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취·부

이 모든 게 정말 귀족노조 탓이라고?

독자 백승호 님이 주문한 기사 "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을 등한시할까?"

정인선 2017년 06월 27일

세 번째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에 많은 독자께서 취재 요청을 해 주셨습니다.

독자 백승호 님은 '노동조합은 왜 비정규직을 등한시하는가?'라는 주제로 취재를 요청해 주셨습니다.

백승호 님은 Deepr 디퍼와의 전화 통화에서 "노동조합을 위한 변명을 해 보고 싶었다. 기아자동차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분리 사태 등을 두고 언론에선 늘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는데,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이 소외되는 게 정말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만인지 취재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승호 님이 요청해 주신 주제는, 62명의 독자께서 참여해 주신 설문조사에서 11개 주제 중 22%(14표)로 4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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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퍼야 취재를 부탁해>에 취재 요청해 주시고, 투표해 주신 모든 독자분께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나요?

  •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 100: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이 숨겨둔 신의 직장'이라고 알려진 대기업 정규직 '취뽀' 성공
  •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 회사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 "인선 씨, 그 얘기 들었어? 이번에 무기계약직 직원들 전부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면서?"

이런 생각 안 할 자신 있으신가요?

'쟤랑 나랑 똑같은 정규직이 된다고?
심지어 임금 테이블까지 한 번에 똑같이 맞추고?
입사 경로부터가 다른데, 그게 말이 돼?'

A사 1 사측과 노동조합은 최근 단체교섭에서 무기계약직 직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금 테이블과 평가 지표까지 똑같이 맞추는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민주노총 가맹조직 가운데 한 군데에서 상근자로 일하고 있는 ㄱ 씨는 "A사 사례는 정말 이례적인 케이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대부분 노동조합이 매년 사측과의 단체교섭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들고 갑니다. 하지만 보통 (정규직) 조합원들의 임금을 1%, 2% 올리기도 어려우니,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협상 단계에 접어들기도 전에 노조도 금방 포기하게 되죠.

노조 지도부도 정기적으로 조합원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데,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관철하려다가 기존 정규직 조합원들의 이익도 못 지키게 될 경우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어렵잖아요."

'쟤는 상고 나왔는데, 나랑 똑같은 대우 받는다고?'

Deepr가 지난 19일 오후 직접 만난 A사 노동조합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노조 입장에선 가장 큰 걸림돌이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이에요. 어디나 기득권인 사람들은 자신이 기득권이라는 것도 잘 모르잖아요. 특히 요즘은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데, 높은 경쟁률 뚫고 들어온 젊은 조합원들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A사 노동조합은 2015년 이전부터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사측에 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야 단체교섭에서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정규직 조합원들을 설득해 요구 사항을 하나로 정리해 모으고, 또다시 사측을 상대로 설득해내기까지 꼬박 3년이 걸린 겁니다.

3년 동안 A사 노동조합 지도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규직 조합원들을 상대로, 무기계약직 직원들을 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지 설명회도 계속 열고, 기수별로 간담회도 열었습니다. 또 노조 지도부가 사적으로 친분 있는 조합원들을 수시로 만나 설득했습니다.

"입사하기 전에는 '계약직들도 좋은 조건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내가 막상 정규직이 되면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잖아요. '쟤는 상고 나왔는데, (정규직인) 나랑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고?' 하는 의식이 어디 한순간에 깨질 수 있나요. 그래도 우리는 설득을 해낸 거죠."

사측의 '갈라치기'가 통하지 않은 이유

A사 노조보다 먼저, 그 어려운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조합원 사이의 연대를 성공적으로 이룬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곳곳에 케이블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씨앤앰 노동조합입니다(현재 사명은 '딜라이브'입니다) .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임정균 씨와 강성덕 씨는 지난 2014년 말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서 50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습니다. 씨앤앰 협력업체 직원 109명이 해고된 데 반발한 농성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조합원 두 명이 광고탑 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정규직 조합원들이 '지원 사격'에 나섰습니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조를 짜서 농성장을 지켰고, 단식 투쟁에도 함께했습니다. 사측은 고공농성 50일 만인 2014년 12월 31일 밤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의 복직을 약속했고, 전광판 위에 오른 두 사람은 2014년 마지막 날 기적처럼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뭔지 아시나요? '파리 목숨' 비정규직이던 임정균 씨와 강성덕 씨 모두 지금은 복직이 됐을 뿐 아니라 원청의 정규직으로 전환돼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딜라이브는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조합원 500여 명 가운데 각각 105명과 15명, 총 120명을2 원청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과정에 임정균 씨와 강성덕 씨도 포함이 된 거죠.

노동자들이 고공농성과 같이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설 경우,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투쟁의 맨 앞에 선 노동자들은 복직 또는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다른 직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서기 전에 머뭇거리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씨앤앰 노동조합은 어떻게 이런 성과를 얻어낸 걸까요?

