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디퍼스] NL이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기까지

독자 이초현 님이 주문한 기사 "NL이 뭔가요? N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좋지 않은건지 궁금해요!"

D Deepr 2017년 07월 10일

지난 7월 7일 발행한 '운동권 후배가 되짚어 본 NL 탄생과 역사' 기사에 많은 독자께서 다양한 반응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 기사와 이번 기사는 모두 독자 이초현 님이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를 통해 보내 주신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사입니다.

독자 이초현 님은 Deepr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N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나쁜가요?'라는 질문을 보내게 된 구체적인 배경을 들려 주셨습니다.

이초현 님은 몇 년 전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절교를 했습니다. 2012년 대선 후보 TV토론 당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당신 떨어뜨리려고 선거에 나왔다"고 말해 뭇매를 맞은 적이 있는데요, 이초현 님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건 이정희 전 대표가 잘못했지만, 당시 이정희 후보가 한 말만 놓고 보면 틀린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성향을 지금까지는 잘 몰랐지만, 이정희 후보의 주장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기에 NL쪽에 가까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자, 친구는 대뜸 화를 냈습니다. 이 일이 결정적 계기가 된 건 아니지만,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데 작게나마 영향을 줬습니다.
"정치 성향 그 자체로는 나쁘고 좋음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친구의 정치성향을 비판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화를 내니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만약 제가 틀리게 알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걸 알려주면 되는데, 그냥 화부터 내더라고요"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NL 성향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 40대 남성과 여러 사람들 사이에 언쟁이 붙었습니다. 그 중 누군가가 "NL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초현 님은 "아무리 그래도 특정 정치 집단(NL) 자체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댓글을 단 사람은 오히려 이초현 님을 'NL 악마'라고 조롱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유주의라던가 그런 걸 신봉하는 사람들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욕을 먹지는 않잖아요. PD도 마찬가지로 그 정치성향 자체만으로는 욕을 먹지 않고요. 그런데 NL은 NL이라는 사실이 들통이 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야, 이 놈 봐라, 역시 이상하네' 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대체 왜 그런 건지 궁금했어요."

영 뉴스 크리에이터 디퍼스 쌔미(김별샘) 님이 답합니다. 반론과 이견을 환영합니다. _Deepr


지난 글에서는 NL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배경사와 NL의 특징들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6.29선언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NL과 관련된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왜 NL이 대중들과 운동권 모두에게 미운 털이 되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폭력도 불사한다

NL과 연관되어 많이 나오는 키워드 중 하나는 ‘폭력 사태’ 입니다. 이 키워드를 잘 소개해줄 사건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먼저 NL 계열에서 벌어진 민간인 고문 치사 사건입니다. 당시 주범들은 모두 한국의 학생운동의 주축을 담당했던 NL 계열의 조직,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회(한총련)’의 일원이었습니다.

image 1997년 6월 15일 MBC 뉴스. 사진=MBC

1997년 5월 27일, 당시 광주 전남대 용봉문학회 동아리 회장이 자신의 동아리 신입생 ‘박철민’이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다며 선배들에게 제보를 했습니다. 사실 ‘박철민’이라는 학생은 당시 용봉문학회를 동경해서 가명으로 신입생인 척하며 전남대를 왔다갔다 하던 광주 송원전문대학 기계공학과 졸업생 이종권 씨였습니다.

제보를 받은 선배들은 이 씨를 ‘경찰 프락치’로 판단하고 이 씨를 불러 선배 이름을 대보라는 요구를 했고, 이 때 이 씨는 선배 이름을 대답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자 남총련(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 한총련 지역 지부) 간부들이 이 씨에게 각종 고문을 가했고, 이 씨는 결국 숨졌습니다. 이 사건이 ‘이종권 고문 치사 사건’입니다.

일주일 후, 서울 한양대에서는 한총련 소속 한양대 학생들이 캠퍼스를 배회하던 선반기능공 이석 씨를 경찰 프락치로 판단하여 폭행해 사망케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이석 치사 사건’입니다.

image 1997년 6월 12일 MBC 뉴스. 사진=MBC

두 사건은 간부 차원에서 ‘축소, 은폐’하려고 했던 시도까지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졌죠. 이 사건들로 인해 한총련은 힘을 잃기 시작했고, NL 계열 뿐만 아니라 학생 운동 자체의 동력도 한 순간에 꺾여 버리게 됩니다.

이 치사 사건이 벌어진 지 15년 후인 2012년 5월 12일, NL 계열의 집단에서 또 하나의 폭력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번엔 정당 내 내부 갈등에서 비롯된 폭력 사태였습니다.

2012년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당내 갈등이 본격화되었는데요. 당시 통합진보당은 NL 계열의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을 주축으로 당권파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부정 경선 의혹과 관련하여 책임 범위를 놓고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이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 5월 12일 일이 터집니다. 당시 킨텍스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비당권파인 심상정 공동대표가 당권파인 이정희 공동대표로부터 의장의 바톤을 넘겨 받아 강령 개정안을 의결한 순간, 당권파 측 인원들이 단상을 점거하며 의장단 조준호 공동대표를 폭행하는 등의 폭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image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난투극 사건 당시, 24살 당원 박 씨가 조준호 당시 공동대표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사진=KBS

이것은 온라인에서도 생중계 됐을 뿐 아니라 언론에도 곧장 실리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비당권파였던 심상정, 조준호, 유시민 공동대표를 비롯한 다수의 당원들이 탈당하게 되고 이들이 새로 창립한 당이 지금의 정의당의 전신인 진보정의당입니다.

