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여자는 엄마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엄마 인권 높이는 건 출산수당이 아니라 노동문화 변화

윤지원 2017년 05월 26일

26세의 강민주 씨는 ‘완전군장’을 한 채로 집을 나섰다. 지난 1월 태어난 아들 정민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길이었다. 앞으로는 아기 띠를 하고 뒤로는 기저귀 가방을 들었다. 정민이의 몸무게는 10kg에 가깝다. 강 씨의 몸통만한 기저귀 가방 역시 약 10kg으로, 아기와 한 번 외출할 때마다 총 20kg를 짊어지고 나서야 한다. 강 씨는 가방의 어깨띠가 넓어 부담이 적은데다 가볍고 수납력이 높은 편이라 요즘 엄마들 사이서 가장 인기 있는 기저귀 가방이라고 이야기하며 밝게 웃었다. 하지만 기자가 들어본 가방은 한 팔로 들기에는 분명 무거웠다.

image 강민주 씨가 앞으로는 아들 홍정민 군을 안고, 뒤로는 기저귀 가방을 메고 병원에 가고 있다. 사진=정경록

엄마 되는 순간 하락하는 인권

그동안 임신과 출산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기쁨과 만족감, 한 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성취감으로 설명돼 왔다. 미혼 혹은 무자녀 여성이 그 등식에 대해 반기를 들면, 직접 낳아 봐야 느낄 수 있는 것이니 ‘일단 애를 먼저 낳아라’라는 말로 입을 막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머니 됨’이 여자 개인에게는 인권의 하락과 같다는 것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강 씨의 예시와도 같이, 가장 먼저 제한받는 것은 자유로운 이동권이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안정인(35) 씨는 “갑자기 휠체어 탄 장애인이 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집에서 가까우면서 아이와 맘 편하게 놀 수 있는 시설이 많지가 않아요. 결국 애엄마는 집에 갇혀 있거나 놀이터나 친구 집만 왔다갔다 하는거예요. 갈 만한 어린이 도서관이나 키즈카페는 부족하지, 노키즈존은 점점 확대되지, 내가 엄마가 아니었을 때는 편히 왕래하던 모든 곳이 애가 있다는 이유로 내게 적대적으로 바뀌어요. 유모차 끈 엄마들이 왜 백화점에 많은 줄 아세요? 부족한 공공 보육시설을 백화점이 대체해줘서 그래요. 백화점에는 수유실도 잘 되어있거든요. 이런 엄마들의 고충을 모르고서 나오는 말이 ‘남편 돈 벌 때 밖에서 놀기나 하는 맘충들’이라는 소리죠.”

image 아기들이 쓰는 기저귀는 여러 개다. 마치 생리대가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듯이, 보통 아기 기저귀도 기능과 디자인에 따라 여러 브랜드를 구비해 놓는다. 사진=정경록

한편, 강민주 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올 때까지도 자신을 대체할 인력이 구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육아휴직을 요구하면서도 노동자인 자신이 회사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년 3월이 복직이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일을 더 잘한다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복귀한다고 해도 회사에서는 애엄마를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강 씨는 아이가 자신의 커리어에 하자가 됐고, 그로 인해 일에서 배제됐다고 느꼈다.

일하고 싶지 육아를 더 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엄마들의 고충이나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그동안 모성애 신화에 가려져 부덕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이는 축복이고 기쁨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정신적 보상이 현실의 힘듦보다 더 크다는 논리였다. 엄마가 ‘ଠଠ맘’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냉혈한’이나 ‘자기밖에 모르는 맘충’ 따위로 비쳤다. 하지만 안 씨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공적인 자리에서 더 활발히 얘기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워킹맘이 밖에 나와서 일한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전업주부가 집 안에만 있겠다고 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요즘은 또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기준이 매우 높아요. 엄마들은 아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길러내야 하는지 온 사회의 압력과 평가를 수시로 받고 있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성 개인적인 삶의 성공은 잊히거나 아이 뒤로 숨겨집니다. 이것은 출산과 돌봄의 책무가 오로지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에게만 맡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image 홍정민 군. 아직 4개월이다. 사진=정경록

