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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월 10만원 대신 4대보험을 선택한 이유

정인선 2017년 05월 22일

세 달 전, 처음으로 연봉계약서를 썼다. 연봉이 많지는 않지만 정식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을 갖는 건 처음이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 대표님은 한 가지 정할 게 있다고 했다. 4대보험에 가입할 건지 고민해 보고 알려달라고 했다.

대표님은 만약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프리랜서 계약을 맺으면 실수령액이 10만원 정도 더 많고, 4대보험에 가입하고 근로계약을 맺으면 4대보험 본인부담금만큼 월 실수령액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별 차이가 없으니 부담 갖지 말고 내게 필요한 쪽으로 선택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냥 사인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선택할 거리가 생기자 괜히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서른이 가까워오도록 서울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터에, 월세나 공과금 같은 것도 혼자 처리해 본 적이 없었다. 월 10만원 정도가 손에 더 들어오느냐 덜 들어오느냐를 정하는,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긴 했지만 금전적인 문제를 혼자 결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먼저 취업을 한 친구 몇몇에게 의견을 구하며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해 봤다.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로 계약을 맺고 4대보험에 가입할 경우 무엇보다 좋은 건 실업급여였다. 180일 이상 고용보험을 납입할 경우, 나중에 직장을 옮기게 될 경우 다음 직장을 구하기 전 90일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또 직장가입자 자격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었다. 반면 많지 않은 월급에서 실수령액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는 건 당장 큰 손해였다.

  1. (스타트업의 특성상) 몇 달동안 일을 하게 될지 불확실함
  2. 가족구성원중에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이미 있음
  3. 월급이 많지 않음.

세 가지 조건을 말하자 많은 사람들은 그냥 4대보험에 가입하지 말고 프리랜서 계약을 맺으라고 조언했다. 그렇지만 나는 월 10만원 안팎의 금액을 포기하는 대신, 미래의 안전망을 택했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고지식한(?) 선택을 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세로 일에 임하고 싶지 않았다. 3개월 뒤, 그러니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180일을 채우기도 전에 일을 그만둘 거면 원래 준비하던 시험을 포기하면서까지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월 10만원의 매몰비용이라도 만들어 놔야 그게 아쉬워서라도 기어이 6개월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을 시작하기 한 달 전, 아버지가 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다행히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기 반 년쯤 전에 동생이 취직을 한 덕분에 동생이 직장에서 가입한 건강보험에 나와 부모님, 그리고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8명의 대가족이 모두 피부양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그런데 만약 동생의 구직이 조금이라도 늦어졌다면,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건강보험에 지역가입자로 가입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말 그대로 '보험료 폭탄'이 떨어졌을 테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이 아닌 자산으로 보험료를 산정하는데, 자가를 소유하지 않은 경우에도 월세를 전세금으로 전환해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는 등 직장가입자에 비해 납입기준액이 대체로 높게 책정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뻔 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기 몇 달 전, 동생이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될 뻔 했다. 언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안전망을 만들 수 있을 때 만들어 놓는 쪽으로 마음이 향했다.

4대보험의 혜택을 본 친구를 옆에서 지켜봤던 간접경험도 선택에 도움을 줬다. 친구 H는 2년 전 3개월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180일을 채우지 못해 실업급여 적용 대상이 아닌 줄 알았는데, 고용보험공단에 문의해 보니 이전 직장 뿐 아니라 그 전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도 산정에 포함된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덕분에 H는 새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3개월 동안 월 130만원 가량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원래도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더욱 H는 실업급여를 받는 90일 동안 안정감을 느꼈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일 4만원 가량으로 정해져 있어, 이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던 덕분이다.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가 실업급여를 받아서 활용하는 모습을 보니 4대보험이 그냥 허공에 내는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혹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회구성원들도 비상시에 안전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효용감을 느꼈다.

소비 패턴도 선택에 영향을 줬다. 나는 운이 좋게도 서울에 부모님 집이 있어서 집값이나 공과금 등을 직접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복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달에 10만원 안팎의 돈을 덜 받는 게 그렇게 큰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나의 이런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약 내가 내 돈으로 매달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세입자였어도 이렇게 당장의 10만원이 손에 떨어지는 걸 유예하고 미래의 안정감을 선택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커버 사진=godoycordo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