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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작: FBI 국장 전격 해임

박상현 2017년 05월 10일

한국의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표현 중에 전격(電擊)이라는 단어가 있다. 번개처럼 들이닥친다는 말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어원은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 사용한 전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틀러는 기존의 전투 방식과는 달리 전차군단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돌격해서 속전속결(速戰速決: 이 역시 전투 용어다)로 마무리했는데, 그 전술의 독일어 표현인 블리츠크리크(blitzkrieg)를 번역한 것이 전격전(電撃戰)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시간으로 어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파면한 것이 그렇게 ‘전격적'이었다. 얼마나 성급하게 이루어졌느냐 하면, 트럼프가 서명한 편지가 전달되기도 전에 언론에 공개되었고, 코미 국장은 L.A.에서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던 중 옆에 켜놓은 TV에 등장한 속보를 통해 자신이 파면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코미는 TV 속보가 누군가의 장난으로 알고 웃었다고 한다) FBI 수장의 임기는 최대 10년이지만, 코미는 4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간단하게 해임됐다.

리얼리티 쇼에서 사용한 “당신 해고야(You’re fired)!”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선 지 100일 만에 해임한 고위직만 벌써 세 번째이기 때문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이번 해임이 의미하는 바는 심상치 않다. 코미가 이끄는 FBI가 트럼프도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mage 사진=도널드 트럼프 대통령/AP Images

토요일 밤의 학살(Saturday Night Massacre)

FBI 국장이 해임되자 미국 국민들과 언론은 즉각 “토요일 밤의 학살(Saturday Night Massacre)에 비견되는 상황”이라고 흥분했다. '토요일 밤의 학살’이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건으로, 그 명령을 받은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사임하면서 닉슨이 자신의 혐의를 숨기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줬고, 그로 촉발된 국민의 의심은 결국 닉슨 본인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코미 국장을 해임하는 메모에 코미가 자신을 수사했기 때문에 파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는 구절(“While I greatly appreciate you informing me, on three occasions, that I am not under investigation”: 내가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세 번이나 알려준 것은 감사하지만)을 넣었다. 그리고 독단으로 해임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법무장관과 차관이 건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얘기했다. 그런 내용을 굳이 집어넣은 것은 닉슨의 토요일 밤의 학살과 비슷한 상황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음을 트럼프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오해를 살만한 상황인데도 굳이 해임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와 측근들이 러시아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많은 실정이 있었어도 궁극적인 탄핵은 결국 최순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것처럼,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탄핵되거나 사임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와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일 것으로 예측한다.

트럼프와 러시아 사이의 커넥션은 다층적이다. 트럼프가 기업인일 때 러시아와 많은 거래가 있었으며, 러시아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말은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의 가족들로부터 나왔고, 안보보좌관이었다가 사임한 마이클 플린과 사위인 재러드 쿠쉬너가 지난해 12월 러시아 대사와 비밀리에 회동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가 미국 대선 때 민주당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정보를 공개하면서 힐러리 진영에 치명타를 입혔고,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러시아에게 힐러리의 컴퓨터를 해킹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트럼프의 당선 뒤에는 푸틴이 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FBI 국장의 처신

지난 미국의 대선을 전후로 코미 국장은 난감한 상황에 처해왔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용 이메일 서버(불법이다)를 운용했다는 혐의와 트럼프와 관련한 의혹들을 동시에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사가 선거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두 후보 중 한 사람은 자신의 보스가 될 상황이었다. 힐러리에 대한 기존의 수사를 종결한 후, 선거 직전에 새롭게 발견된 이메일 수사를 공개적으로 한 이유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힐러리의 이메일 추가 수사를 일부러 숨겼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결국 며칠 전 코미는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결정을 방어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고민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전격 해임 결정이 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코미가 FBI를 정치권으로 보호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선거를 바꿨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 파면된 사실은 단순한 아이러니로 치부하기에는 수상한 부분이 많다.

우선 트럼프에게 코미의 해임을 건의한 제프 세션즈 법무장관부터 러시아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즉, 대통령과 러시아의 관계를 수사하는 기관장을 러시아와 연루되었다고 하는 법무장관이 해임하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다.

image 사진=제프 세션즈 미법무장관/AP Images

물론 공식적인 코미의 해임 이유는 힐러리의 이메일 서버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FBI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날로 커지면서, 코미는 트럼프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인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는 FBI 수장이 어떤 수사를 하게 될지 몰라서 해임했다는 의혹이 지배적이다.

의회가 쥔 열쇠

그런 의혹은 민주당 쪽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공화당 의원들 쪽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의 대통령 탄핵은 한국과 달리 법원이 아닌 의회에서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현재, 여당에서의 문제 제기는 중요하다. 의원들은 자신이 어젠다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여당의 위치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탄핵은 요원하다. 하지만 만약 이처럼 의혹이 갈수록 커져서 자신의 지역구로부터 압력을 받기 시작한 공화당 의원들 중 다만 몇 명만이라도 이탈해 민주당과 힘을 합친다고 하면, 트럼프의 탄핵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특히 미국 의회 내에서 러시아에 대해 강경하기로 소문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하필 지난 대선 때 트럼프가 “(매케인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루저(loser)”라고 조롱했던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그는 이미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매케인 의원의 주장대로 무소불위의 수사가 가능해진다면, 그래서 트럼프와 러시아의 커넥션이 밝혀진다면 미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도 가능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트럼프 종말의 시작은 제임스 코미 국장의 해임이었다고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