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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포리 프로젝트 ①] 여성의 섹스 장면만 많으면 '성 해방'인 걸까

영화 <바람에 젖은 여자> 리뷰

하민지 2017년 06월 15일

image 로포리 프로젝트 공식 포스터.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일본의 5대 메이저 영화 제작사 중 하나인 ‘닛카쓰 스튜디오’에서 만든 극장용 성인 영화를 말합니다.

1960년대, 일본에 TV가 인기를 누리면서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게 됩니다. 닛카쓰 스튜디오는 활로를 찾기 위해, 쉽게 말하면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성인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포르노를 만들되 드라마를 입힌 성인 영화,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가 탄생된 배경입니다.

로망 포르노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습니다. 10분에 한 번씩 섹스신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온전히 감독의 재량에 맡깁니다. 그래서 로망 포르노 영화 중에는 엉뚱하고 파격적인 문제작들도 많습니다.

로망 포르노 제작 45주년을 맞아, 국내에 ‘로망 포르노 리부트(줄여서 ‘로포리’) 프로젝트’가 기획됐습니다. 로망 포르노 영화 5편이 연달아 개봉됩니다.

이 영화들에는 여성의 에로티시즘과 성 해방을 의미하는 ‘페로티시즘’이 담겨 있습니다. 금기로 여겨져왔던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메인 테마입니다.

Deepr는 로포리 프로젝트 5편의 리뷰를 연재합니다. 먼저 5월 25일에 개봉돼 로포리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바람에 젖은 여자(Wet Woman in the Wind)> 리뷰부터 시작합니다.

① <바람에 젖은여자> - 여성의 섹스 장면만 많으면 '성 해방'인 걸까
② <안티 포르노> - 남자 중심 사회에서 여자에겐 출구가 없다


여성과 연 끊기 위해 숲으로 숨은 남성, 그 남성을 욕망하는 여성

극작가 고스케(나가오카 타스쿠 분)는 여성과 연을 끊겠다며 숲에 오두막을 짓고 은둔한다. 그러던 중 자전거를 탄 여성이 오더니 고스케 앞에서 물에 젖은 옷을 다짜고짜 벗어버린다. 고스케를 탐하는 주인공, 시오리(마미야 유키 분)다.

image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시오리가 태연하게 옷 벗는 장면부터 나온다. 로망 포르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다.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고스케는 시오리에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자 시오리는 고스케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일부러 다른 남성을 데려와 고스케 앞에서 섹스를 하는가 하면, 고스케가 그의 전 여친과 섹스를 할 때 난입해서 고스케를 발로 차 밀어버리고 그의 전 여친과 둘이 섹스를 한다.

고스케도 점점 시오리를 욕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오리는 그런 고스케를 순순히 받아주지 않는다. 최대한 애 태운다. 서로를 애 태우는 과정에서 마치 연극을 흉내내는 듯한 과장된 대사와 몸짓이 유머스러우면서도 야하다.

시오리와 고스케가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서로 움켜쥐고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의 경우, 나무 막대기를 중심에 두고 관성에 따라 두 주인공의 몸이 왔다갔다 한다. 그러면서 서로 호흡과 눈빛을 에로틱하게 주고 받는다.

image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이렇게 7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유머와 에로가 부지런히 넘나든다. 왜 시오리가 고스케를 탐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날것의 성적 본능이 적나라하게, 그리고 유머스럽게 뒤엉키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참 ‘찌질’한 남성의 에로티시즘

이번 로포리 프로젝트의 메인 테마가 ‘페로티시즘’,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다룬 것이라 그런지 남성의 에로티시즘은 ‘찌질’하게 묘사돼 대조된다.

이 영화의 남성들은 섹스해 본 적이 없는 여성을 원한다거나, 불륜을 낭만으로 포장하거나, 여성과 섹스하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들을 늘어 놓는다. 이런 남성의 모습이 영화에 국한된 상상 속 장면이 아니라는 것은 관객의 대부분이 알 것이라고 확신한다.

image 시오리가 자신의 전 여친과 섹스를 하고 자신과는 섹스해 주지 않자, 고스케는 전 여친이 데려온 전 여친의 조수와 섹스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물어 본다. "내가 처음이야?"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 연극 배우 4인방도 남성의 찌질함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 4명은 ‘극단주’인 고스케의 전 여친이 데리고 왔다. 시오리는 고스케를 유혹하기 위해 이들 중 한 명을 끌고 와 고스케 앞에서 섹스를 한다. 그런데 이때, 나머지 3명이 시오리 앞에 공손한 모습으로 총총 줄을 선다. 귀엽다고 해야 할지, 애잔하다고 해야 할지.

