠"라고 말한 것은 선거전략을 따른 것이라고 퉁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 아니었다. 그는 홍준표에게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그것(동성애)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까?"하고 반문하면서 차별금지와 법제화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문재인은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반대하면서도 차별에 반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고, 그의 세계관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은 차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게 차별이 아니고 뭐냐고 물을 많은 사람에게 문재인을 대신해서 대답하자면, 역사적으로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문재인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1950년대 미국 공립학교의 인종차별금지 명령에 반발한 일부 남부 백인들이었다. 대법원이 인종분리를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렸을 때 그에 반대한 백인들의 주장이 바로 "분리는 관습이지, 차별이 아니다"는 것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문재인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면서도 차별이 아니라는 주장이나, 아직은 사회적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몇십 년 후에는 1950년대의 미국 남부 백인들의 주장처럼 어처구니없이 들릴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만들 한국사회

한국 사회에는 문재인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문재인에게 표를 줄 것이다. 그 과정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르는 한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문재인은 이제 자신의 경력에서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떼어낼 때가 됐고, 어제 대선 TV토론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다소 모호했던 태도를 벗어버리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술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완전히 꺾어버리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image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 2012년 대선에 출마하며 인권 선언을 하는 모습이다. 당시 자신의 인권 변호사 이력을 적극 어필했다. 사진=준영사랑의 블로그

그런 점에서 어젯밤의 토론은 유익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한국사회의 소수자 인권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된다. 가장 적은 소수, 가장 약한 약자를 지켜줄 수 없는 후보는 자신에게 유리하면 어떤 소수도 버릴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게 여성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다. "가슴 아픈 일에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대통령을 갖고 싶다"는 선거광고 대로 문재인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대통령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소수자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족:

이런 비판이 나오면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홍준표에게는 아무런 항의하지 않으면서 왜 노력하는 문재인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느냐"고 항의한다. 굳이 답을 하자면 이렇다: 첫째, 홍준표는 인권변호사를 자처한 적이 없다. 둘째, 아무도 홍준표를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로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은 다르다. 그는 선두에 있고, 그가 집권하면 그의 말과 약속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당신은 문 후보가 강간 모의범 보다 낮거나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