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빅스비 쓰는 택시기사 만나면 생기는 일

늦은밤 귀갓길 함께한 60대 얼리어답터 이야기

윤지원 2017년 05월 29일

좋은 택시 기사를 만나는 건 그 날의 운에 달렸다. 목적지까지 사고 없이 잘 데려다주는 것이 운전자의 일이지만, 가끔 그 과정에서 고객이 운전자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춰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손님이 젊은 여성일 경우 그런 일을 당할 빈도는 높아진다.

손님이 주소를 불러주는데 택시 기사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내비게이션 검색을 하기 싫다는 티를 낼 때, 여성 손님들은 직감적으로 목소리를 상냥하게 바꾼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운전자가 기분나빠하지 않게 주소를 알려드릴 수 있을까 신경을 쓰며 마음을 졸인다. 신주소(2014년 전면 시행된 도로명주소)를 알려주면 이럴 때도 있다. “그건 안 쓰지(말 끝을 흐린다). 다른 주소.” 그러면 허겁지겁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구주소, 즉 지번주소를 대령해야 한다.

그런 불쾌한 경험이 있는 이용자라면 개인 택시 운전자 박임규 씨를 만나보고 싶을 것이다. 그에게 목적지를 말해도 그의 손은 운전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말로 주소를 입력한다. “올림픽공원역.” 휴대폰이 응답한다. “올림픽공원역까지 가는 경로를 설정합니다.” 설치한 네비게이션도 잘 쓰지 않는 일부 택시기사가 있는 판에, 음성명령으로 목적지를 찾는 기사는 처음이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image 일을 하지 않는 휴일에 박임규 씨의 패션 아이템은 스마트폰과 이어폰이다.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도 ‘유튜브 레드’로 팝송을 들으며 왔다. 사진=윤지원

박 씨는 지난 4월 휴대폰을 삼성 갤럭시 S8로 바꿨다. 1957년생으로 한국 나이 61세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매우 능숙하다. 작년 12월 초에 한국에 런칭한 유료 서비스인 ‘유튜브 레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유튜브 레드는 동영상 전문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다. 아직 젊은 층에서조차 보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 서비스를 ‘요즘 잘 쓰는 기능’이라고 소개하는 택시 기사 박임규 씨를 소개한다.

-기사님의 경우 나이대에 비해서도, 또한 일반 휴대폰 사용자에 비해서도 신기술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케이스다.

“평소에 사치스러운 취미는 없지만,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대한 욕심은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옷을 잘 입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마음처럼, 기업에서 새롭게 선보인 서비스나 기기만큼은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잘 다루고 싶다.”

-음성명령을 이용해 운전 경로를 검색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언제부터 이용하기 시작했나?

“삼성이 스마트폰에 처음으로 인공지능 서비스를 넣은 것이 ‘빅스비’다. 나는 갤럭시 S8를 사전예약으로 산 만큼 신기능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지난 1일에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혼자 이것 저것 눌러 보면서 기능을 익혔다. 현재 보이스 기능이 지원되는 앱이 갤러리, 연락처, 전화, 문자 등등이다. 앞으로 점점 기술이 발전되면서 기능도 확대될 것으로 생각한다.”

-최신 스마트폰과 최신 서비스를 일반 스마트폰 유저로 사용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직업인 택시 운전에도 활용하고 있다.

“택시 운전할 때 사용하는 어플은 티맵택시 기사용과 카카오택시 기사용 어플이다. 일반 고객이 근처에서 콜을 하면 어플이 받는다. 그런데 이 어플이 스마트폰 기종에 따라 지원하는 버전이 다르다. 새 휴대폰으로 바꾸고 나니까 택시기사 어플도 최신으로 업그레이드 돼서 버전이 7.0이더라. 이전 폰인 노트3에서는 버전이 4.0이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콜이 들어오는 속도가 차이난다고 느껴졌다. 밤에 일하다 보면 신호대기하고 콜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데, 콜을 받기 위한 속도가 빠르면 내가 다른 기사들보다 빠르게 잡을 수 있으니 잘 바꿨다고 느낀다.”

image 택시 기사들은 기사용 어플을 통해 콜을 받는다. 박 씨는 티맵택시와 카카오택시를 사용한다. 사진=윤지원

-주위 동료분들도 기사님만큼 적극적으로 신기술을 활용하는가.

“아니다. 나처럼 최신 폰까지는 아니어도 탑재되어 있는 네비게이션 기능을 쓰지 않으려는 기사들도 많다. 콜을 받는 택시 기사용 어플은 개인택시 조합에서 부여받은 자격증과 본인 사진을 찍어서 등록해야 쓸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못하는 동료들이 있다. 본인 사진만 찍어 오라고 해서 쉬는 날 내가 대신 등록해주기도 한다.”

-솔직히 그 나이대에 이렇게 자유자재로 신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놀랍다.

“나는 내가 특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많이 접해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택시기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녔던 이전 직장 생활을 통해 익숙할 뿐이다.”

-이전 직장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그때도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팔로업이 빨랐나?

“이전에는 무역 회사를 다녔다. 예전에는 회사의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었다. 80,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무역회사는 수출서류를 일일이 타이핑했는데, 오타 하나만 나도 전부 새로 쳐야 했다. 그런데 작업이 디지털화되자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옛날에는 큰 은행에서나 컴퓨터를 사용했다. 우리 회사에서 컴퓨터를 들여오면서 PC 업체와 미팅하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했던 불편함을 내가 얘기하고 ‘이런 서식도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들이 다 디지털화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image 능숙하게 휴대폰을 작동하는 박 씨. 화면을 터치하지 않고 홍채인식 기능을 사용한다. 사진=윤지원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세대로서 신기하게 들린다. 휴대폰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내가 처음으로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94년도, 95년도 쯤이다. LG에서 나온 무전기처럼 생긴 벽돌폰으로 기억한다. 이전에는 삐삐를 사용했다. 그러다 2010년대 초, 전면 디스플레이가 터치로 된 스마트폰인 갤럭시 S2를 샀다.

2007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브랜드 콜택시’를 시작했다. 그 때는 ‘엔콜’, ‘나비콜’ 등 몇 가지 콜 브랜드가 있었다. 그러다 카카오택시가 2015년에 런칭한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한두달 정도 어떻게 사용하나 지켜보다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신식 버전이 나의 영업에도 더 좋을 것이라 판단하고 시작한 것이다. 신기술이나 디지털 기기에 대해 ‘선발대’가 되고 싶어하는 욕심은 있는 것 같다.”

image 운전하면서 '빅스비' 보이스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 박 씨. 사진=윤지원

-우리 사회는 보통 60대면 노인으로 규정하고 신기술에 대해 쩔쩔매거나 도태되는 인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최신 트렌드를 늘 따라가면서 그 지식을 자신의 일터에까지 적용하는 모습이 상당히 고무적이다.

“사실 지금 몰고 있는 차도 얼마 전에 뽑았다. 작년 10월 이후에 출시된 신형 그랜저 IG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신형 차에 신형 휴대폰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조건 새 것을 쓰고 싶어하는 사치스러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진 1997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 때 아이들이 중학생이었는데 내 몸 하나 투자해서 애들 공부는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퇴사 4개월만에 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흘렀고 아이들은 대학 졸업한 성인이 됐다. 이제는 내 삶을 좀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이 들면서 (삶이) 끝나는 게 아니다. 아버지로서 할 만큼은 끝냈다고 생각해 스스로에게 투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cover=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