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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예술 사이, "나는 가죽하는 사람이다"

가죽공방 라미서울 장보람 대표 인터뷰

정인선 2017년 05월 26일 박상현

어려서부터 몸 쓰는 일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킥복싱 선수였다. 남들보다 일찍 무용을 했고, 중학교 때 까지는 육상을 했다. 어머니의 바람을 따라 미술로 진로를 틀었다.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작품이 팔리기 기다리기보다 애초에 바로 돈 되는 걸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다 만난 게 가죽공예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가죽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공동작업공간 동방싸롱에서 가죽공방 라미서울을 운영하고 있는 장보람 대표의 이야기다.

40평 남짓한 공간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낯을 가리지 않는 고양이 앤디가 드나드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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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전부 하얗게 칠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제 의견이었는데, 동방싸롱을 전시공간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 외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이 공간이 특별한 색깔을 갖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때그때 바꿀 수 있게요."

-공방을 운영하는 방식이 궁금해요. 제품을 직접 팔기도 하시나요?

"제품 판매보다는 수업을 통해 주로 수익을 내요. 정규 수업에는 현재 약 40명 정도 수강생이 참여하고 있어요. 그 외에 원데이클래스도 종종 진행해요. 조만간 동방싸롱 안에서 전시도 열고, 작은 쇼룸처럼 공간을 꾸며 볼 생각이에요."

-어떤 사람들이 공방을 찾나요? 완제품을 직접 파는 것에 비해 클래스, 특히 원데이 클래스의 경우는 작업물이 투박하게 나올 가능성이 클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동방싸롱을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죽을 재단한 뒤에 옆면을 나무로 문질러 광을 내는 작업은 사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는 작업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작업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분이 많아요. 우선은 (가죽공예는) 단순노동이잖아요.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가 많이 돼요. 뭔가 일이 아닌 다른 곳에 집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손으로 반복 작업을 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걸 배출하는 거죠. 그래서 수강생들을 잘 지켜보는 게 제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예요. 수강생들이 어떤 작업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하면, 특히 원데이 클래스의 경우는 그 작업을 그냥 제가 빨리 해 버려요. 그래서 그 과정을 그냥 넘겨 버려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무엇보다 즐거움을 얻어 가는 게 제 바람이라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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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규과정에서는 그 힘들고 (실력이) 안 느는 지점을 넘어가는 쾌감이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장애물을 만들기도 하고요. 한번 뛰어넘어 보라고. 예를 들면 마켓에 제품을 내려면 마감 시간이 있잖아요. 다들 거기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몰라요. 새벽까지 작업하고, 그 다음날 바로 출근하고. 무척 힘들어 해요. 그런데 정해진 시간에 원하는 만큼을 완성했을 때의 쾌감, 그리고 제품이 팔렸을 때의 쾌감, 그리고 다시 공방으로 돌아왔을 때 '어, 그 사이 (실력이) 늘어 있네'하는 쾌감. 이것들이 엄청 커요."

-어떤 방식으로 가죽공예를 처음 배우셨나요?

"제가 배웠던 건 완전히 요즘 스타일이 아니에요. 도제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인의 지인 중에 유명한 가죽공예가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분이 있는 안성 작업실 옆에 작은 방을 구해서 먹고자고 하면서 가죽을 배웠어요. 청소도 제가 매일 가서 했고. 선생님이 하시는 걸 제가 옆에 앉아서 봐요 계속. 그리고 나서 선생님 가시면 그때서야 혼자 해 보고. 잘 안됐던 건 다음에 가서 여쭤보고."

-지금 수강생들을 가르칠 때는 본인이 배운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나요?

"네 전혀 다르죠. 이걸 내가 지금 봤으니까 지금 당장 해 보고 싶은데, 제겐 너무 큰 선생님이니까 말도 못 꺼냈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수강생들이 그 자리에서 보자마자 직접 해볼 수 있게 해요. 일반적인 가죽 공예 클래스와 달리, 횟수나 시간도 제한을 두지 않았어요. 그냥 한 코스에 작품 네 개 완성하기, 이런 식으로 목표를 잡았어요. 그래서 수강생들이 수업을 왔다가 어느 날은 가죽은 만지지도 않고 저랑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다가 돌아가는 날도 있어요.