또한, 이 영화에서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를 섹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쯤으로 대한다. 남성 자신이 여성의 신체를 사용할 수 없다면, 남성에게 여성의 신체는 가치가 없어진다. 고스케는 시오리가 자신을 유혹하면서도 자신과 섹스해 주지 않자 시오리를 “근처에 얼쩡대는 들개”라고 표현한다.

앞서 언급한 배우 4인방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남성들은 연극 연습을 하는데, 대사는 이렇다. 여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장이 증인들에게 따져 묻는다. 증인들은 대답한다. 시신의 목만 남고 몸통은 사라졌다. 얼굴만 남은 시신인데, 얼굴을 보니 “대단한 미인”이다.

image 극단주이자 고스케의 전 여친이 배우 4인방 중 한 명을 이끄는 모습.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재판은 4명의 남성들이 사라진 미인의 몸을 궁금해하는 내용으로 흘러 간다. 이들이 살해된 여성의 미모를 자꾸 묘사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몸을 찾는 이유가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내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성과 섹스가 가능한 여성의 신체, 나아가 잠재적으로 자신의 섹스 대상일 수도 있는 신체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미 얼굴은 '합격점'이니, 이제 몸을 찾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에서 남성은 여성의 신체를 섹스를 위한 용도로 대한다. 고스케의 전 여친은 연기 연습을 하는 남성들에게 가서 말한다.

“지루해.”

여성이 섹스 좋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페로티시즘?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고스케를 유혹하는 시오리, 극단주이자 고스케의 전 여친, 고스케 전 여친의 조수. 영화에서 이 세 여성은 각각 섹스를 하고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보여줬다고 하기엔 엉성한 부분이 많다.

여성이 아무데서나 옷을 벗고, 섹스를 원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만으로 여성의 성 해방을 다뤘다고 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성 해방은 금기로 여겨져 왔던 여성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남성에게 종속당한 젠더롤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냥 그렇지 만은 않다.

image 쿠보우치와 시오리. 시오리를 찾는 데 실패한 쿠보우치는 고스케에게 따져 묻는다. "걔랑 했냐?"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시오리는 내연 관계에 있었던 유부남 쿠보우치(테이 류신 분)가 고스케의 오두막에 난입해 시오리를 찾자 황급히 숨는다. 고스케의 뒤에 숨어 돌만 던질 뿐이다. 또한, 고스케의 전 여친은 고스케에게 섹스를 "해달라"고 말한다. 결국은 남성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스케는 이런 전 여친을 보며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 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성적 욕망을 분출한 여성의 모습이 다소 한심하게 그려진 장면이다.

고스케 전 여친의 조수는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가장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다. 그는 어린 시절 강간을 당한 후 남성과 섹스를 하기만 하면 남성에게 평생을 바친다고 약속한다. 남성들은 그런 그의 순정을 부담스러워 한다.

image 고스케 전 여친이 데려온 조수. 고스케에게 평생을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고스케가 부담스러워 하며 가라고 하니까 진짜 간다. 남성의 말 잘 듣는 여성의 성 해방, 뭘까.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여성이 다른 남성도 아니고 굳이 여성과 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남성을 욕망하는 설정도 페로티시즘과 거리가 멀다. 이 설정은 고스케에게 되레 ‘여성을 밀쳐내도 여성들이 욕망하는 멋진 남성’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부여한다.

여성의 신체를 잡는 카메라 앵글은 남성 중심의 시선, 즉 '야동 앵글'에 머물러 있다. 여성이 남성의 위에 올라간 체위를 촬영한 장면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는 '로우앵글'로 찍혀 있다. 누워있는 남성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페로티시즘이라 하기엔 성긴 구석이 많긴 하지만 영화 시작하자마자 “아, 로망 포르노가 부활했구나”를 느끼기엔 충분한 작품이다. 10분에 한 번씩 섹스신이 나와야 한다는 규칙은 후반부에 가선 깨진다. 10분에 한 번이 아니라 후반부 내내 섹스신이 나온다.

그래서 결국 시오리는 고스케와 섹스하는 데 성공했을까. 자신을 들개라고 표현한 고스케에게 시오리는 “누가 개야?”라고 되물으며 영화는 끝난다.


커버 사진=오렌지옐로우하임, 홀리가든


바로잡습니다 : 2017년 6월 2일 오전 11시 55분 |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게 찍는 촬영 기법은 '로우앵글'입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게 찍는 촬영 기법인 '하이앵글'로 표기해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