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덕업일치

아이폰 수리의 전설, '서강잡스' 김학민 씨를 만나다

밀레니얼의 '덕업일치' (6) 스마트폰 수리공

박상현 2017년 06월 20일

김학민
남자, 31세
서강잡스 대표
서울 마포구 신수동

김학민 씨는 서강대 학생들에게는 물론, 다른 대학 학생들에게도 잘 알려진 아이폰 수리의 전설이다. 본인의 이름보다는 ‘서강잡스’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데, 비록 남들이 붙여준 별명이지만 김학민 씨 스스로 스티브 잡스의 팬을 자부하기 때문에 아이폰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그의 사업체 이름 역시 서강잡스로 정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6년 된 탈북자다.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한 것도 (탈북자들의 적응과정을 돕는) 하나원을 나온 후인 2011년이다. 그보다 먼저 북한을 탈출한 고향 후배를 한국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때 받은 선물이 스티브 잡스의 전기였다. “오빠가 좋아하는 IT 업에서 유명한 분이니, 이 책 잘 읽고 잡스 같은 인물이 되시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책을 두 번 정독하면서 잡스의 팬이 되었다. 지금도 그가 작업하는 방 벽 한가운데에는 잡스의 젊은 시절 사진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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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시계 수리공

김학민 씨는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다. 북한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던 시절, 어머니는 중국으로 일하러 가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누나는 멀리 떨어진 이모 집에 가서 살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럴 즈음 그가 시작한 것이 기계 수리였다. 그는 7, 8 살 때부터 스피커 속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다 뜯었다가 조립해보면서 기계와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중학생 때 시계를 뚜껑을 열어 전부 분해를 했다가 조립을 해본 후 수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이 ‘얘가 시계 수리를 한다’고 소문을 내서, 너도나도 시계를 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꼬마 시계 수리공’이 되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눈으로 보고 이해한 것으로 고치다가, 전자회로의 원리 따위를 배울 때는 북한에 많이 퍼져 있는 일본산 기술서적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 부터 책을 펴놓고 독학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지금도 웬만한 수리는 자신이 직접 해보고 익히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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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의 공구 사정은 몹시 나쁘고, 특히 그가 살던 곳은 함경북도에서도 가장 북쪽의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철판을 자르고 줄로 갈고, 강도를 높이기 위해 불에 달구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없으면 없는 대로 방법을 찾아서 수리하던 버릇 때문에 지금도 아이폰과 맥 등의 제품을 수리할 때 최소한의 도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구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비싸서 눈독만 들이지만, 언젠가는 스위스제 공구 세트를 꼭 갖고 싶단다).

두만강을 건너다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자제품을 수리해주다 보니 북한에서는 불법인 한국 문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중국 지상파 방송이나, DVD, 비디오테이프, USB를 통해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접하고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발각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거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국 드라마를 한 편 본 사람이 형기 5년을 선고 받고 교도소로 가는 것을 보고, 100편도 넘게 본 자신은 교화소에서 평생을 살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낙담했다.

그런데 보위부에서 김학민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평소 돈이 없는 집이 수리를 맡기면 수리비를 받지 않고 밥 한 끼만 얻어먹고 나오던 그를 이웃들이 돕기로 한 것이다. 보위부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를 해주고, 뇌물도 몰래 넣어주고, 필요하면 경찰 내 인맥을 동원하기도 하면서 쉽게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풀려나오자마자 탈북을 결심했고, 추운 겨울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고, 남쪽으로 내려와 태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이웃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떠나오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려요. 제가 잘 되어서 (통일된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제가 진 빚을 갚고 싶습니다.”

사업의 시작: 우연, 혹은 필연

김학민 씨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4를 떨어뜨려 화면이 깨진 일이었다. 아끼던 물건이 부서지니 그렇게 가슴이 아프더란다. 그런데 부품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걸 알고 스스로 고쳤는데, 자신이 쉽다고 생각한 작업을 친구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나둘 도와주다가 소문이 난 것이다. "서강대 대나무숲(익명게시판)에 ‘서강대에 유명한 잡스님이 있다는데, 연락처 좀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잡스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그렇게 시작하다 보니 투자를 받거나, 홍보를 하지도 않았고, 거창한 작업실을 마련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북한에서부터 하던 일이라 사업으로의 전환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사업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가 하던 일, 잘 하는 일 하나를 열심히 하면서 야금야금 확장되어야지, 일을 크게 하겠다고 여기저기에서 투자를 받고, 브랜드를 만들고 시작하면 금방 위기를 맞는 걸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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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제품을 수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런 그의 철학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손님이 와서 폰을 맡기고 수리를 하는 과정은 아주 단순했고, 긴 말이 필요 없었고, 스크린 보호필름 등 수리와 무관한 제품을 팔려고 하지도, 흥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서강잡스를 몇 번 이용해봤다는 윤 아무개 씨에 따르면 바로 그 점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했다. 아이폰과 맥 등 애플 제품 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강잡스를 방문하는 고객의 90%가 여성이다.

“일단 여학생들이 아이폰을 더 많이 쓰는 것 같고요. 여성분들이 더 잘 떨어뜨리지 않나 싶어요. 제 생각에는 남자들은 깨져도 그냥 쓰는데, 여성분들은 바로 고치러 오시는 것 같아요.” 대개는 울듯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왔다가 깨끗하게 고쳐진 폰을 받아들고 활짝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품을 통해서 다친 마음을 고쳐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얼마를 벌어도 한 달 수입의 10%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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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업 자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손님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김학민 씨는 사업을 계속하고 싶지만, 동시에 (지금은 휴학 중인) 학업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곧 직원을 한두 명 채용해서 수리업도 계속 운영할 계획이고, 전자공학 공부를 마치고 유학도 갈 계획을 하고 있다. “지난 5년, 10년을 돌아보면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어요. 목숨 걸고 감행했던 한국행까지도요. 그래서 저는 미래의 목표는 거창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서른 살을 넘겼는데,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다. “어떤 나이를 거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꼭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20대 초, 중반, 그리고 서른 살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