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r Voice

여자의 1인분은 왜 다르죠?

여자라고 적게 줄거면 밥값이라도 깎아 주든가

정인선 2017년 06월 12일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일행 4명과 함께 국수를 먹으러 갔다. 남자 2명, 여자 2명이 똑같은 메뉴를 주문해 놓고 음식을 기다렸다.

"어머, 뒤 돌아 앉아 있어서 여자분인 줄 알았네. 남자분만 많이 드렸는데." 음식을 서빙해 준 아주머니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남자 일행 1이 남자 치고는 긴, 단발머리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 일행 1을 여자로 착각해 원래 줘야 하는 양보다 적게 줬다는 거였다. 네 사람의 그릇을 비교해 보니, 여성으로 오해받지 않은 남자 일행 2의 국수 그릇만 수북했다. 계속 미안해하며 우리 테이블 주변을 맴맴 돌던 아주머니는 결국 "모자랄까봐 좀 더 드릴게요"라며 국수 사리를 더 내 와서는 단발머리 남자 일행 앞에 내려놨다. 그 양이 거의 1인분의 절반에 가까웠다.

image 단발머리 남자 일행(오른쪽)을 여성으로 착각한 식당 직원 아주머니께서 누가 봐도 남자의 뒷모습을 한 일행의 그릇에만 국수를 가득 담아 주셨다. 사진=윤지원

image 연신 미안해하던 아주머니가 새로 내 온 국수사리. 사진=윤지원

나는 '밥 많이 먹는 여자'다. 여성 평균에 비해 키가 큰 편이기도 하고, 평소 활동량이 많아 끼니를 제때, 충분히 챙겨 먹지 않으면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많이 먹는데다가 빨리 먹기도 해, 치킨이나 피자, 전골처럼 한 그릇에 다 같이 나눠 먹는 음식을 먹을 때면 남들에게 미안해지는 상황이 생긴다. 제 양껏, 제 속도대로 먹다가는 나도 모르게 남들 먹어야 할 것까지 다 먹어치워버리는 탓이다.

어느 복날에는 친구와 둘이 광화문 근처의 유명한 삼계탕 집에 가서 "특 두개요!"를 외치고 열심히 먹다가 양이 약간 모자라 아쉬워하고 있는데, 주변의 다른 테이블은 모두 반계탕을 먹고 있어 머쓱해진 적도 있었다. (복날인데 어떻게 '1인1닭'을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image 평소 딸의 식사량을 잘 아는 엄마가 싸준 아침 도시락. 사진=정인선

식사량이 많다 보니 겪는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닌데, 어딜 가든 "여자가 뭘 그리 많이 먹냐", "밥 많이 먹으려고 운동하는 거냐"와 같은 소리를 듣는 건 애교 수준이다. 듣기 싫은 소리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도 않고 밥을 적게 먹어야 하는 상황만큼은 참아 넘기기 어렵다. 그럼 적게 먹은 사람은 적게 먹은 만큼 음식값이라도 깎아 주던가. 돈은 늘 똑같이 낸다.

한 여성 지인은 이런 일도 겪었다. 돈부리(돈가스 덮밥) 집에 남성 일행과 함께 가서 서로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지인이 돈부리를, 남성 일행이 다른 메뉴를 주문했는데, 점원이 음식을 내온 뒤 지인이 돈부리를 자기 앞으로 가져가자, "아, 여자분이 이거 드신다고 미리 말씀하셨어야죠"라고 말하며 그릇을 되가져갔다. 그리고는 밥을 한 주걱 덜어서 다시 내 왔다.

남성 일행과 같은 값을 내고도 혼자 어딘가 아쉬운 채로 식당 문을 나서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눈치를 잘 봐야 한다. 특히 칼국수나 순대국밥, 설렁탕처럼 한꺼번에 조리한 뒤 1인용 식기에 나눠 나오는 음식점에 갈 때 생존 본능을 발휘해야 한다. 주문을 받는 분이 주방에 대고 "남자 한 분, 여자 한 분이요!"라고 말하면, 곧바로 바로잡아 "많이 먹는 여자니까 똑같이 많이 주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똑같은 메뉴를 시켰는데 주문이 다르게 들어가는 순간을 놓치면? 그 날은 돌아서면 배고픈 날이다.

image 이런 음식을 먹을 때 특히 눈치를 잘 보며 주문해야 한다. 사진=윤지원

다행히(?) 나만 겪는 일은 아닌 듯 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남성 일행과 함께 간 식당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여성들의 하소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게시물들에 달리는 옹호 논리를 보면 대체로 이렇다.

"여자분들은 평균적으로 밥을 적게 먹잖아요. 식당 주인이 경험적으로 판단해서 양을 적게 주는 건데, 잔반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양 적은 여자분들은 많이 줘도 남기면 미안해질텐데, 서로서로 좋은 일 아닌가요?"

얼핏 보면 맞는 소리지만, 이것 만큼 듣기 억울한 소리도 없다. 잔반 나오는 게 걱정된다면 음식을 내오기 전에 "양을 얼마나 드릴까요?"라고 먼저 묻는 게 순서다. 그 순서를 건너뛰고 평균의 경험을 일반화 해 같은 값에 다른 양의 음식을 내오는 건, 기업이 감수해야 할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거나 다름없다. 수요를 미리 예측해 공급량을 조절하는 건 기업의 중요한 능력이다. 수요 예측에 실패해 공급을 지나치게 많이, 혹은 적게 해서 드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그것도 여성 소비자에게만 떠넘기는 건 게으른 일이다.

많은 경우에 차별은 배려의 얼굴을 하고 온다. 배려를 가장한 말을 조금만 달리 해도 차별을 정당화하는 말이 된다.

"여자들은 보통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일을 금방 그만두잖아요. 기업이 경험적으로 판단해 채용할 때 남성을 선호하는 건데, 이걸 갖고 뭐라고 할 순 없지 않나요?"

어디서 많이 본 말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