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취·부

돈 없어도 욜로족 될 수 있나요?

한국식 욜로는 팍팍한 삶의 탈출구다

윤지원 2017년 06월 02일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에 많은 독자들께서 취재 요청을 해 주셨습니다. 그 중 8건을 추려 Deepr가 무엇부터 취재하면 좋을지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82건의 응답 중 ‘내일을 위한 저축 대신 오늘의 즐거운 삶을 택한 사람들, 욜로족’이 궁금하다는 응답이 32건, 39%의 응답률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취재 요청해 주시고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노오오력’ 타령에 지치다 못해 반기를 든 요즘 청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삶 참 덧없다.” 삶이 덧없다는 것을 깨달은 젊은 층은 자신들의 소비에 스스로 시발비용, 탕진잼, 퍽유머니(Fuck you money) 등의 이름을 붙였다. 주로 ‘힘들게 벌고 힘들게 아껴서 뭐 하겠나, 써버리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2017년 한국을 관통하는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 ‘욜로(YOLO)’도 같은 맥락에 있다. You Only Live Once. 당신의 삶은 한 번 뿐이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한다 했지만 그것은 지금의 고난을 참고 이겨내면 미래에 행복이 응답할 것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장되지 않은 상품에 투자하지 않듯이, 미래가 불투명하면 저축이 아니라 소비를 하는 법이다. 미뤄둔 효능감을 당겨 써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현재 '한국식' 욜로다.

image 사진=kanielse

욜로의 본고장, 미국

욜로의 시작은 미국이다. 욜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래퍼 Drake가 2011년 낸 노래 ‘The Motto’라는 것이 정설이다. 원곡의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에서 욜로는 한국에서보다 ‘위험하게’ 쓰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욜로는 ‘YOLO death’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피해와 사고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유행어이자 유스 컬쳐 중 하나였던 욜로가 언론에서 심각하게 다뤄진 것은 2012년 래퍼 Ervin McKinness의 음주운전 사고 때였다. 당시 21살이었던 그는 본인을 포함 5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냈는데, 사고가 일어나기 전 트위터에 ‘완전 엄청나게 취함. 시속 193km로 운전 중. 뭐 어때, 욜로(Drunk af going 120 drifting corners #FuckIt YOLO)’라는 트윗을 남겼다. 미국 거주 10년차 김성은(24) 씨는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욜로가 가진 어감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공부를 포기하고 술이나 마시러 간다고 귀엽게도 쓰이지만, 보통은 삶에서 정해둔 방향이 없고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 당장 쾌락을 위해 자신의 무모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느낌으로 더 많이 쓰인다”고 덧붙였다.

image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 사진=tving

욜로의‘헬적화’

한국식 욜로는 쓰임이 다르다. 미국에서 욜로가 유행한 지 약 4~5년 뒤, 한국에서 욜로를 유행시킨 것은 배우 류준열이다. 작년 2월, tvN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출연한 류준열은 1인 여행자에게 들은 인상적인 삶의 태도라며 욜로를 소개했다. 이후 욜로는 ‘이 시대의 청춘의 모토’라고 소개되며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욜로를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다. 김 교수는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불신의 각자도생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현재 지향적인 소비생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즉 한국에서 욜로는 자기 파괴적인 무모함이 아니라 오히려 절박한 현실에서 생존을 위한 하나의 자기 위안법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있을 것 같지 않은 행복을 위해 고생하기보다는 지금을 즐기겠다는 뜻이다.

돈은 욜로의 필요조건일까

미국과 한국에서의 용례가 차이가 나듯이, 한국에서도 욜로는 다양하게 받아들여진다. 취업 준비를 앞두고 있는 대학생 이주현(25)씨는 “솔직히 내게는 욜로가 그렇게 좋은 단어로 와 닿지 않는다. 결국은 돈이 여유가 되는 사람이나 가능한 소리 아닌가? 빠듯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은 욜로족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욜로를 소비로만 접근하는 시각은 이런 박탈감을 더욱 부추긴다. 지난 5월 13일 방영된 무한도전 ‘히든카드 특집’은 욜로 라이프를 즐기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방송 내내 무한도전 멤버들은 한도를 알 수 없는 카드를 긁고 다녔다. 결국은 그 돈 또한 멤버들에게서 나온 돈이라는 것이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방송에서‘욜로 = 평소 하지 못했던 큰 씀씀이의 소비’라고 비춰진 것이 사실이다.

image 무한도전 히든카드 특집. 사진=mbc

결국 한국에서 '욜로 라이프'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1) 돈 걱정 없이 매일 유흥과 쾌락을 즐기는 사람 2) 빠듯한 삶에서 애써 돈을 쪼개서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소비를 한 뒤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욜로를 소비의 차원에서만 해석할 경우, 소수의 전자를 제외하고서는 ‘시발비용(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으로 정신승리하는 쪽에 더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를 즐기자’라고 하고서는 다음 날 카드값을 보며 후회하는 불행이 생기는 것이다.

image 무한도전 히든카드 특집. 사진=mbc

욜로를 택한 당신, 또다른 틀에 갇힌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욜로족이라고 소개하는 전상희(22) 씨는 “욜로를 소비 스타일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집안의 장녀인 전 씨에게 주위의 기대는 곧 인생의 지표였다. 중간에 딴 짓 하지 않고 곧장 졸업해서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이 정해진 삶의 단계였고,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길이었다. 아버지의 은퇴가 주는 압박과 주입된 책임감에 허덕이던 전 씨가 욜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다. 시작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대학 다닐 때 휴학 한 번쯤은 해봐야 한다"는 말에 휴학을 결정한 것이다.

“제게 욜로는 학습되고 강요되던 사회적인 기준에 반항하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됐어요. 정상에 내 인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정상을 찾는 태도예요.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 정확히 알면 그때부터 내가 인생의 중심이 되죠. 당연히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절차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그게 제 하루하루의 ‘욜로’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판사'로 잘 알려져 있는 문유석 판사는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현재의 소소한 소비에서 행복을 느끼고 이에 만족감을 느끼는 젊은 층의 행동을 ‘적응'이라고 표현했다. 저성장시대에 걸맞는 나름대로의 ‘행복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불행의 대부분이 빈곤과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을 감안하면, 돈으로 행복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욜로가 한국 청년들에게 소구됐던 이유는 당장은 부족해도 움켜쥘 수 있는 행복의 효능감을 미래가 아닌 현재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애써 버티는 불행에서 탈피하고자 선택한 것이다.

cover=Ryan Mor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