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덕업일치

사적인 서점, 사적인 대화

밀레니얼의 덕업일치 (3) 북 디렉터 정지혜

박상현 2017년 06월 06일

밀레니얼 세대의 직업이라고 하면 언론에서는 흔히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직원, 공무원, 알바, 혹은 IT 스타트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직업은 직장과 다르다. 디퍼는 그들이 생각하는 ‘업’이 궁금해졌고, 일상적으로 분류되는 ‘직장'에 만족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가 택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자리(job) 보다는, 자신을 표현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직업(profession)은 어떤 것이고,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을까?


정지혜
여자, 29세
사적인 서점 대표
서울 창전동

소위 “뜨는 곳”을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인터뷰 승낙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쏟아지는 인터뷰에 응하느라 본업에 소홀해질 수는 없는 일이니, 주인이 인터뷰를 못 하겠다고 할 때는 기다리는 게 도리다. 그런데 인터뷰 허락을 받아내도 문제다. 많은 언론사에서 다녀가고, 뛰어난 기자들과 글쟁이들이 자세하게 쓴 주제를 또 다루면서 무슨 새로운 한 줄을 더할 수 있을까?

사적인 서점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만, 내가 굳이 인터뷰에서 다루고 싶지 않은 디테일들은 고맙게도 다른 언론사에서 이미 기사화했기 때문에 내가 다룰 필요가 없어졌다. (인터넷에서 ‘사적인 서점’과 ‘정지혜’를 검색하면 기사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묻기로 했다. 말하자면, 사적인 것들.

네가 뭔데 책을 처방해?

“처음 서점을 열었을 때는 ‘네가 뭔데 책을 처방해?’라는 반응이 올까 봐 제일 걱정했어요. 저보다 책을 많이 읽는 분들도 훨씬 많으시고, 사실 저는 무겁고 깊이 있는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사적인 서점도 엄연한 서점이기 때문에 서가에 책이 꽂혀있지만,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 집 거실에 있는 수준에도 못 미친다. 예약하지 않은 손님에게도 개방하는 토요일에는 아무나 이곳에 와서 책을 사 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서점의 "비즈니스 모델"은 상담을 통한 책 처방이기 때문에 서가에 있는 책을 파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혜 씨는 그래서 거기에 꽂힌 책들에 더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책을 다른 서점보다 많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제 선택이 온전히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이쯤에는 좀 어렵고 깊이 있는 책 한 권 정도 넣어놔야 하는 거 아닌가'하고 신경 쓰이기도 하고, 내가 읽는 책을 너무나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서.... 저의 큰 콤플렉스였어요.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책을 나보다 더 많이 읽고,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있어도, 나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 맞는 책을 진심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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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지혜 씨 앞에 앉아 있으면 이야기가 쉽게 나온다. 편안한 표정과 조곤조곤한 말투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이 하려는 말이나 질문을 끝까지 듣고 동의를 한 후에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 같다.

방문자의 마음을 여는 역할을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서점의 인테리어다. 홍대 근처 별 특징 없는 상가 건물 4층에 자리 잡은 이 서점은 알고 찾아오지 않으면 밖에서 발견할 도리가 없다. (이곳을 알리는 유일한 입간판은 예약 손님이 있거나, 토요일 오픈데이 때만 건물 밖에 꺼내어 놓는다). 하지만 서점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스웨덴의 어느 거실에 들어간 느낌을 받는다. 밝은 실내에, 공기는 기분 좋게 시원하고, 디퓨저에서 퍼지는 향과 잔잔한 음악은 내가 지금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게 만든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사진에서 지혜 씨가 항상 입고 등장하는 앞치마에 대한 사연도 궁금했다. 본인을 위해 입는 건지, 아니면 손님을 위해 입는 건지. 이전 직장인 땡스북스에서부터 줄곧 입었다고 한다. 이 공간이 개인적인 사무실이면서 동시에 손님을 맞이하는 서점이기 때문에,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손님을 응대하는 모드로 스위치를 바꾸는 역할을 한단다.

지혜 씨는 손님을 응대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혔다. "어머니가 자영업을 아주 오래 하셨어요. 문방구도 하셨고, 슈퍼마켓을 하시기도 했고, 분식집도 하셨어요. 우리가 농담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3대 업종을 다 하셨다'고 하죠. 어릴 때부터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서 자라서 저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게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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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힘들어하는 게 있다면? 땡스북스에서 일하면서 매일매일 정해진 영업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 손님이 아무 약속 없이 무작정 찾아와도 응대해야 하는 게 힘들었단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넣고, 싫어하는 것을 뺐더니 사적인 서점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했단다.

"처음에는 땡스북스에서 일하는 동안 개인 SNS에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그냥 순수하게 기록할 목적으로 올렸어요. ‘책속의포스트잇’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책에서 좋았던 문장을 옮겨 적고, 그 밑에 제 감상을 적는다거나, '오늘산책’이라는 해시태그로 “오늘 산 책을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올리기도 하고. 그런데 어느 날 댓글이 달렸는데, 자신은 책을 원래 안 읽던 사람인데 그렇게 올려주는 게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한 권을 사서 읽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 한 달에 한두 권씩 정기적으로 읽는 독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혜 씨는 자신 만의 서점을 차릴 생각을 하게 되었다.

8개월간의 전력 질주

그럼 그렇게 창업하고,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지혜 씨는 지금 행복할까?

"서점을 차린 지 만 8개월이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제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기쁨이 너무 커서 하는 일이 늘어나도, 월급이 줄어들었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만 8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한계가 딱 오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나답게,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독립을 한 거였는데, 즐겁지도 못한 것 같고, 책을 읽어도 (처방을 위해) 검토하듯 읽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지속 가능해 보이지도 않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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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서클리닉'을 공동기획하기도 한 지혜 씨는 그것을 끝으로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지만, 하반기부터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단다. "제가 이 일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나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위험신호를 느꼈을 때 스스로 방식을 바꿀 수 있잖아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자영업이라는 동전의 한 면이라면, 다른 면은 "돈이 되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워낙 책을 좋아하고 서점에서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서점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들 응원했는데 정작 말린 사람은 남편이었다. 요리사로 외식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자영업의 수익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서점이라는 것이 운영하기 위해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카페나 식당처럼 자본이 아주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지속 가능하기가 힘든 게 서점이기도 해요.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할 일이라면 지금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일단 해보고 실패하면 나중에 다른 일을 하면서 ‘안되면 서점이라도 할까’하는 선택지를 없애버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선물하는 사람

끝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잘 아는 사람들, 친한 친구들은 돈을 내고 책 처방을 받을까, 아니면 그냥 공짜로 추천을 받으려고 할까? “저는 질문을 선물하는 사람이라서 잘 아는 친구들과 평상시에 이야기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지인 중에는 돈을 내고 찾아오겠다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반 농담으로 ‘1년에 3번 이상 만나는 사람은 안된다’고 말해요, 하하하."

지혜 씨는 자신이 처방해 준 책을 손님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의 큐레이션 능력이 탁월해서라거나, 책을 정말 많이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한 시간의 대화에 방점이 있다고 봐요. 한 시간 동안 정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은 내용으로 책을 고르기 때문에 그분들이 책을 받았을 때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책 자체도 좋지만, ‘이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고른 책이니까 어떤 책이 와도 괜찮을 거야, 읽어보고 싶어’라는 마음을 갖고 받아 주시기 때문에 책을 받아서 즐겁게 읽어주시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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