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삶의 균형을 맞추는 주문,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

밀레니얼의 '나 사랑법' (2) 워라밸

윤지원 2017년 06월 20일

“너네 회사 워라밸은 어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 얼마 전 취업에 성공한 친구에게 이것 저것 물음이 쏟아지는데,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왔다. “워라밸이 뭐야?” 다른 친구가 답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인데, 회사 다니면서 너 개인적인 시간은 어떻게 갖고 있냐는 뜻이지.”

우리는 직업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배웠다. 직업은 ‘직(職)’과 ‘업(業)’이 합쳐진 단어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계발해야하는 과이 있는데, 모름지기 바람직한 성인이라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걸맞은 장을 통해 이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청년들은 일을 시작하면서 회사 중심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재편한다.

그러나 이런 패러다임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에서 번 돈을 에 투자하는 게 삶의 재미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한 집단에 완전히 바치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에게 종이를 주고 삶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일을 중심에 둔 동심원 모양은 절대 아닐 것이다. 대신 이들은 저울을 그린다. 일(워크)를 한쪽 팔에, 개인적인 삶(라이프)를 다른 팔에 올리고 두 무게추의 평형을 저울질한다.

주말만 기다리며 주중을 살아내는 직장인들

28살의 3년차 직장인인 박은지씨는 요즘 그야말로 ‘춤바람’이 제대로 들었다. 박 씨의 ‘뇌 구조’를 그리면 가장 중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바로 ‘스윙 댄스’다.

“일주일에 수요일, 토요일 두 번 스윙댄스 동호회에 나가요. 집은 은평구에, 회사는 상암에 있어서 출퇴근에는 20분 정도만 걸려요. 동호회는 건대에 있어요. 가는데만 해도 1시간 이상 걸리지만 제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답니다.”

박 씨의 일주일 생활을 도식화한 표는 이렇다. 회사에서 정해진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지만 보통 약속이 없는 평일은 약간의 잔업을 마무리한 후 7시나 8시쯤 퇴근한다. 야근이 있는 경우는 9시까지도 남아있는다. 스포츠광이기도 한 그녀는 보통 퇴근 후 응원하는 팀인 롯데의 야구 경기를 ‘집관(집에서 경기를 중계로 즐김)’하곤 한다.

image 평상시 박 씨의 일주일

하지만 수요일은 다르다. 6시만 넘으면 의자에서 엉덩이가 들썩이고, 분침이 움직일수록 안절부절못한다. 6시 반 ‘칼퇴근’을 하고 8시쯤 건대에 도착한다. 그때부터 세 시간 동안 동호회 사람들과 춤을 춘다. 모임이 12시 넘어서까지 뒤풀이로 이어질 때도 있다. 막차를 타고 귀가하면 잘 시간이 새벽 2시가 훌쩍 넘지만 박 씨는 개의치 않는다.

‘이틀만 있으면 토요일이다’를 주문처럼 외며 주중을 ‘살아낸’ 박 씨에게 주말은 더더욱 본격적이다. 느지막히 점심쯤 일어나 연습실로 가면 오후 3시부터 강습이 시작된다. 약 7시간 동안 동호회 사람들과 합을 맞춰 춤을 춘 후 뒤풀이를 간다. 음주가무 앞에서 소극적이지 않는 그녀는 막차가 아쉬우면 때로는 다음날 첫차를 타고 귀가하는 작은 일탈도 가끔 저지른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회사는 왜 다니냐’고 물으니 아주 직접적인 대답이 나온다. “돈 벌려고 다니죠.”

“업무가 저와도 잘 맞는 편이고, 제게 매력적인 직업이긴 해요. 하지만 회사는 회사에요. 누가 일을 하고 싶어서 하나요. 솔직히 싫은데 억지로 다니는 건 똑같잖아요.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난 독립한 한 명의 성인이니까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해야 하죠.”

졸업 후, 서울의 한 스타트업이 첫 직장이었다. 그러나 회사 생활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었고, 심지어 이직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박 씨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힘든 것은 인간관계였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사람 때문에 생긴 문제로 심하게 마음병을 앓았다. 몇 년 간 위시리스트에 품고만 있던 스윙댄스를 시작한 것도 그 때다.

“예전에는 내 탓을 많이 했어요. 무뚝뚝한 성격이라 스스로 애교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제 모습과 성격이 나오는 거예요. 여기 분들은 제가 애교가 넘치고 흥이 많은 사람이라고 예뻐해 주세요. 칭찬해주실 때마다 더 자극이 되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몸에 배게 됐다는 걸 느껴요.”

현재 박 씨가 다니는 회사에는 약 80여명의 직원들이 있는데, 젊은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프리해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동료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박 씨는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회사에서의 박 씨와 동호회에서의 박 씨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 ‘나의 사랑은 퇴근 후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셀레브 - sellev.’의 영상. SNS 상에서 조회수 15만 회를 찍으며 화제가 됐다.

워크에서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집착을 버렸다. 직장 밖의 라이프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새롭게 재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워라밸의 핵심은 ‘균형의 묘’

그렇다고 워라밸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돈만 벌러 다니는 일터의 나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워라밸에서 중요한 것은 직장 밖의 라이프가 아니라 ‘밸런스’다. 박은지 씨가 아무리 직장에서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주말에 스윙댄스 동호회가 있기 때문이고, 아무리 밤 새 동호회 사람들과 즐겁게 놀아도 아침 7시 30분이면 일어나야 하는 것은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image 사진=박은지 제공

워크와 라이프를 하나의 추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워크 쪽 저울팔은 이미 추가 올라가 있다. 여기서 워라밸은 한 쪽으로 쏠린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다. 저울을 한 쪽으로 쏠리게 둘 것인지 평행을 맞출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다.

다만 박은지 씨는 회사 외의 다른 모든 것이 라이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삶을 꾸리는 데에도 노력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는 제가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해서 아카펠라 동호회도 해 보고, 직장인 밴드에도 도전해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거예요. 좋아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거랑 내가 효능감을 가지는 취미랑은 또 다르더라고요. 그런 경우 라이프와 워크가 밸런스를 맞춘다고 할 수 없죠. 결국 제게 워라밸은 유동적인 거예요. 중요한 것은 워크와 라이프의 질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 그리고 가끔 어떤 변수가 생겨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관리하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