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취·부

[디퍼스] 운동권 후배가 되짚어 본 NL 탄생과 역사

독자 이초현 님이 주문한 기사 "NL이 뭔가요? N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좋지 않은건지 궁금해요!"

D Deepr 2017년 07월 07일

이 글은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이하 디·취·부)를 통해 공모를 받아 영 뉴스 크리에이터 디퍼스 쌔미(김별샘) 님이 직접 취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독자 이초현 님은 "N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좋지 않은건지 궁금해요."라고 취재 요청을 보내 주셨습니다.

독자 원예솔 님, 황정민 님도 "NL이 뭔가요?" "NL뿐 아니라 다른 운동권 계열도 궁금해요!"라고 호응해 주셨습니다.

취재를 요청해 주시고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NL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제 친구는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줄임말 아니냐고 하더군요. 80-90년대 학번의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일 수 있지만, 그 이후 세대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단어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 이름들은 한번쯤은 TV나 인터넷에서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석기, 이정희, 김재연,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이들은 NL의 대표 정치인이거나 혹은 한때 NL 운동에 몸담았던 정치인들의 이름입니다.

이들의 이름을 검색하면 자동완성처럼 따라다니는 단어가 몇 개 있는데요. 좌파, 빨갱이, 종북. 그리고 주사파입니다.

image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해체됐다. 출처 MBN

지금은 그저 ‘종북’과 ‘빨갱이’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동네북처럼 보이지만, NL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까지 한국 민주화 운동의 핵심세력이었고,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들을 많이 만들어 낸,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역사를 가진 집단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시들시들해 보이는 NL, 과연 이들은 누구일까요?

일단, NL이 뭐야?

NL은 National Liberation 의 줄임말입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민족 해방’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NL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전두환이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독재를 하던 서슬 퍼런 시기에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내부에서였습니다. ‘반미’ 와 ‘민족 자주 통일’을 핵심으로 주한미군철수, 민족 자주 통일 운동 등의 활동을 전개했고, 한때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국회 원내 진출도 이루어내기도 했습니다. NL이 탄생한 과정과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흐름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이유는, NL의 탄생 배경에는 근현대사 사건들이 밑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NL은 어떻게 만들어졌어?

1. 1948, 두 개의 정부 수립

1945년 해방을 즈음하여,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반도 내의 한민족 자주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 12월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결의하게 되면서(모스크바 3상회의) 한민족 자주독립의 꿈이 좌절됐습니다.

이후 한반도는 북위 38도선 기준으로 남쪽은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군정이, 북쪽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 군정이 신탁통치를 받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여운형 등의 중도파들이 좌우합작운동 같은 민족 중심의 통일운동을 전개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였고, 결국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수립, 같은 해 9월 9일 공산주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스탈린의 소련 군정 아래 형성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라고 불리우는 일국사회주의는 '만국의 노동자의 일치단결'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허황되었다는 전제 위에, 개별 국가의 사회주의 혁명은 해당 국가의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달성해야한다는 공산주의 혁명 이론입니다. 이 이론이 중국과 북한으로 오면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혁명이론으로 변형된 것이죠.

2. 남북이 ‘사상’으로 견고해지다

이후 한반도는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남북한 모두 국가 차원에서 ‘사상’을 다지기 시작합니다. 먼저 남한은, 국가 차원의 반공 사상을 강화합니다. 제도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의 반공 심리를 이용해, 공산주의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포함한 모든 진보적인 사상을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내기 시작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심리는 당시 사회 운동의 성격도 온건, 부르주아적, 민족주의의 성격으로 ‘반유신, 반독재’ 의 구호밖에 외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독재 세력을 몰아내면 시민들 개개인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면 모든 것이 끝날것이다’는 막연한 기대가 컸을 것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도 하에 소련 공산당과 결별한 김일성 유일 체제를 확립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유일 체제의 사상적 근간이 되는 ‘주체사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헌법으로 채택(1972년)하게 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를 핵심 모토로 하여 ‘인민이 사회역사 혁명의 주체’가 되어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해야한다는 내용의 주체사상은, 훗날 한국에 들어오면서 운동권들, 특히 NL의 필수 학습 과목(?)이 됩니다.

3.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혁명을 이끌 것인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운동권, 특히 학생운동권 안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운동을 진행해 나가야할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5.18을 겪게 되면서 이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시민들을 향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그에 맞선 시민들의 자발적 투쟁,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며 한국의 든든한 우군이라 믿어왔던 미국이 보인 방관자적 태도를 보며 운동권 내부에서는 그동안 해왔던 방식(온건, 부르주아적, 민족주의)으로는 사회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반공사상으로 무장된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운동의 가이드라인이 전무하다시피 했고, 사회주의 서적은 한국어 번역판으로 출판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필사본으로 낮은 퀼리티의 일본어판 <자본론> 번역본, <공산당 선언>, <모순론> 등의 마르크스 원전들을 돌려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요.

