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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vs. Trump (3) 페이퍼 트레일

박상현 2017년 05월 18일

FBI vs. Trump (1) 운명의 저녁식사,
FBI vs. Trump (2) 수사국 요원들의 분노에서 이어집니다.


'페이퍼 트레일(paper trail)'이라는 표현이 있다.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밝혀주는 일련의 문서나 기록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의 직장에서는 상사가 자신에게 부당한 지시를 할 경우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라는 조언을 한다. 만약 문제가 될 경우 책임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지 않으면 실행한 부하만 희생을 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것도 온갖 범죄를 다루는 FBI라는 수사조직 내에서 성장해온 제임스 코미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메모를 반드시 남기는 성격으로 FBI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권력의 한 중심부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FBI의 수장에게는 어쩌면 페이퍼 트레일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신을 구해줄 생명줄이라고 느꼈을 수 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아래는 전적으로 그의 메모에 기반해서 재구성한 내용이다:

2월 14일, 대통령 집무실

트럼프는 자신의 책상("Resolute Desk"라고 부른다. 영국의 탐사선에서 나온 목재로 만들어 영국 왕실이 선물한 이 책상에 대해서는 언젠가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에 기대어 앉아있었고,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 안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제프 세션즈 법무장관, 그리고 몇 달 뒤 해임될 운명의 제임스 코미가 있었다.

트럼프는 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코미와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싶으니 나가달라는 신호를 했다. 부통령은 바로 나갔고, 법무부 장관은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부탁을 받고 방을 나갔다. 트럼프가 의자에 앉은 코미 국장에게 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네. 이번 수사는 그만했으면 하네. (He is a good guy. I hope you can let this go)."

여기에서 "그"는 마이클 플린이다. 그는 육군 장성 출신으로 트럼프의 안보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가 러시아 대사와 만난 사실과 대화 내용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나서 24일 만에 사임한 인물이다. 러시아와 연락을 취해왔던 것으로 의심되는 트럼프의 측근 중 한 명으로 FBI는 플린의 수사 없이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수사 중이었다.

image 사진=2016년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와 마이클 플린 (AP Photo)

트럼프가 그런 부탁을 한 것은 플린이 사임한 직후였다. 사임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 FBI는 수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것이 트럼프가 코미를 따로 부른 이유였다.

대통령이 수사 중인 사안, 그것도 자신과 관련한 사안의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사법 방해(Obstruction of Justice)라는 심각한 범법행위다. 첫 글에서 이야기했듯,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국민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계기가 닉슨의 사법방해였다.

FBI의 원군, 상원 정보위원회

그렇다면 코미의 메모는 어떻게 언론에 알려졌을까? 기자들이 취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기자가 취재원을 찾아가는 방법과 취재원이 기자를 찾아오는 방법이다. 특히 유명 언론사 소속일 경우, 혹은 취재원과 가까운 기자의 경우 언론에 알리고 싶은 소재가 있을 경우 취재원은 조용히 연락해서 정보를 흘려준다.

코미는 해임된 후 자신의 메모와 모든 기록물을 FBI에 남겨두고 왔다. 법적으로도 중요한 절차이지만, 해임이 끝이 아닐 것을 잘 아는 코미가 영리한 처신을 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남은 부하직원들의 충성을 확신했을 때나 가능한 방법이다.

코미는 FBI 재임 동안 요원들의 사랑을 받은 리더로 알려져 있다. FBI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애썼고, 부하들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특히 좋은 성과를 낸 직원이 있으면 말단이라고 해도 직접 전화를 해서 따뜻한 칭찬과 격려를 하곤 했는데, 그 전화를 받은 직원은 "내가 지금 FBI 국장과 직접 통화한 거 맞아?"하고 놀라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image 사진=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앤드류 매케이브 FBI 국장 권한대행 (AP Photo)

그런 부하들이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메모의 일부를 전화로 읽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러시아 커넥션을 조사하려는 미 의회는 당장 그 기록물 전체를 제출하라고 했다. FBI는 기꺼이 기록물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국장을 억울하게 잃은 FBI는 트럼프를 잡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상원 정보위원회(Senate Intelligence Committee)라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왜냐하면, 상원 정보위원회를 구성하는 19명에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를 제일 싫어하는 상원의원(이자 트럼프가 선거운동 중에 '루저loser'라고 불러서 공분을 샀던)인 존 매케인 의원과 공화당 경선 때 트럼프가 놀렸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고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CIA와의 일전도 불사했던 다이앤 파인스틴 민주당 의원, 그리고 누구보다도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트럼프와 맞대결할 수 있는 수준의 언론플레이를 구사한다고 알려진 척 슈머 민주당 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앤드류 매케이브 FBI 국장 권한대행에게 "어느 누구든지 이 수사에 개입하려고 시도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보고하라"고 당부했다.


FBI vs. Trump (1) 운명의 저녁식사
FBI vs. Trump (2) 수사국 요원들의 분노
FBI vs. Trump (3) 페이퍼 트레일
FBI vs. Trump (4) 트럼프를 잡는 트럼프식 용인술
FBI vs. Trump (5) 트럼프 사위의 수수께끼 같은 제안
FBI vs. Trump (6) 진검승부, 상원 청문회가 시작된다

커버 사진=대통령 집무실의 도널드 트럼프 (AP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