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한 명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다

단원고 2학년 조은화님 어머니, 이금희 씨 인터뷰

하민지 2017년 04월 29일

'추모'를 입에 담지 말라

4월 16일. 세월호가 바다에 빠진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 목포 신항만에는 여러 추모행사가 열렸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2014년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추모'란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 아직 가족을 찾지 못 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전남운동본부 오용운 집행위원장은 "미수습자 가족의 뜻을 존중하지만, (추모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그분들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4월 17일. 목포 신항만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전날 각종 행사와 방문객들로 북적였던 분위기는 없었다. 미수습자 가족이 머무는 컨테이너로 가는 길, 나무와 전봇대 등 걸 수 있는 모든 곳에 리본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군데군데 까만 리본도 보였다. 까만 리본은 추모를 상징한다. 미수습자 9명의 사진은 노란색 리본들 사이에 걸려 있었다.

image 4월 17일. 목포 신항만은 하루종일 날씨가 흐렸다. 사진=하민지

image 걸 수 있는 모든 곳에 리본이 걸려 있다. 사진=하민지

미수습자 가족에겐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리본밭을 지나자 미수습자 가족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한겨울에나 입을 두툼한 점퍼를 입고 있었다. 세월호가 눈 앞에 누워 있는데도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4월은 봄이 아니었다.

알록달록한 점퍼를 입은 방문객들이 목포 신항만을 다녀간다. 누워 있는 세월호를 보고 "와, 저게 세월호야?"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간다. 방송국 카메라들도 한 번씩 와서 풍경을 찍고 간다. 그 옆에, 미수습자 가족들이 서 있었다.

image 사진=하민지

'미수습자'의 '미(未)'는 '아직 아닐 미'자다. 그래서 '미수습자'는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직 찾지 못한 내 가족을 찾아달라"는 이들의 요구는 세월호 특별법에 빠져 있다. 이들의 소원은 '유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들에게는 두 번의 기적이 더 일어나야 한다. 첫째는 가족을 찾는 것, 둘째는 진상이 규명되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수색 상황

미수습자 수색은 지난 18일부터 시작됐다. 수색을 시작한 지 열흘 째인 27일, 단원고 2학년 박영인님의 교복이 발견됐다. 28일에는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류품이 추가로 발견됐다.

처음에는 수색 작업이 더뎠다.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수색 작업하는 인력을 대규모로 충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관리와 감독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며칠 후 선내 진입로가 추가로 뚫린 뒤, 수색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수색 반경이 넓어지고 객실 진입로도 다양해져,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3년을 기다렸다. 3년을 노력한 끝에, 꿈에도 그리던 수색 작업이 이제 막 시작됐다. 수색 전날인 4월 17일, 단원고 2학년 조은화님의 어머니 이금희 씨를 만났다.

image 단원고 2학년 조은화님의 어머니 이금희 씨. 사진=옥바라지선교센터 윤성중

박근혜 내려가고 세월호 올라온 줄 안다

지난 3월 23일,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2주만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가 내려가니까 세월호가 올라왔다"고 말했다. 은화 어머니 이금희 씨는 틀린 말이라고 지적했다.

"3년 동안 뭐했냐, 다들 이 얘기만 하고 있어요. 2014년 4월 16일부터 (미수습자) 수색을 하다가, 11월 11일에 수색이 끝났어요. 2015년 4월 22일에 인양이 결정됐어요. 그해 8월에 인양 업체가 들어올 때까지 인양은 없었어요. 다들 이걸 생각하지 않아요.

인양이 착수되고 나서 계획대로 진행하다가 잘 안 되면 계획을 변경하고, 다시 변경했어요.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인양이 된 게 우연하게 박근혜 탄핵이랑 시점이 맞춰진 거예요.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image 미수습자 가족이 머무는 컨테이너를 마주보며 누워있는 세월호. 사진=하민지

"우리는 현장에 가서 봤기 때문에 알아요. 물살이 어떤지, 현장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잠수사가 얼마나 위험하게 일을 했는지. 근데 현장은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다들 자기 목소리만 내고 있는 거예요.