김석우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장은 "노동조합의 힘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씨앤앰 노동조합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다른 노조들과는 다른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함께 살자'는 문화

씨앤앰 노동조합이 속해 있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희망연대노조(이하 희망연대노조)는 사업장 또는 산업군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된 '일반노조'입니다. 일반노조가 뭐냐구요? 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만 하면, 어느 회사에 소속돼 있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노조를 일반노조라고 해요. 씨앤앰 노동조합은 바로 이 희망연대노조를 통해 조직된 첫 번째 사업장 노조입니다.

희망연대노조의 구호는 '함께 살자'입니다. 이 '함께 살자'라는 말 앞에는, 생략된 말이 많아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자', '(원청과 하청이) 함께 살자', '(노동조합과 지역사회가) 함께 살자' 등. 여러 차원의 연대를 이루겠다는 희망연대노조의 목표가 이 구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씨앤앰 노동조합도 조직 초기부터 정규직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원청과 하청 소속 조합원들 사이의 연대가 왜 중요한지, 정규직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을 조금 양보하고서라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뤄내는 게 '함께 사는 길인지'를 알리는 교육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고 합니다.

덕분에 "'노동조합에 들어오면 다 이렇게 하는 건가 보다' 하고, 연대가 필요한 순간 정규직 조합원들도 무조건반사적으로 달려가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 심복 교육부장의 설명입니다. 김석우 지부장은 "조직 초기부터 문화를 잘 만들어 놓은 덕분에 정규직 조합원들과 비정규직 조합원들 사이의 '노-노 갈등'이 비교적 적었습니다. 만약 (정규직 조합원들의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을) 중간에 했다면 저희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순조롭기만 하진 않습니다. 비정규직 조합원 120명의 정규직 전환을 이룬 후에도,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조합원 양쪽 모두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측과의 단체교섭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넘어, 임금까지 기존 정규직과 똑같이 맞춘 요구안을 통과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김석우 지부장의 설명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각자의 길로?

지난 4월 28일, 노동계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국내 완성차 사업장 노조 가운데 유일하게 '1사1노조' 원칙을 지키고 있던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조합원의 가입 조건을 박탈하는 안을 총회에서 조합원의 과반수 투표로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속해 있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은 '한 사업장에는 하나의 노동조합 조직만 존재한다'는 1사1노조를 큰 원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힘을 모아야 사측을 상대로 싸우기 좋으니까요. 현대자동차 등 큰 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요구를 모아 한 노조를 유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대부분 사업장이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를 따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아자동차 노조가 어렵게 지켜 온 1사1노조 원칙을 깨고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가입 자격을 박탈한 데 대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기아자동차 정규직노조 관계자는 26일 Deepr 디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사1노조'가 금속노조의 큰 원칙이긴 하지만,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가운데 이 원칙을 실현해 10년 가까이 유지했던 곳은 기아차 뿐이다. 기아차 노조가 지난 10년 동안 분명 모범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사내하청 노조와 정규직 노조가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은 보지 않고 무조건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걸 보면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도 든다."

이 관계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를 하길 꺼렸습니다. 대신 기아자동차 정규직노조 웹사이트에 게재된 노보 '함성소식'을 통해, 사내하청 노조 분리 투표를 하기 전 정규직 노조 내부의 분위기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image 기아자동차 정규직노조가 지난 4월 20일 발행한 '함성특보'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image 기아자동차 정규직노조가 지난 4월 13일 발행한 '함성소식'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

  1. 사측과의 주요 합의사항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가 "반대를 위한 반대"(함성소식 4월 13일 자)를 하곤 한다는 점
  2.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노조와의 합의 없이 파업이나 농성 등 단체행동에 나서는 등 노동조합 내부 규율을 어겼다는 점

입니다.

2016년 10월 기아자동차 노조와 사측은 4,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 1,049명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당시 기아자동차 노조 화성공장 사내하청분회는 '전원 정규직화' 요구보다 후퇴한 합의안에 반발하며 독자적인 파업을 했습니다. 2006년부터 '1사 1노조' 원칙을 운영해 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서로 다른 요구를 한 조직 안에서 모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게 정규직 노조의 주장입니다. (위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해드린 씨앤앰 노조의 경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가 별도의 지회로 꾸려져 있습니다.)

기아차 사내하청노조 소하지회의 윤형모 지회장은 "기아차 노조에서 사내하청노조가 분리된 다음 아직 조직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사측과의 임금 교섭이 진행 중이라 대답이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오귀용 기아차노조 광주전남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27일 오전 Deepr 디퍼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부적으로 부담이 있다는 것도,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신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해 왔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등이 반대 뜻을 계속 표명했음에도 조합원 총투표라는 방식까지 거쳐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Cover = Lee Jin-man /AP Images


  1. A사 사측과 노동조합은 무기계약직 전원 정규직화 사실을 언론에 알리는 시점을 사측이 결정하는 조건으로 단체교섭을 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달라는 A사 노동조합의 요청에 따라 회사명을 가명 처리했습니다. 

  2. 바로잡습니다. 2016년 9월 102명, 2017년 1월 14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청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