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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다니는 내 꿈은 '대기업 신입 이직'

[밀레니얼 어젠다 11] 취업실업 ②

하민지 2017년 04월 28일

image 표=하민지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4년제 대졸자, 29살, 광고회사 재직, 직장생활 1년차. 다른 점은 하나다. A씨는 연봉 2,400의 중소기업 사원이고 B씨는 연봉 4,000의 대기업 사원이다. 비슷한 일을 하고 회사만 다를 뿐인데, 회사 차이 때문에 이들의 삶의 질은 확연히 다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앞다투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A씨에게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공약은 공수표나 마찬가지다.

'대기업 신입 이직'을 위해 월 10만원으로 버티는 중소기업 신입

중소기업 광고대행사에서 1년간 근무 중인 A씨는 대선 후보가 누구인지,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 뭔지 살펴 볼 시간이 없다. 새벽 2~3시쯤에 퇴근해서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6시에 ‘칼퇴근’하는 날은 1년 중 두 달 정도라고 했다.

A씨는 경쟁 PT에 참여해 클라이언트로부터 광고를 따오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꿈은 대기업 정규직 신입 '이직'이다. 대기업에서 신입으로 입사하기 위해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는 "좀 힘들긴 하지만 대기업 입사를 위해 참고 있다"며, "실제 대기업 신입으로 들어가는 사람 중 생짜 신입은 없다"고 말했다. 또, "원래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시작선은 다르다. 중소기업이 고등학교라 치면 대기업은 대학교다"라고 체념하듯 말했다.

A씨의 현재 연봉은 2,400만 원이다. 다달이 약 180만 원 정도 번다. 그는 200만 원 중 100만 원을 저축한다. 나머지 8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그에게 제일 큰 부담은 학자금 대출 상환이다. 그는 "대학 4년 다니면서 빌린 돈이 3000만 원 정도 된다"며, "지금 한 달에 원금과 이자로 한 30만 원 정도 나간다"고 밝혔다. 월세와 교통비, 통신비,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로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10만 원 내외라고 말했다.

대통령 누가 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

이런 A씨에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늘 일에 매달려 살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출근할 때 지하철 역에서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선거기간인 걸 알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선거 기간이 짜증난다고도 했다.

image 사진=나경원 페이스북

A씨는 "며칠 전 출근길에 나경원(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출근하는 사람들 하나하나 악수하면서 내 손을 잡는데 기분이 너무 나빴다. 출근하는 사람의 촉박함을 알고 악수를 청하는 건지 어이가 없더라.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지네들이 먹고 살기 더 힘들게 만들어 놓고, 출근 늦을까 봐 계단도 세 개씩 뛰어올라가는 사람한테 악수를 청하다니. 혹시 홍준표(자유한국당 대선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한 큰 그림은 아닐까 싶었다"며 불쾌함을 토로했다.

적금은 월 150만 원, 학자금 대출은 1년이면 다 갚는 대기업 신입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1년 간 근무 중인 B씨는 아침 10시까지 회사에 출근한다. 퇴근은 7시다. 야근을 하더라도 9시 전에는 퇴근한다. B씨는 "12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날도 있기는 한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B씨와 A씨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B씨도 클라이언트에게 광고를 수주해 오기 위해 경쟁 PT에 참여하는 일을 한다. 다만, 대기업은 인하우스(대기업 그룹 계열의 광고회사)라 경쟁 PT할 때 가산점을 얻어서, 중소기업 광고대행사보다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B씨의 연봉은 성과급을 포함해 4,000만 원 정도다. 한 달에 3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 적금은 매달 150만원을 붓고 있다. 학자금 대출은 받지 않았다. 아버지 회사에서 장학금을 받거나 성적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한 덕분이다. B씨는 "학자금이 있는(아직 대출 상환을 덜 한) 친구들은 적금대신 학자금(대출)을 갚는다. 1년 정도 일하면 거의 다 갚더라"라고 말했다.

A씨의 경우 매달 자동이체되는 금액에 맞춰 학자금 대출을 야금야금 상환할 수밖에 없는 반면, B씨의 동료들은 월급을 떼어서 자동이체되는 금액보다 더 많이, 여유있게 학자금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것이다. A씨는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상환종료일을 확인할 수 있는데, 2030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리가 대기업 신입보다 못 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지난 2월 27일, 올해 4년대졸 정규 신입직 초임을 확정한 국내기업 522개사(대기업 207개사, 공기업 12개사, 외국계기업 13개사, 중소기업 290개사)의 4년대졸 신입직 초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대졸 신입직의 평균연봉은 3,855만 원으로 가장 높았다. 중소기업 신입직 평균연봉은 2,523만 원으로 가장 낮았다.