지금(4월 17일 당시) 눈 앞에 보이는 세월호를 육지에 올리기까지 열흘 정도가 걸렸어요. 보이는 배도 올리기 힘든데 안 보이는 배를 갖다가 "박근혜 퇴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박근혜 때문에 일부러 인양을 안 하고 있다가 박근혜 내려가자마자 일사천리로 인양됐다)"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세월호 특별법에 '미수습자 수색'이 없는 이유

세월호 특별법에는 진상 규명과 지원 부분만 있고 세월호 인양과 미수습자 수색은 빠져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을 제외한 '반쪽짜리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이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이 씨는 대체 왜 세월호 특별법에 인양이 빠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참사가 나고 나서 다 팽목항으로 내려갔어요. 대략 한 달동안 가족들을 얼추 찾아서 올라갔어요. (가족을 찾은) 가족들은 올라간 후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다수가 뭉쳐 있으니까 국민과 언론에서 이슈가 됐어요.

여기(미수습자 가족)는 그냥 "(정부가) 수색하고 있대" 이러고 끝난 거예요. 그러고선 특별법을 만들었는데, 특별법에 세월호 인양과 마지막 열 명(당시엔 미수습자가 열 명이었다.)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찾겠다는 내용이 빠져 있더라고요. 왜 빠졌는지 모르겠어요."

image 사진=이금희 씨 페이스북

"특별법은 여야 합의법인데, 수색 중인 미수습자 가족에게 의견을 묻지 않고 법을 만들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304명 모두가 똑같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 묶어져 있었어요. 생존자, 유가족, 미수습자의 입장이 다른데 그냥 '퉁쳐서' 만들어진 게 특별법이에요. 그래서 권한을 다수가 가져간 거예요.

유가족은 (가족을 찾은 후에는) 팽목으로 왔어야 해요. 팽목으로 와서, "사람 다 찾아. 우리는 사람 다 찾기 전까진 어떤 것도 안 할 거야. 빨리 찾아내"라고 했어야 해요. 그래야 인양이 (더 빨리) 됐을 거예요. 근데 내 아이는 찾았다고 올라가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니까, 우는 애 젖 달라는 식으로 특별법이 만들어 진 거예요.

사람들은 다수의 편에 섰어요. 모두가 미수습자를 소외시키고 아프게 했어요. 정치, 언론, 유가족,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얘기하면서 미수습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지금 행사가 많은데, 이런 행사들도 2014년에 있었어야 했어요. 모든 종교가, 모든 단체가, 모든 사람들이 3년 동안 "사람을 찾아라"라고 함께 목소리를 냈어야 해요."

생명은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수습자 295명에 비해 미수습자 9명은 소수다. 9명을 아직 찾지 못 했는데, 합동 분향소를 설치하자거나 진상규명을 먼저 하자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이 씨는 "생명은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세월호에서 중요한 건 몇 명을 구조하고 수습했느냐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 자체를 놓쳤다는 거예요. 세월호 속에서 누가 제일 아파요? 아직 세월호 안에 있는 미수습자예요. (아이를) 찾은 부모들은 (내 아이가 왜 희생됐는지) 억울하다고 해요. 국민들도 그 억울함에 공감해요. 나도 억울해요. 진상규명 돼야 해요. 근데 억울하면 미수습자 가족을 찾는 데 먼저 힘을 보태줘야 해요.

저는 여당, 야당을 따지지 않아요. 종교도 따지지 않아요. 진보, 보수도 따지지 않아요. 나는 딱 한 가지만 얘기해요. 은화 찾아내라. 내 딸 세월호 속에 있으니 찾아내. 미수습자 9명 전부 찾아내. 이거예요. 이거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있어요? 내 딸 억울한 것은 (내 딸을) 찾고 나중 일이에요. 이걸(진상규명 이전에 미수습자 가족을 먼저 찾아달라는 요구를) 유가족이 하지 못 했어요.

