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스키니진의 시대가 끝났다

행복을 누리시라, 당분간

D Deepr 2017년 06월 27일

LEDEBUT 피쳐디렉터 신동윤 님이 기고해주신 글입니다.
✉ azmoadys@gmail.com


스키니진의 시대는 끝났다. 물론 아직은 제법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 유행이라는 게 ‘오늘부로 끝!’이라고 외치고 사라져버리진 않는다. 이미 남성복에서의 스키니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여성복의 경우에도 점점 통이 넓어지는 추세다. 이제는 스키니핏보다는 와이드핏이 더 ‘트랜디한’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유행이 변했고,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스키니진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이 해방이 제법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image 스키니진은 숨이 막힌다. 실제로 스키니진은 소화도,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안된다.

아, 행복을 맘껏 누리시라. 기뻐하는 여러분께 이런 말을 하려니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여러분은 언젠가는 다시 불행해지게 되어있다. 다시 스키니진을 입고 삶의 질을 낮추고, 밥을 먹을 때 단추를 풀고 먹어야 할 거다. 아마도 길면 30년, 짧으면 15년 정도 후에 말이다.

왜냐고? 유행은 변덕스럽긴 해도 지극히 성실한 녀석이라서 그렇다. 그 자리를 빙빙 돈다. ‘설마 이게 설명 끝이야?’라고 생각하신다면 끝이 맞다. 유행은 도니까 다시 스키니진도 유행으로 돌아올 거다. 물론 이유는 있다. 하지만 유행이 왜 돌아오는지를 이해하려면 유행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image 이런 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이패션의 이미지 아닐까. 사진=wikipedia

유행, 유행, 유행.

‘하이패션’이라는 말이 어떤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지 모르겠다. 명품 브랜드들의 정체를 알 수 없고 실생활에서 입을 리 없는 옷들이 행렬하는 모습? 대개 이런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하이개그의 접두사와 같은 수준으로 사용되어서 ‘비대중적인 패션’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물론 그 뜻은 아니다. 구글은 하이패션을 ‘일반에 유행되기에 앞서 최첨단을 가는 유행’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가장 최선봉에 있는 유행’이라는 거고, 대중적 유행 역시 하이패션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유행은 모방에 의해서 발생하는 하나의 사회적 흐름이다. 국가에서 ‘이번 시즌의 유행은 와이드핏입니다.’라고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중요한 건 그 ‘다른 사람’의 존재다. 대부분의 경우 모방의 대상과 선망의 대상은 일치한다. 그럼 패션의 영역에서의 선망의 대상은 누구일까? 바로 셀러브리티와 사회 상류층이다. 결국, 그들의 소비하는 브랜드인 명품, 그러니까 패션 하우스(메종)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이패션이 유행의 시작점이 된다.

쉽게 정리한 유행의 시작
1. 패션 하우스들에 의해서 하이패션에서 하나의 스타일이 주류로 떠오른다. (이는 스타 디자이너의 영향일 수도, 사회적 영향일 수도 있다.)
2. 해당 제품들이 셀러브리티, 사회 상류층과 같은 인플루엔서에 의해 소비된다.
3. 소위 패셔니스타, 힙스터라고 불리는 얼리 어답터 계층에 의해 소비된다.
4. 사회 전반에 유행으로 퍼져나간다.
5. 뒤늦게 흐름에 합류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때쯤, 새로운 유행이 나타난다. (그래서 꾸준히 촌스러운 사람이 생긴다…)

유행은 돈다.

위의 표를 보면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아니, 유행이라는 게 하이패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해놓고, 또 하이패션에서 하나의 스타일이 주류로 떠올라야 한다고 하면 그건 누가 정하는데?
아! 너무 좋은 지적이다. 그것 때문에 유행이 돈다. 물론 혁신적인 한 천재에 의해서 스타일이 주류로 떠오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코코 샤넬이라고 부르는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다. 샤넬 전후의 여성복의 차이를 보면 분명 샤넬에 의해서 근대와 현대의 여성복이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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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이전(1900년대)과 샤넬 이후(1917 chanel casual)의 여성복의 차이. 코르셋이 사라졌고, 훨씬 편안해졌다. 파격의 차원이 다르다. 사진=wikimedia commons

하지만 샤넬 같은 천재가 계속 쏟아져 나오지는 않는다. 결국, 다수의 디자이너가 인정하는 ‘좋은 디자인’이 주류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 ‘좋은 디자인’의 판단 기준이 바로 유행을 돌게 만드는 원인이다.

디자이너의 연령대는 다양하지만(라거펠트 83세, 알렉산더 왕 33세 등), 모두가 트랜드를 이끄는 건 아니다. 대개 트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들도 세대 단위로 교체되는데, 각 세대는 비슷한 문화를 향유한 사람들이다. 현재 트랜드를 이끌고 있는 발렌시아가의 뎀나 즈바살리아나 캘빈클라인의 라프 시몬스도 X세대로 묶이는 문화적 공통점을 갖는다. 이 문화적 배경이 바로 ‘공통적인 좋은 디자인’에 대한 관점을 만든다. 무척 당연한 얘기다. 디자이너가 되는 사람은 기존의 패션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던 패션은 아직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 혹은 어린 시절에 봤던 (아마 디자이너가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주류였던) 스타일이다. 게다가 그 시기의 옷들은 선망했던 대상으로 남기도 쉽다. 결국 그들이 생각했던 ‘멋진 옷’은 디자이너가 주류로 올라왔을 때 디자인으로 구현된다. 그 기간이 바로 ‘짧으면 15년, 길면 30년’이다.

스키니진도 마찬가지다.

스키니진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스키니진의 유행을 검색해보면 ‘2004년 케이트 모스가 입고 등장하여…’로 시작하는 수많은 글을 볼 수 있다. 이제 여러분도 알겠지만, 얕은 접근이다. 100번 양보해서 케이트 모스가 스키니진의 시작이라고 치자. 그럼 남성복에서 스키니진이 유행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케이트 모스의 실루엣에 이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의상까지 따라 입지는 않는다. 그럼 핫팬츠도 남자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어야 했다. 당연히 답은 하이패션이다. 2002년 라거펠트는 s/s시즌에서 여성용 스키니진을 선보였고, 2003년 s/s에서 디올옴므는 남성 버전을 선보였다.

스키니진이 뭔가 엄청나게 특이한 아이템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소비했던 스키니진이 처음도 아니다. 영화<써니>를 보면 알겠지만, 1980년대에도 스키니진은 유행이었다. 물론 디테일에서 차이는 보이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놀랄 만큼 닮았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보이기 시작하는 크롭탑은 96년에 유행했었던 아이템이다. 쵸커? 97년도다. 18년, 19년이 걸려서 다시 유행이 되었다는 얘기다. 여러분을 해방시켜준 와이드 팬츠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끔 옷장을 뒤지다 입을 옷이 없으면 어머니의 와이드 팬츠가 더 트랜디해 보인다며 한탄하고 한다. 그럴 수 있는 건, 우리 어머니가 한창 ‘멋쟁이’던 90년대에도 와이드팬츠가 유행이었던 탓이다.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다. 스키니진이 불행을 의미한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야 하지정맥류의 위협에서 벗어난 여러분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지금 세대의 디자이너가 주류로 떠오르는 날이 올 거다. 그때가 되면 밥을 먹을 때 단추를 풀어야 하고, 입을 때마다 삶의 질이 떨어짐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온 유행이라는 놈의 성실함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image 여러분도 꽈찌쭈와 같다. 햄보칼수가 업다. 사진=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