image 사진=잡코리아

그런데, 잡코리아가 지난 3월 14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중소기업 대리의 평균 연봉은 3,734만 원이다. 중소기업 대리가 대기업 신입보다 연봉이 적은 상황이다. 보통 입사 후 4년이 지나면 대리가 된다. 결국 중소기업에 입사해 4년을 일해야 대기업 신입과 연봉이 비슷해 지는 것이다. 이처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공약, “현실성 없다”

선거공보물과 뉴스를 볼 시간이 없는 A씨에게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공약을 설명해 줬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공통점은 정부가 중소기업에 직접 돈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때, 3명을 채용하면 1명의 임금 전액을 3년간 지원하겠다고 했다. 안 후보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정규직 사원에게 월 50만 원씩 지원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공약을 들을 땐 그럴 듯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문 후보는 지원하는 3년 동안 지원 인원을 5만 명으로, 한도를 연 2천 만원으로 제한했다. 안 후보는 지원 기간을 연 2년으로 제한했다.

A씨는 두 후보의 공약을 듣자마자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돈이 어디서 나오냐는 것이다. 실제로 문 후보의 공약은 재원 마련이 어려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A씨는 또, “문재인 공약은 회사에 대한 지원이지 나에 대한 지원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다. 유 후보도 중소기업의 4대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책'을 냈지,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청년을 위한 공약은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다니는 2년 동안 50 주고 그 다음엔 뭐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기업 가라고 부추기는 것밖에 더 되나"라고 말했다. A씨에게 문 후보와 유 후보, 안 후보의 공약은 현실성도 없는 데다가 청년을 중소기업으로 유인하는 매력적인 공약도 아니었다.

image 지난 25일에 방영된 JTBC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 사진=JTBC

A씨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공약을 들었을 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학을 뗐다. 홍 후보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의 소득세를 감면하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연봉 2~3천 만원을 받는 근로소득자의 평균 소득세는 18.9만 원이다. 홍 후보는 이를 5.7만 원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A씨는 “소득세 15만 원 깎아주는 걸 청년 공약이라고 냈나"라며, “현실성은 있어 보인다"라고 홍 후보의 공약을 비판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살찐 고양이 법'이라 불리는 ‘최고 임금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고 경영자 등 고위 임원의 최고 임금을 제한해, 노동자 평균 월급 300만 원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B씨는 이 공약이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B씨는 “같은 조직 안에서 재분배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기업은 이윤 추구가 우선이지 않나"라며, “이윤추구의 동기가 없어지면 (일이) 잘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회사 높으신 분들은 반드시 다른 꼼수를 써서 돈을 가져가려 할 것”이라며, “오히려 (회사가) 사람 덜 뽑으려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있는 제도나 잘 썼으면

A씨는 “있는 제도나 좀 잘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A씨는 “한창 취직 준비할 때,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가 있는 걸 봤다. 근데 이 제도도 직종에 따라 달랐다. 제조업 같은 경우는 지원제도가 잘 돼 있는데 우리 직종(마케팅.광고)은 지원제도가 많이 없었다. (마케팅.광고 직종은) 지원 안 해줘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인 것 같다. 지원제도 조차도 현실적으로 적용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것부터 개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에 관한 제도를 장려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이행하도록 감시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A씨는 “중소기업 신입 연봉은 중소기업 대표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대표들이 중소기업 지원제도 신청만 하면 회사 손해 없이 신입이 월급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조차 안 한다. 심지어 한 사례로, 연말정산 할 때 중소기업들이 70%까지 세금 감면 받는 제도가 있다. 근데 나는 어느 대표도 자기가 먼저 신청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직원들이 신청서를 써서 갖다 주면 겨우 해준다. 회사 대표 마인드는 “너네가 하고 싶으면 너네가 알아서 해라"다. 나라에서 이런 걸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수십 개다. 또한 지자체마다, 회사마다, 직종마다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중소기업청이 있긴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외청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을 직접 펼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 5인 모두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어차피 도움 되는 공약 없으니, "몰라도 그만"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 설명이 끝나자, A씨는 말했다. “선거기간이라 난리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게 부끄러웠는데, 듣고 나니 몰랐던 게 별로 부끄럽지 않네요. 어차피 저한테 도움 되는 공약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침마다 오늘 하루도 힘내시라며 고개 숙이는 사람들(선거운동 노동자들)을 보는데 딱히 힘은 안나요. ‘(대통령 후보들은) 이상한 공약 만들어 놓고 저 사람들 아침부터 일 시키는구나’ 해요. 선거에 누가 나오든 매년 똑같네요. 달라지는 것도 없고.”


커버 사진=steve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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