안 씨는 스스로를 ‘비정규직 지식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아이 둘을 낳으면서 일을 계속하기 힘들었고, 그가 택한 방법은 프리랜서였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집이 빈 동안 안 씨가 일을 할 시간은 한두시간 내외다. 나머지 시간엔 쌓여 있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4시에 하원하고 아이들이 잠드는 저녁까지는 그야말로 풀타임으로 ‘육아 노동’ 시간이다. 결국 안 씨의 노동은 24시간 내내 퇴근도 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안 씨는 비혼과 비출산 흐름에 대해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파업’이라고 설명했다. 안 씨는 짬을 내서 고양시 보육정책위원회에 참석하는 등, 자신의 관심 분야와 전문 분야에 대한 커리어를 이어 가고 있다.

노동문화의 변화가 공동 돌봄을 이끈다

4살짜리 아이가 있는 허백윤(33) 씨의 직업은 신문기자다. 전화 인터뷰를 하던 일요일에도 허 씨는 출근해서 일을 했다. 불규칙한 퇴근 시간과 야근・회식이 잦은 노동 문화 때문에 지난 2015년에 복직하면서 등하원 도우미 겸 베이비 시터를 고용했다. 한 달에 도우미 이모님께 들어가는 인건비는 백만 원. 고등학생들의 사교육비가 한 달에 백만 원이 넘으면 기삿거리가 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아이의 생활비 외 순수 고정 지출이 백만 원이라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허 씨는 시터 비용 백만 원이면 오히려 싼 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래도 가계에 부담이 된다고 했다. 둘째 계획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모 외에 아기를 봐 주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출산과 육아 계획의 걸림돌이다. 허 씨는 지난 2016년 책 <독박육아(시공사)>를 출간했다. 저자 소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학창 시절에는 남녀평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고, 국회 출입 기자로 일하면서는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한 세상’이 왔다는 정치인들의 구호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365일, 24시간 아기와 한 몸 생활을 하는 처절한 독박육아를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의 혹독한 육아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중략) 포기하지 못한 워킹맘의 길을 가면서 그동안 자신의 생각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달라져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절감했다.


허 씨는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의 보육 관련 공약을 보고 그래도 국가가 보육을 책임진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고 회고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둘째부터 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공약은 큰 비판을 받았지만 실제 만난 엄마들의 입장은 달랐다. 둘째를 낳지 못하는 큰 이유는 돈이기 때문에 허 씨의 말에 따르면 “솔직히 말해 일단 혹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 회에 그치는 수당 지급이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엄마들도 안다.

image 허백윤 씨의 책 <독박육아>의 부제는 ‘오늘도 퇴근 없는 나홀로 육아전쟁’이다. 사진=시공사

허 씨는 결국 보육정책의 핵심은 돈보다 노동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 보육에 있어서 엄마와 아빠를 차별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서 아이가 있는 노동자와 아이가 없는 노동자를 차별하지 않는 노동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1) 야근문화가 사라져야하고 2) 전체 노동자의 과중한 근로시간이 줄어야 한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노동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국가가 여성 복지라는 명목으로 워킹맘의 근무시간을 축소하는 것은 오히려 배려의 이름을 가장한 소외다. 취직 시장에서의 여성의 노동 경쟁력은 제한될 뿐 아니라 육아를 엄마만 한다는 성별 분담을 강화한다.

안 씨 역시 궁극적으로 노동문화의 본질적인 변화가 곧 여성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의 출산 장려는 여성정책 일방향이 아니라 아니라 ‘노동・여성정책’의 두 코스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정부의 지원은 엄마와 아빠가 같이 일하고 같이 돌볼 수 있도록 해야해요. 그리고 그 돌봄이 부모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 사회로 퍼져야 하죠. 돌봄문제는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큰 몫이에요. 그것을 여성의 몫으로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에요.”

image 강민주 씨 부부의 결혼사진. 사진=정경록

cover=정경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