사람마다 손 쓰는 속도가 다 다르다 보니 사실 금전적으로 손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안에서 만들어지는 분위기는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는 저에게도 훨씬 이득이었어요. 지금까지도 특유의 분위기 덕분에 이 수업이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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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은 사실 제게는 하나의 장치이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로도 충분해요. 이 곳이 좀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해요. 실은 딱 보면 '아, 이 사람은 도저히 안 늘겠다'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래도 괜찮아요. 그 사람이 여기서 얻고자 하는 게 가죽공예 실력 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어요."

-공예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의대생이 정신과를 전공할까, 내과를 전공할까 선택하는 것과, 공예가가 도예를 하겠다, 유리공예를 하겠다, 가죽공예를 하겠다 사이에서 정하는 건 조금 다를 것 같아요. '나에겐 가죽공예가 맞겠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었나요?

"우연히 처음 접한 게 가죽이었고요, 사실 지금까지 한번도 가죽이 저한테 잘 맞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냥 막연하게 한번도 해 보지 못한 도예가 제게 잘 맞지 않을까 지금도 생각해요. 사실 패턴에 맞춰서 재단을 하고 구조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맞지 않아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늘 이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가장 잘 맞는 옷은 아니어도 손으로 제가 뭔가를 만들고, 그걸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구매해서 사용하고 그 용도가 그에 따라 달라지고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굳이 가죽 아니어도 좋지만, 지금은 여기에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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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죽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얼마 안 됐어요. 이건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어느정도 포기하는 발언이기도 해요. 그냥 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특정한 재료만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한정짓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 인정하게 된 거죠. 원래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뭔가 자유를 빼앗긴 느낌이 들기도 해요."

-작가와 공예가의 차이는 어디에 있나요? 실용적이지 않은 걸 만들고 싶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예쁜 쓰레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제품을 만들고 싶기도 했던 거죠. 그런데 예쁜 쓰레기만 만들고 살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린 것 같아요."

-'예쁜 쓰레기'와 팔리는 제품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우선 실용성이 없어야 하죠. '아, 저거 너무 갖고 싶다, 그치만 쓸모가 없어, 어떡하지?' 이런. 자동차로 치면 컨셉카 같은 거죠. 잘 팔리는 제품과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이 항상 일치하지 않기도 해요. 아니, 거의 일치하지 않아요. 소비자는 언제나 제 마음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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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디자인은 라이터케이스에요. 사실 이걸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그 쓸모를 몰라요. 담배 피우는 분들이 라이터를 자주 잃어버리잖아요. 근데 이걸 쓰면 라이터를 끝까지 쓰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돼요. 그래서 써봤던 분들은 (잃어버리면) 계속 재구매를 하게 돼요. 그런데 써보기 전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거죠.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가 생기는 셈이죠."

-가죽을 고르는 데에도 특별한 기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가죽을 사용하시나요?

"식용도축한 소에서 얻은 가죽이나 자연사한 소의 가죽만을 사용해요. 가죽을 얻기 위해서 죽인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건 제 신념이에요. 채식을 한다거나 할 정도로 동물권에 대해 특별히 생각이 깊지는 않아요. 그냥 최소한의 양심이에요. 저는 유희를 위한 낚시도 싫고, 사냥도 싫어요. 유희를 위한 죽임에는 반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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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들에게 가죽 염색 기법을 굳이 가르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이미 염색이 돼 있는 가죽을 사용하면 편리해요. 생지 가죽에 염료를 사용해서 직접 물들이는 건 번거롭고 초보자에겐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런데 가죽은 소 한 마리 단위로 구매해야 하거든요. 저처럼 전문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양을 다 쓰기가 어려워요. 비용도 많이 들고요. 그래서 최소한의 가죽을 구매해서, 직접 원하는 색으로 그때그때 염색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사실 악세서리도 결국 나를 치장하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위해서 굳이 다른 생명을 죽인다는 게 제 양심에는 어긋나요. 미대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할 때도 도축을 주제로 영상과 설치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최근에는 내가 이런 가죽을 고집해서 쓰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대량 도축 문제가 심각해요. 하지만 제가 그런 큰 문제를 바로잡을 힘은 없잖아요.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제품을 판매만 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사 간 사람이 재구매 하지 않고 계속 스스로 수선해서 쓸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요. 하나의 가죽이 최대한으로 사용되고 나서 생을 다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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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보람/라미서울, 박상현/Dee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