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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없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에게도 '봄날' 올까

[취재후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취재기

정인선 2017년 06월 05일

인천공항 1만명 정규직화,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기사를 쓰기 위해 지난 한 주 사이 공항을 네 번 오갔다. 후보 시절부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당선 후 첫 행보로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1만명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 특히 내 또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나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무작정 찾아가서 말을 걸면 될 줄 알았는데 인터뷰이 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이 많은 청소노동자 분들은 다가가서 말을 걸면 쉽게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동자는 열이면 열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다거나, 규정상 언론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인터뷰를 피하는 노동자들

취재를 하고 보니 두 이유 모두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기자가 주로 말을 걸려고 했던 사람들은 공항 입·출국장에서 승객을 검색하는 보안검색요원들이었다. 보안검색요원 대다수가 이십대 초·중반이다. 야간 교대를 해야 하고, 승객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등 업무 강도가 센 데 비해 처우는 열악해, 1-2년 일하고 그만둘 생각으로 일 하는 사람이 많았다. 50, 60대 노동자에 비해 이직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는 점도 '금방 떠날 것'이라는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니 승객 보안검색 업무 종사자가 1100여명에 이르는데도 노동조합 조직이 안 되어 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도움 덕분에 승객 보안검색 업무 종사자 대신 (노조가 조직돼 있는) 특수경비요원 두 명을 만나 인터뷰 할 수 있었다. 기자가 만난 두 사람은 모두 "노조 말고는 믿을 게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없었을 때는 법적으로 1년에 15일 씩, 그리고 근속연수에 따라 추가로 보장받을 수 있는 연차유급휴가 일수가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모두 '리셋' 됐다. 노조가 만들어진 뒤로는 업체가 바뀌어도 연차를 그대로 보장받는다. 또 공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직급 체계가 다양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노조가 단체협약 과정에서 호봉제를 요구해 그나마 4호봉까지의 직급체계를 만들었다. 이들이 "노조 말고는 믿을 게 없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신철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노조 조직이 안 돼 있는 쪽은 업체 변경 때 연차같은건 보장되는지 이런 게 파악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image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규직화 약속을 기회 삼아 그동안 미조직 상태로 흩어져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진=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언론 인터뷰를 하는 동료를 신고하면 진급"

기자가 만난 한 노조원은 (노조가 없는 보안검색 직군의 경우) 용역업체가 중간에서 "우리는 노조 가입 못 하게 돼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노동자들은 그걸 다들 믿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고용 계약을 맺을 때 용역회사가 "(회사에 안 좋은 쪽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는 동료를 신고하면 진급시켜 준다"고 노동자들을 설득하기도 한다고 했다. "모두 20대 초반의,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고, 학교에서도 노동권 관련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기는 커녕 불온시 하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도 그냥 믿는 게 아니겠냐"라고 그는 말했다. 앞서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한 보안검색요원들이 하나같이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특수경비대지회 이성규 지회장은 틈이 날 때마다 공항 곳곳에 노조 가입을 독려하는 플래카드를 단다. 점심시간이나 출퇴근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선전물을 나눠주는 등 '쪽수'를 모으기 위해 애쓴다. 그래야 정규직화 과정에서 협상력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노조가 선전물을 나눠주는 대로 용역업체에서 바로 거둬 간다. 공공운수노조는 주머니에 쏙 숨기기 좋은 명함 크기의 '세 컷 공감툰'을 만들었다.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손거울에 갈색 유니폼을 입은 보안검색요원 캐릭터를 그려넣어 나눠주기도 한다.

image 노조가 보안검색요원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는 대로 용역업체가 바로 거둬 간다. 그래서 공공운수노조는 주머니에 숨기기 좋은 명함 크기의 '세 컷 공감툰'을 만들었다. 사진=정인선

image 공공운수노조는 사용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명함 크기로 선전물을 제작해 보안검색요원들에게 나눠준다. 사진=정인선

희망적이었던 장면은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보안검색요원들에게 '공감툰'을 나눠주면서 '진상 승객 경연대회' 사연을 모집하기도 했는데, 한 달 새 열 건의 사연이 모였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보안검색요원들이 '공감툰'을 찍어 올리며 "이거 완전 내 얘기다"라고 공감을 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image 한 보안검색요원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서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가 엿보인다. (기사에 언급된 인터뷰이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대통령의 약속이 바꾼 분위기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 자료를 얻으러 공공운수노조 인천지역지부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노조 설립 상담을 하러 온 미조직 직군 노동자들을 마주쳤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공항공사와의 협상 테이블에 가져가기 위해 어떤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지,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노조를 설립해 힘을 합쳤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성규 지회장은 "대통령이 정규직화 약속을 한 뒤로 이런 상담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조직 노동자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내몰릴 것을 우려한 미조직 노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였다. 이유가 어찌 됐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조에서 신입조합원 교육을 맡고 있는 한 조합원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신입 조합원 교육을 나가면 "야, 니들 이제 취업 했는데. 앞으로 (여기서 나가려면) 뭐 할래?"라고 물어본다는 것. 직장 선배가 후배에게 이직을 위해 뭘 할지 대놓고 물어본다는 것도, 또 거기에 다들 솔직하게 대답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아, 이 사람들에게는 '여길 떠나야 도태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디폴트로 내재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분위기가 대통령이 다녀가고 난 뒤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게 그 조합원의 설명이었다. "우리도 여기서 뭔가 해 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다들 허파에 바람 든 거죠"라고 농담삼아 말했지만, 분명 자조만 100% 들어간 말은 아니었다. 이들의 '바람'은 진짜로 이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