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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취준생은 우울증 치료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

기록 남을까 두려움에 정신과 진료 대신 술담배 택해

하민지 2017년 05월 26일

이 기사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서 많은 비판과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기사를 읽어 주시고 평가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에 대한 후속 기사를 안내해 드립니다.

① 취준 시즌, 정신과 진료기록 회사에 넘어갈까
② 정신과 진료기록 회사가 볼 거라는 불안감 생긴 이유


정신과 진료는 인생의 걸림돌

A씨는 최근 자살 시도를 했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후 정신과 치료를 권유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의사에게 상담만 받고 결국 치료는 거절했다. 취업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상담 받아보니 우울증 중기라고 하더군요. 일단 돈이 없어요. 그리고 취준 중이에요. 진료 기록 열람하는 거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고는 해도, 마지막 단계까지 가서 정신과 진료 기록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있단 얘기를 들었어요.”

B씨는 4년 전, A씨와 마찬가지로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가 정신과 치료를 권유 받았다. B씨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으로 끌려 갔다고 했다.

“취직할 때 불이익 있을까 봐 하기 싫었거든요. 근데 어차피 너무 비싸서 얼마 치료 받지도 못 하고 중간에 그만 뒀어요. 나중에 기업 입사하려고 하는데, 개인정보와 민감정보 제공에 동의하는지 체크하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무서웠어요. 진료 기록이 열람될까 봐.”

image 개인정보와 민감정보를 제 3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도 취직할 수 있을까(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다.). 사진=하민지

이들에게 정신과 진료는 인생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A씨는 입사 시험 도중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없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입사 시험 칠 때) 인성검사 같은 것도 많이 하잖아요. 대놓고 물어보는 항목도 있어요. 수면이 부족하진 않은지 뭐 그런 것들. 저는 가면을 쓰고 잘 잔다고 체크할 수밖에 없어요. 우울증 겪으면 인성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취직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다?

최근 20대 우울증과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 원인을 구직난으로 본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B씨는 외로움이 주된 이유라고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 자취하고 있는데요, 타지 생활이 힘든 걸 떠나서 그냥 너무 외로웠어요. 제 편은 어디도 없었고, 저는 그냥 알바노동자였어요. 제 이름은 ‘저기요’였어요. 어른들이 하는 큰 일에 부품으로 동원된 느낌? 앞으로 뭐든 잘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A씨도 우울한 이유가 취직이 안 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삶이 돌고 돌아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수능도 힘들게 쳤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 취직도 잘 안 됐고, 또 취준하려니까 막막하고... 단순히 취준이 힘들어서는 아니에요.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그냥 다 어긋나는 것 같았어요. 왜 자꾸 삶이 돌고 도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심해졌어요.”

B씨는 기존 매체들이 20대가 단지 취직을 못 해서 우울증을 앓는다고 분석하는 게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이 4년제 대졸자에 취준생은 아니잖아요. 장사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예술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건데, 왜 다 취직 때문이라고 해요? 그런 기사 쓰는 언론사들은 사람 많이 뽑나요?”

image A씨는 말했다. 우울증의 원인을 알면 진작에 치료를 했겠죠. 취직하고 직장다니는 사람도 우울한 건 마찬가지잖아요. 사진=pixabay/Skitterphoto

술담배로 견디는 우울증, 있어도 모르는 ‘정신건강증진센터’

A씨는 정신과 진료가 기록에 남는 것도 두렵긴 하지만, 진료비가 비싸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B씨도 비용 문제로 중간에 치료를 포기했다. 그는 “상담이 1회에 10만원이었고, 검사비는 30만원 정도 들었어요. 약값은 또 따로예요”라고 했다.

우울증을 어떻게 견디냐는 질문에 A씨는 “술담배죠”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B씨도 우울증을 앓으며 흡연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회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지 못 하는 상황에서, 당장 손뻗어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술담배였다.

이들에게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알고 있냐고 물었다. 이들은 모두 모른다고 답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무료 상담에 기록도 남지 않는다.

다만, 의사가 아니라 정신보건자격을 가진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이 상담을 진행한다.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아동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상담이 가능하다”며, “치료기관이 아니라서 약 처방을 해주진 않지만, 지역의 치료기관과 연계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2005년 서울에 제일 먼저 개설됐다. 현재 구 단위로 전국에 180여 개가 개설돼 있다. 센터가 개설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A씨와 B씨는 이런 센터가 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커버 사진=pixabay/Skitterphoto


독자의 지적이 있어, 내용을 보충합니다.

상담이 1회당 10만 원이고 검사비가 30만원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병원에 가서 "기록이 남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보험의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을 때의 금액입니다. 이럴 경우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 해 진료비가 비싸지기는 하지만, 진료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병원의 진료비가 동일한 것은 아니고, 인터뷰이가 4년 전에 지불했다고 말씀해 주신 금액을 그대로 기사에 실었습니다.

보험의 혜택을 받으실 경우 진료 기록이 남는 대신 병원비가 저렴해 집니다. 이 때 약물 치료는 F코드가, 상담 치료는 Z코드가 진료 기록에 삽입됩니다. 보험 진료를 선택하신다면 진료 기록은 남지만 평균 10만 원 이하의 저렴한 금액으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결국 진료 기록 여부에 따라 진료비가 달라지고, 이 또한 병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병원 진료 기록은 본인 동의 없이 누구도 열람해서는 안 된다고 의료법 21조 2항에도 명시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입사 시험을 보며 ‘개인정보와 민감정보를 제 3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동의합니다’에 체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23조 1항에 따르면 ’민감정보’는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그 밖에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뜻합니다.

의료법에 따라 회사가 진료 기록을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취준생들이 진료 기록이 남을까 봐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취준생들의 불안감이 어디서 왔는지, 실제로 회사는 진료 기록을 열람하는지, 정확히 취재해 후속 기사에서 밝히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