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독자 반론] 문재인 지지자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역사적 맥락을 보라

D Deepr 2017년 05월 18일

지난 16일 Deepr에서 발행한 기사,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의 언어투쟁은 틀렸다'는 찬성과 동의의 의견도 많이 받았지만, 동의할 수 없다는 독자들의 반론도 많았습니다. 저희 Deepr는 이 문제가 흑백으로 쉽게 구분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을 저희가 직접 재단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의견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에게 반론을 주신 분들 중에서 두 분을 선정해서 원고를 부탁드렸습니다. 아래의 두 의견은 Deepr의 기사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글이라 판단하고, 여기에 소개합니다. 기고해주신 감동근 교수님과 권혁범 PD님께 감사드립니다. Deepr


감동근 아주대 교수

'문빠'들이 진보 언론을 비판하는 이유,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 보인다

저는 만39세입니다만 기성 미디어에서는 소외된 ‘밀레니얼 세대’의 참신한 담론을 접하기 위해서 Deepr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의 언어투쟁은 틀렸다는 기사를 읽고 아쉬운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제언합니다.

이 기사는 ‘일부 극성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사태의 기폭제가 됐던 한겨레 안수찬 기자의 표현대로 ‘문빠’라고 하겠습니다)’들이 존칭이나 사진 사용 문제로 한겨레를 포함한 소위 ‘진보 언론’을 비난하는 것이 언론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부당할 뿐만 아니라, 촛불 광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을 향해 쏟아냈던 언사들에 비추어볼 때 일관성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피상적인 접근입니다. 특히, 단편적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들어간 보도를 지향하는 Deepr의 철학에 비추어보면 참 아쉽습니다.

이 기사에는 왜 ‘문빠’들이 기껏 사진이나 존칭 사용을 문제 삼는지에 대한 분석이 빠져있습니다. 이 사건만 떼어놓고 보면 그냥 그들이 비이성적이라서 그렇다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참여정부 출범 이후 내지는 최소한 2008년 무렵부터 한겨레와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단적인 예로 2010년 6월 10일자 한겨레의 “놈현 관 장사”라는 표현에 트라우마가 박힌 노무현/문재인 지지자들이라면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image 사진=Lee Jin-man/AP Images

그리고 사태가 이렇게 과열된 데에는 ‘진보 언론’ 기자들도 한 몫 했습니다. 문재인을 찍은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는 비이성적인 ‘문빠’도 당연히 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기자들이 ‘문빠’들의 비난을 과도하다고 느낄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개인의 SNS에서 “덤벼라 문빠들아” 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참 선을 넘었습니다. 네티즌의 ‘빠질’과 기자들의 직업 윤리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Deepr의 기사에서 역사적인 맥락을 추적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또다시 불거진 정의당 사표론과 탈당 위협이라는 기사에서도 탈당 위협을 ‘문빠’들의 만행으로 평가했습니다만, 정의당의 독특한 탄생 배경을 고려하면 또 다른 얘기가 됩니다. 그러니 국민참여당 얘기가 기사에 적어도 한 줄이라도 들어갔어야 했습니다.

평소의 매우 수준 높은 기사들과 비교할 때 간혹 역사적 맥락이 부족한 담론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Deepr 기자들의 연령이 20대 중/후반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을 직접 겪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은 데스크에서 보완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Deepr를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여: 이번 사태에서 한겨레의 잘못이 명백하지만, 기자와 신문사가 모두 사과했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다른 신문도 아니고 세월호와 최순실 게이트에서 큰 역할을 했던 한겨레이고, 비정규직 시리즈 등에서 맹활약해 온 안수찬 기자이니까요. 기울어진 언론 지형에서 아직 <한겨레>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혁범 프리랜서 PD/감독

언론은 대중에게 '훈장질'할 수 없다

최근 소위 ‘한경오’(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갈등이 이슈다. 지지자들은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다 욕하고, 일부 언론인은 ‘문빠야 덤벼라!’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을 언론의 ‘위기대처’ 차원에서 보고 싶다. 그 주장의 옳고그름을 떠나 이미 발생한 이슈에 대한 언론의 태도가 적합했느냐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이미 서로간에 믿고있는 진실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에겐 각자의 의견을 증거할 수많은 진짜/가짜 자료와 논리가 넘쳐나고 있다. 비관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여기에 한 스푼쯤 의견을 더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리라 믿지 않기에 시작점(진보 언론의 문재인 폄하)의 옳고그름이나 사실여부를 따지는 대신 ‘해결해야 할 이슈’로만 보려 한다.