사회주의 서적 공부가 진행되면서, 운동의 ‘판을 짜는’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을 놓고 설전을 벌이게 됩니다. "현재 한국의 사회발전 단계가 어디냐?""변혁의 주체인 민중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독재가 물러나고 모든 시민들이 한 표씩 얻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예전의 운동 방식을 뒤엎고, 그 동안 없었던 새로운 흐름을 짜야하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화두이고 논쟁거리였죠. 이 논쟁을 ‘사회구성체 논쟁’(줄여서 사구체 논쟁) 이라고 부릅니다. 5년간 3차례 벌어진 사구체 논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운동권 계열이 탄생했는데요. NL 계열도 이때 탄생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의 현재 상태’와 ‘혁명의 주체’를 놓고 3개의 노선이 논쟁을 벌였는데요. 민주주의 국가를 형성한 후 민중혁명의 역량을 키우지는 CDR(Civil Democratic Revolution, 시민민주주의혁명),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로 위축된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여 혁명을 꾀하는 NDR(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 민족민주주의혁명), 자본주의로 인해 형성된 계급 갈등의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혁명을 꾀한 PDR(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중민주주의혁명)이 그것입니다. 이 중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 학생 운동권의 주도권을 잡은 진영은 NDR이었습니다. 이 NDR이 NL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강철의 등장: 주사파의 탄생

NDR이 학생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1986년, 한 팜플렛이 대학가를 나돌기 시작합니다. 「미제(미국) 간첩 박헌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제목으로 이루어진, 팜플렛 한 귀퉁이에 ‘강철’이라는 필명이 적힌 이 팜플렛들은, 관념 논쟁으로 내부의 에너지가 소모되던 학생운동권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쉽게도 읽혔지만, 논쟁으로는 해소되지 못하는 무언가를 긁어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죠.

그 내용을 종합해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금의 전두환 독재 정권도 결국 미 제국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야 할 적은 미 제국주의다. 올바른 품성을 기르는 것은 올바른 사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올바른 품성을 기르고 주체사상을 학습하여 민족 자주 통일을 이루는 것이 혁명의 완성이다.’

image 출처 채널A

이 팜플렛들은 훗날 책으로 엮이는데, 이것이 <강철서신>입니다. 이 팜플렛을 작성한 ‘강철’은 김영환 이라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1986년 서울대에서 결성된 구국학생연맹의 핵심멤버였지만, 그와 동시에 북한의 대남방송과 일본의 자료를 밀반입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비밀리에 전파하는 ‘강철’ 이기도 했습니다.

강철서신 붐 이후 NDR의 상위 핵심 멤버들은 주체사상에 매료됩니다. 투표로도, 독재세력에 대한 자체적인 투쟁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현 상황을, 주체 사상의 수용과 그에 입각해 자주적으로 자생하는 북한을 포섭하여 타개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들을 ‘주체사상파, 줄여서 주사파’라고 칭합니다.

주사파들을 중심으로 한 NDR은 86-87년을 그들의 투쟁 방식을 민족-민주-민중, 즉 '삼민투' 투쟁으로 결정합니다. 순서 그대로 ① 민족의 이름으로 뭉친후에 ②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③ 민중의 이름으로 제국주의를 몰아내는 사회혁명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죠. 하지만 방식에 대한 내부 견해의 차이로 인해 NDR은 민민투(민족민주투쟁위원회)와 자민투(자주민족투쟁위원회)로 분열되는데요. 민민투는 CA로, 자민투는 NLPDR로 명칭을 바꾸게 됩니다. 제헌의회(Constituent Assembly)라는 뜻의 CA는, 87년 6월 민주화 항쟁 과정에서 ‘모든 것을 갈아엎고 새로운 정부를 구축하는 제헌의회를 꾸리자’고 주장했습니다.

NLPDR(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족해방민중민주혁명)은 자신들의 강경노선을 고집할 경우 주류에서 고립될 수 있기에, 실리적인 관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쉬운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죠. 이는 6.29 선언이라는 결과를 얻어냈고, NLPDR, 즉 NL 은 이 사건 이후 대중적 지지와 함께 한국 운동권의 주류가 됩니다.

5. 무엇을 먼저 이룰것인가?: NL-PD 논쟁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후, CA는 자발적으로 해체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NLPDR 노선에 합류하게 되는데요. 이 즈음 NL 내부에서는 또 다른 노선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직선제로 새로운 내각이 구성이 되는 상황에서, 혁명의 다음 수를 어떻게 놓을지를 가지고 의견이 갈린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미 제국주의의 봉건제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 한국을 빼내어, 민족 자주 국가로 나아가자는 NL(민족해방)과 자본주의의 식민지 하에 발생한 계급 갈등을 깨부숴야 한다는 PD(민중민주)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 두 파에 앞서 언급한 CA가 분파하여 합류하는데요. 다수는 PD에 합류하고, 일부는 ‘비주사파’ NL로써 NL에 합류합니다.

NL은 뭐하는 애들이야?

