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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2)

트럼프의 당선은 인권운동의 실패를 보여주는가?

고준우 2017년 05월 18일

트럼프의 당선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트럼프의 당선이 인권 이슈에 대해서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나치게 과격하고 꽉 막힌 급진적 인권운동이 트럼프를 탄생시켰다는 것일까? 이렇게 해석한다면 트럼프의 당선이 우리 대선에게 갖는 함의는 분명하다. 인권과 관련된 ‘지나치게 급진적인’ 주장은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반감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급진적인 인권운동은 잠시 내려두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해서 결코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매끄러워 보이지만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우선 논의의 전제부터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선거제도가 실제로 절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의 의견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제도인지에 대한 물음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트럼프가 보여준 인권침해적인 행동이나 발언 등이 실제로 미국 국민들의 의견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따져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image 사진=2016년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유세(AP Photo)

그러나 애석하게도 미국의 선거제도는 그다지 ‘투명’하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의 대선제도는 선거인단을 직접선거로 선출한 다음 그 선거인단이 다시 대통령을 선출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 받은 표와 당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단적으로 2016년 미국 대선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힐러리는 전국에서 48.2%를 득표했고 트럼프는 46.1%를 득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선거인단을 더 적게 확보한 힐러리의 패배였다.

또한 미국의 대선에서는 선거인이 투표하는 과정에서 당초 선거인이 투표하기로 했던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는 ‘반역표’ 혹은 ‘믿을 수 없는 선거인(Faithless elector)’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승자독식제 때문이다. 승자독식제란 한 주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에게 그 주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이 전부 표를 몰아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보니 선거인단 중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는 사람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들이 가끔씩 자신의 소신에 따라 반역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 선거인의 투표가 강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트럼프와 힐러리 모두 반역표가 발생했다. 반역표의 규모가 선거의 판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와는 별개로 반역표의 존재 자체는 미국 국민들의 의견이 선거제도를 통해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한 요소다.

하물며 2016년 미국 대선의 투표율은 54.7%로 지난 대선에 비해 0.2%p 하락했다. 미국의 대선 투표율 평균인 63%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미국의 대선 투표율이 꾸준히 하락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미국 대선 결과가 곧 미국 국민들 전반적인 의사를 판단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결론짓기는 힘들다.

트럼프는 인권운동의 실패를 보여줄까

오히려 인권 관련 이슈에서 보수적인 입장이 득세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인권운동가들의 ‘꽉 막히고 답답한’ 태도가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구조 전체에서 찾기보다 우리 생활 속에서 실제로 마주치는 약자들에게서 찾는 것이 더 쉽다는 경험의 한계에 그 핵심요인이 놓여있다. 이런 한계를 이용해 극우 정치인들은 인권운동가들과 약자들에게 역으로 책임을 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image 사진=2016년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유세(AP Photo)

예를 들어 대부분의 언론(TIME지 2016년 11월 21일자 기사 ‘How He Won’, ‘How She Lost’나 블룸즈버그 비즈니스위크지의 ‘Trump’s Path to Victory’ 등의 기사)은 트럼프의 승리와 힐러리의 패배를 분석하면서 그 사이에 놓인 ‘급진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6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힐러리가 고생한 지점은 오히려 그가 유리천장이나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오히려 기성 정치 엘리트로서의 측면이 주목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힐러리가 월스트리트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버니 샌더스가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힐러리의 정치적 매력이 반감된 것이다.

반면에 트럼프는 기존의 공화당 의원들에게 공격받고 지지철회 선언을 당할지언정 그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결국 기존 정치에 지친 미국 국민에게 트럼프는 오히려 엘리트들이 장악한 기존 질서로부터의 ‘긴급 탈출’을 의미하는 셈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이 말은 점점 부상하는 중국이나 2008년 경제위기 등으로 미국의 경제적 황금기로부터 벗어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즉, 기존 질서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찬란했던 미국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결합시킨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인권운동이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경험의 한계(인식의 한계)다. 전체 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그 한계가 분명한 불평등 시정정책들(고용할당제 등)이나 명백한 차별의 사례도 개인의 경험 안으로 들어오면서 역차별로 모습을 바꾸어 등장할 수 있다.

image 사진=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유세(AP Photo)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 고용에서의 여성 우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여성은 전통적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가혹한 노동환경에도 쉽게 저항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의 대상이 돼왔다. 더 나아가 여성은 감정노동에 능숙하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인해, 여성은 서비스 노동에서 우대됐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여성이 우대된다. 이는 오히려 여성을 ‘다루기 쉬운 노동력’으로 본다는 점에서 명백히 차별적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남성 개인에게 이는 오히려 역차별로 해석될 것이다.

개인의 경험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들을 살펴보면 해소될 수 있는 오해들이 폭넓게 퍼져있는 셈이다. 결국 이런 오해의 틈을 타고 보수정치인들은 소수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긴다. 구조적인 불평등을 약자들에 대한 혐오로 바꾸어 정치적 동력을 얻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극우 정치는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 ‘독일을 위한 대안’이 있다.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민족주의를 앞세운 원네이션 파티가 득세하고 있다. 이들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난민과 이주민 문제에 대해서 그들을 배척하고 자국민의 이익을 가장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국내의 불평등 문제를 이주민이라는 약자들의 문제로 바꿔치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맥락을 봐야만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사건을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image 사진=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총재

우리는 트럼프에게서 앞으로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안보와 관련해 점점 강화되고 있는 한미일 동맹이 앞으로 한국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자체적으로 외교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트럼프 정권에 끌려다닐 가능성이 크다.

인권 문제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권운동의 ‘편협함’이 아니라 그 이면이다. 오히려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봤을 때 트럼프를 비롯한 극우들의 약진은 기존의 불평등한 구조를 넘어서려는 대중적 열망의 분출로 봐야 한다. 또, 그 열망이 ‘보수적인 형태’로 분출되는 데에는 ‘경험의 한계’라는 중요한 요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트럼프가 우리에게 주는 이 중요한 교훈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기존 정치체제의 한계를 넘어 새 시대를 여는 ‘촛불혁명’이 완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진=반 트럼프 시위대 (AP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