그 어떤 기업도 문제가 터질 때 ‘소비자’를 탓하지 않는다. 탓하지 않는 이유가 소비자가 ‘무오’해서일까? 그럴 리 없다. 소비자를 탓하는 것이 이슈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리아 사장이 악평에 ‘소비자들 입맛이 이상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돌려돌려 말을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소비자와 대결양상을 만드는 위기대처는 내 상식에는 없다.

개인간에라도... 말싸움의 기술과 화해/봉합의 기술은 다르다. 마지막 맺음말로 싸움을 끝내고 싶다면 ‘이런 점은 내가 잘못했어, 근데 너도 잘못했어.’라는 식의 미련 남은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언론이 독자와 말싸움의 늪에 빠지나?‘라는 것이 내가 이 상황을 보며 느끼는 어색함이다.

쉽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상황은 막말로 한경오 모든 기자들이 신문 1면에 전면 사과문을 내놓아도 해결되긴 어려울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한경오도 그럴 일은 없기 때문에 진보 언론과 문 대통령 지지자들 간의 갈등은 거의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말싸움의 반복이라도 빨리 닫는 게 옳다. 일단 고소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악플러를 제외하고는, 개개의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문빠’라고 엮어서 대처하려는 시도는 듣다 보니 기분 나쁜 문빠들만 늘어날 뿐이다.

image 사진=Lee Jin-man/AP Images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관계를 언급하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도 꽤 힘들었다. 나름 문 대통령 지지자로서 한마디 보태고도 싶고 잘잘못을 따지고도 싶었는데- 그게 본업인 기자들이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늪에서 뭐라도 억울함 한마디를 토로하고픈 마음이야 당연하다. 진실을 다루는 기자들이 자신들이 믿는 진실과 동떨어진 현상을 인정하고 넘어가기 힘들 수 있다는 것 또한 이해가 간다. 일반 기업의 위기대처와는 전혀 다른 행동들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다도 싶고...

하지만 대중에게 ‘훈장질’해서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한 명의 사람을 논리로 쥐어패려면 가능하겠지만 대중 중 문빠를 골라내어 가르치려 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자가 하려는 것이 ‘진실을 전하는 것’인지 ‘말싸움에서 이기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구차함의 늪에만 빠지게 되고 감정이 상한 지지자들만 하나둘 더 튀어나오게 될 뿐이다.

서운함 하나를 솔직한 마음으로 털어놓고 싶다. 한경오의 억울함이 있다고 해서, 사태를 이렇게 키워 결과적으로 ‘문빠’에 대한 사회의 혐오를 키우는 것이 한경오가 바라는 방향인가? 스스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문빠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며 이슈 대처 실패의 상처를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옳은가?

스스로를 통해 문 대통령 지지자와 문빠와 한경오를 옹호하는 지식인 등으로 대중이 갈라지는 것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정말 최소한, 이 치사한 편가르기만은 한경오에 책임이 있다 말하고 싶다. 규정 지어지는 쪽이, 규정되게 된 것에 책임을 질 순 없지 않은가.

끝으로, 언론이 정말 옳은 길을 걷고 있다 확신한다면 변명말고 꿋꿋이 가시라 말하고 싶다. 태도에 대한 논쟁은 허무할 뿐이다. 오직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만이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꼭 ‘지금 여기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걸어갈 앞날에 맡기시라. 지리한 이혼보다는 깔끔한 이혼 혹은 아름다운 재결합이 좋지 않은가.


커버 사진=Lee Jin-man/AP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