이전까지는 NL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NL이 어떤 집단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1. 반미(反美)

앞서 설명드렸듯이, 80년대 운동권 내에서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인권문제에 열심이었던 카터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레임덕, 그리고 그 다음 대통령인 레이건과 전두환이 가진 1983년 서울 정상회담을 통해, 운동권에서는 미국이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우군이 아니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게됩니다. 때문에 운동권 내부에서는 노선과 상관없이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확고히 하게 되죠. 이 분위기에 걸맞춰 주체 사상이 유입되면서, NL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미 제국주의 타도를 주장하는 북한 체제와 흐름을 같이하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자민투의 반전반핵평화운동, 조국통일촉진투쟁, 미국 경제침략 저지투쟁 등이 NL들이 진행한 반미 운동의 전개라 할 수 있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전방입소거부운동, 대학 교련교육 반대운동, 팀스피릿 반대운동 등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NL이 진행한 탈핵 운동이나 병역 거부 운동이 지금의 탈핵운동과 평화 운동의 형태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미 제국주의에 순응하지 않겠다’ 는 목적만으로 추구한다는 데서 현재 탈핵운동이나 평화운동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2. 친북

NL이 반미 만큼 중요시하게 내걸었던 구호는 ‘민족 자주’ 입니다. 사회 변혁을 가로막고 있는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사회 변혁을 일으키자는 것이지요. 이들이 롤모델로 삼은 것은 북한의 사회 구조인데요. 대남선전방송이나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북조선은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북조선은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사회를 이루어나가고 있다.’

지금의 상식에서는 저 소문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80년대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공적인 장소에서 하는 순간, 곧바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고, 실제로 정권을 비판하는 행동을 안했더라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행동을 하면 바로 감시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인 사회였습니다.

이 ‘비상식’적인 사회를 ‘상식’의 사회로 변화시킬 모델을 고민하던 이들에게,‘세계최강 미 제국주의와 60년째 맞서며 자주적으로 사회를 꾸려가는’ ‘우리 민족’ 북조선은, 높은 기대감과 높은 신뢰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던 것이죠.

3. 민족 자주 통일운동

NL 내에서 북조선에 대한 로망이 짙어갈 즈음, 몇몇 NL 계열의 운동가들은 남한의 주체사상 실현을 넘어 남북의 통일이라는 과업을 위해 행동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강철서신>의 김영환이었습니다. 그는 1991년 방북하여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민주민족혁명당(민혁당)이라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는데, 이 조직의 서열 5위가 후편에 등장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입니다.1

민혁당의 케이스는 몇 발 앞서나간 경우이긴 하지만, NL은 통일 운동에서만큼은 우리 민족의 힘으로 미 제국주의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자주 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면 어떤 노선과도 손을 잡을 용의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대중으로 하여금 애국심과 민족의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성과를 이루며 80-90년대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4. 인간적인 운명공동체

“PD는 머리가 좋고 NL은 가슴이 따뜻하다”는 8-90년대 농담이 있습니다. 실제로 NL을 경험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NL에 대해 ‘노선은 동의가 안되도 그 안의 사람들은 좋았다’는 평가를 내렸죠. 강철 김영환의 ‘품성론’의 영향과 조직 유지를 위한 인적 자원 충당의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NL 들은 사람을 ‘매우 인간적으로’ 대했습니다. 사상 주입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저 신입생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다독여주었습니다.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말이죠. 이렇게 인간적인 면모에 동화되는 신입생들은 점차 NL화 되어갔습니다.

시위와 연행이 반복되던 시기인 8-90년대는 나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언제 연행될지 모르는 공포감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요. 이 공포감은 투쟁에 함께하는 이들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단순한 동지애를 넘어 운명공동체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운명공동체 형성은 조직으로 하여금 더 조직이 탄탄해지고 함께하는 구성원들과 동지로서 견고한 인간관계를 만들게 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모든 우선순위가 ‘조직’이 되면서, 내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조직을 와해시키는 행위’로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내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직을 흔드는 일이고, 이는 함께하는 동지들, 좀 더 나아가면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까지 죽이는 행위인 것이죠. 후편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최근 몇년 들어 NL계열에서 벌어진 여러 반인권적인 사건들을 ‘덮으려고’ 한 것 역시, ‘조직의 안위가 최우선’ 이라는 NL 내 기본 상식에 근거해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NL의 큰 특징들입니다. 이 정도면 NL이 무엇이고 어쩌다 생겼는지는 대강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두 번째 질문인 ‘NL이 어쩌다 대다수 대중들과 타 노선 활동가들에 미움받고 고립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채희선 님께 사과드립니다.

디퍼는 지난 7월 7일 금요일, ‘[디퍼스] 운동권 후배가 되짚어 본 NL 탄생과 역사’ 기사를 발행하며 채희선 님께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페이스북에 올리신 이정희 전 대표의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이 과정 중에 채희선 님께 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채희선 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 디퍼는 앞으로 저작권법을 정확하게 준수하는 매체가 되겠습니다.


  1.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으로 바로잡습니다. (수정: 2017년 7월 8일 오전 12시 0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