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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어떻게 개저씨가 될까

아저씨 해석학의 교과서를 통해 386 세대가 개저씨가 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김희림 2017년 06월 13일

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정유성ㅣ책세상

길거리와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수많은 '꼰대와 개저씨'들. 그들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아저씨가 되었을까요?
격동의 80년대에 젊음을 보낸 아저씨들의 남성성이 90년대를 지나며 어떻게 늙어갔는지 엿볼 수 있는 책,
'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를 소개합니다.

단란주점의 노랫소리

해가 지면 언제나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에 산다. 그 노랫소리가 달콤한 꽃노래라면 참 좋겠다. 노랫소리의 정체는 내가 사는 건물의 지하 1층의 단란주점에서 흘러나오는, 반쯤 취한 주정이다. 벌써 2년 반을 살았기에 음을 이탈하는 노래쯤이야 이어폰으로 능숙하게 틀어막는다. 그렇지만 이어폰을 기어코 뚫고 들어오는 아저씨들의 욕설 섞인 싸움질은 물리칠 방법이 없다. 이제 여름밤이면 모기보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더 싫다.

하루는 느지막이 산책하러 나가려는데 다투는 아저씨들과 마주했다. 내 방 4층에서 매일 듣기만 하던 광경을 라이브로 본다는 설렘에 관전했다. 예닐곱의 중년들은 소리 높여 자신의 과거를 서술했다. 모두가 본인이 '옛날에', 젊었을 때', '왕년에', '한때는', 그리고 '잘 나갈 때'에 얼마나 뛰어났는지 외쳤다. 아무도 듣지는 않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후 새로운 궁금증에 마주했다. 그들이 청년이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은 언제 아저씨가 되었을까?

image 사진=KBS 스페셜 '남자여, 늙은 남자여'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단순히 길거리와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중년들을 관찰하겠다는 호기심은 아니었다. 그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유연하지만, 그들과 같은 젊은 시절을 보낸 내 아버지도 더 깊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젊었을 때인 80년대를 상상하며 공부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으로 거칠게 요약되는 그 격동의 시기는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일명 ‘386세대’인 그들이 어떻게 젊음을 벗었는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그 해답으로 가는 길은 낙성대역 헌책방에서 우연히 마주한 한 권의 얇은 책이 터줬다. 「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남성들 특유의 ‘그들만의 리그’를 따로와 끼리로 요약한 것과 웃는 남근(!)이 그려진 적나라한 표지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성학 서적이라고 생각하고 펼쳤다. 그러나 앞날개에 등장한 저자는 놀랍게도 중년의 남성이었다. 출간연도는 2001년. 문화비평서치고는 낡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image 사진=박상현

80년대의 젊은이들이 지금에 와서 갑자기 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는 90년대가 있다. 90년대의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 없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으렷다. 어쩌면 2001년에 출간된 이 책이 90년대의 사회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지 않을까? 더구나 중년의 남성이 해체하는 남성성이라니. 이 정도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럽게 지갑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카타르시스가 지배한 80년대가 지나자 이전에 볼 수 없던 사회적 갈등들이 등장했다. 그 낯선 현상들의 배경에는 민주적인 정부의 등장과 IMF가 있었다. 그토록 꿈꾸던 민주 사회는 끝내 도래했지만, 나라 전체가 독재 정권과 군사주의로 점철된 시절에 나고 자란 삶을 쉽게 뿌리칠 수는 없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대학 졸업장이 곧 대기업 사원증이던 젊음을 보냈으나 이내 맞이한 것은 IMF의 광풍이었다.

이중의 부권상실 과정

이러한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탄생한 남성성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그것이었다. 다소 길지만, 책의 뒤표지에 적힌 글이자 이 책의 핵심을 인용한다. 이 시대를 사는 중년의 남성성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문구다.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에서는 경제권을 쥔 아버지가 가족의 모든 일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물질과 정신적인 모든 생활 세계에서 권위자로 군림했다. 국가의 통치 권력도 이러한 대가족의 가부장을 확대한 가부장적 왕권이라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아버지의 자리 그리고 그 권위는 종교에서 신의 지위가 그렇듯이 전지전능한 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 시민사회로 변화하는 현대화 결과, 정치제도가 민주적 제도로 바뀌면서 가부장적 권위와 권력 구조 역시 크게 달라졌다. 아버지의 권위를 가진 왕권이 '신민'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국가 권위의 조직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른바 '과다 조직된 사회의 탈 부성'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집안에서의 가장, 즉 아버지의 권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제 모든 권력과 권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산업사회의 한 일꾼으로 전락했다. 아울러 대중사회의 출현으로 아버지 같은 개인적 인격을 가진 권위에 동일시되기보다는 대중적인 상징과 조작에 매달리게 되면서 '이중의 부권상실' 과정이 진행되었다.
절대적인 독재 정권이라는 강력한 아버지를 섬기던 와중에 도래한 제도적 민주화를 맞이한 한국 사회는 우두머리를 잃은 무리가 되어 우왕좌왕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 것이다. 가부장의 권위와 국가의 권력은 공생 관계에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와 함께 아버지의 노동력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는 경제 위기가 찾아왔고 아버지는 일개미로 전락했다. 당대를 산 남성들의 그 끝없는 내적 분열 속에서 '따로와 끼리'의 지배문화는 성장했다. 단란주점 앞에서 술에 취해 외치는 그들의 ‘젊었을 때’는 그렇게 늙어갔다.

원빈을 닮은 아저씨는 없다.

원빈을 닮은 아저씨는 없다. 아저씨라면 술에 취해 비틀대거나 젊은이들에게 훈계를 남발하며 대중교통에서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늙어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20대 초반의 남성인 내게 아저씨들은 앞서 말했듯 연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들이 겪었던 젊음과 늙음을 탐구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의 아래에는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깔려있었음을,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되기 싫어서 그들을 공부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image 원빈을 닮은 아저씨는 없다.

꼰대와 개저씨라는 멸칭으로 범벅이 된 그들의 삶 이면에는 ‘따로와 끼리’라는 지배문화에 삶의 전부를 걸어야 했던 이중의 부권상실 과정이 있었다. 20·30세대의 박탈감과 식민지적 남성성을 다루는 최근의 여성주의 서적과 달리 이 책은 아저씨들이 아저씨가 되어간 과정을 풍부하게 분석한다. 아저씨 해석학의 교과서다. 아저씨의 사고와 행동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아저씨가 싫고, 되기도 싫은, 나아가 남성성 자체에 애증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cover=SBS 스페셜 '어쩌다보니 개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