미수습자를 놓친 것은 소수를 놓친 게 아니에요. 한 명, 한명의 생명의 소중함을 놓친 거예요. 많은 사람을 찾았으니까 적은 사람은 찾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에요. 기자님도 엄마가 하나죠? 근데 내 엄마를 버린 거야. 엄마 친구들이. 이건 도의적으로 안 되는 거예요. 기본과 상식을 버린 거예요."

image 사진=하민지

"세월호 참사에서 사람들이 슬퍼하고 공감한 건 사람의 생명을 잃었다는 거 아니에요? 근데 왜 9명은 생명이 아니라고들 얘기를 하나요? 한 달 안에 가족 찾아간 사람들은 억울하다 얘기하는데, 우리는 왜 3년 동안 모든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진상규명을 먼저 외치면서 미수습자 9명을 외면했어요. 반성해야 해요. 누가 반성을 해야 하나면, 정부, 언론, 가족협의회, 4.16 연대, 국민이에요."

4.16 가족협의회는 2015년에 출범된 피해자 협의기구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과 일반인 유가족으로 구성돼 있고 생존자 가족 일부도 참여하고 있다. 4.16 연대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시민단체다. 2014년 11월 11일, 미수습자 수색이 종료되고 온 나라가 진상규명으로 떠들썩했다. 미수습자 가족은 인양이 결정되기까지 5개월 동안 팽목항에 방치됐다.

한 명의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는 어떤 사람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될 당시, 헌법 재판소는 세월호가 파면의 직접적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법정의견에서 밝혔다. 김이수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생명 하나까지 책임을 안 지는 국가에게는, 어떤 것도 책임을 안 져도 된다는 면죄부가 주어져요. 만약 또 다른 사고가 나더라도 "사고 낸 사람이 해결 해"이러고 말아버릴 수가 있는 거예요. 선원들은 탈출하지 말라 그러고, 선생님들은 나가지 말라 그러고, 애들은 구조할 수 있는 건데 안 한 거잖아요.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image 사진=옥바라지선교센터 윤성중

"아이들의 희생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게 하려면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판례를 바꿔야 해요. 한 명, 한 명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세월호가 전환점이 돼야 해요. 그래야 재발방지가 돼죠.

맨날 "니네들 아프다, 슬프다, 어떻게 사냐" 이딴 것 다 필요 없어요. 법으로 내달라구요. 법으로. 슬프고 아픈 건 가시에 찔려도 그래요. 이제는 "슬프다, 아프다, 기억하자, 잊지 말자"가 아니라, "세월호 건졌으니까 다 찾고 진상 밝히고 재발 방지하자"라고 해야 돼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맨날 울기만 한다고 뭐가 해결이 돼요, 해결이."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이 씨는 인터뷰 내내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는 딸을 찾는 부모이자 국가 재난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한 명의 주체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미수습자 가족이 지금 제일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첫째, 빨리 찾아달라. 둘째, (미수습자 가족을 찾는) 작업자가 안전해야 한다. 셋째, 다 찾아달라. 이따 5시에 회의(수색 전날 선체조사위원회와 해수부, 미수습자 가족 간 최종 회의가 있었다.)에 이거 얘기하러 가는 거예요."

image 사진=하민지

이 씨는 목포에서 오가는 기자들, 시민단체 회원들과 미소를 지으며 담소를 나눴다. 이 씨 뿐만 아니라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도 그랬다. 3년 간의 기다림은 생애화 된 듯했다. 이 씨는 침착하게, 그리고 강하게, 다가 올 상황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는 미수습자 가족이 머무는 컨테이너를 마주보고 누워 있다. 단원고 2학년 허다윤님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지금 당장이라도 세월호 안에 직접 들어가 딸을 찾아오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3년의 노력 끝에 세월호를 인양했고 미수습자를 찾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아직 배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image 이 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는 매체라고 했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전해 주세요. 자기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요. 나를 사랑해야 다른 생명도 사랑할 수 있어요. 사진=옥바라지선교센터 윤성중

image 사진=옥바라지선교센터 윤성중

커버 사진=옥바라지선교센터 윤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