두 사건에 대해 평가하는 여러 입장들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NL 계열의 사람들은 명분을 위해 폭력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전무에 가까운 소수자 감수성

NL 계열이 보여주는 또 다른 문제는 ‘소수자 감수성의 부재’인데요. 이것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이석 치사 사건’의 주범으로 검거된 인물은 총 4명이었습니다. 이 중 ‘길소연’이라는 한양대 졸업생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유일한 여성 피의자였는데요. 당시 같은 계열의 인물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길 씨를 응원하는 문구로 “사랑한다 소연아”를 적어 놓은 것이 보도됐습니다.

image 1997년 6월 11일 MBC 뉴스. 사진=MBC

이 문구가 길 씨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길 씨를 대상화한 것일 수 있다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이 문구가 보도된 영상은 대외적인 비난의 촉매가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비난이 모두 길 씨에게만 집중 되었다는 것이죠. ‘예쁘장하게 생긴거 보니 곱게 자랐다-곱게 자라서 한양대왔으니 운동도 날로 먹었다-그런 사람에게 불쌍한 기능공이 살해당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만약 당시 지도부나 NL 소속 학생들이 길 씨를 ‘동지로서의 인간’으로 대했다면, 적어도 “사랑한다 소연아” 같이 여성을 대상화 하는 문구는 안 적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는 2007년 3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범민련)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민족의 진로> 에 실린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에 실린 글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남사회는 갈수록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문제, 국제결혼, 영어만능적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렌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문화의 침투 등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은 달라도 결국은 이남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 오고 그것이 또한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 속에서 이 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들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로 규정하고, 이는 민족성과 자주성이 결여되면서 ‘외래에서 침습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포함한 여러 인권단체들이 사과와 삭제 조치를 요구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몇 년 전인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 후보였던 이용대 후보가 “동성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파생적 현상” 이라며 호모포빅한 발언을 하기도 했었죠.

이렇게 NL이 소수자 감수성이 결여된 행동 패턴을 보인 데에는, 소수자 인권이 ‘서구’에서 나왔기 때문에 배척해야 한다는 태도와 더불어, 이전부터 형성된 남초 문화를 통해 체화된 마초성 때문일 것입니다. 더불어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해 개인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집단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친북노선 청산을 둘러싼 내부 분열

NL 하면 떠오르는 가장 강력한 단어 이자, 현재까지 NL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단어가 ‘종북, 빨갱이’ 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진보 진영이 북한에 대해 같은 입장을 표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NL 계열의 대다수는 주체사상에 매료되어 있었고, 이것이 실행되고 있는 북한 사회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동시에, 남과 북이 민족 자주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여겼죠(이들을 주사파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운동권 내부에서도 북한에 대한 인식 차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은 북한 체제가 완벽한 이상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NL, 특히 주사파 NL은 ‘수령관(수령을 중심으로 혁명을 완성한다는 ‘혁명적 수령관’의 약자1)’에 입각한 입장을 고수합니다. 때문에 운동권 내부에서와 일반 사회에서 비판을 받게 되죠.

2001년 사회당 원용수 대표는 민주노동당 당시 대표인 권영길과의 당수회담 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 선언의 한 당사자인 김대중 정권에 대해 퇴진을 요구하는 투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이야말로 민중의 요구가 아닌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이들이 바로 종북세력이며, 이들과는 당을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게 바로 반조선노동당의 의미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종북이라는 단어는, 보수 진영이 아닌 진보진영에서 먼저 사용한 것이죠. 이후 2006년 일심회 사건을 즈음해서 ‘종북’이라는 단어가 주요 언론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재외동포인 장민호(미국 이름 '마이클 장'), 최기영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이정훈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등 5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한 내부 동향을 보고했다는 이유로 2006년 간첩죄(국가보안법상의 국가기밀 탐지·누설·전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됩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북미간 첨예한 대결과 남북 간 경색 국면이 조성되자 벌어진 이번 사건은 신공안 분위기를 만들어 반북, 반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국정원의 음모”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 입장 때문에 내부에서는 ‘친북노선 청산’을 주장한 이들의 대거 탈당(이들은 탈당 후 지금의 노동당의 조상인 진보신당을 창당하게 됩니다.)이라는 내부분열의 결과를 만들어낸 동시에, 외부에서는 ‘민노당=친북 혹은 종북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위의 비판들이 발생하게 된 것은 ‘조직의 관료화’‘획일화된 입장 유지’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는 운동권 전반이 맨땅에 터를 잡아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공부도 많이 했고 토론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6.29 선언 이후, 운동권이 나아갈 방향을 새로 잡는 분위기에서 일부는 큰 변화 없이 기존의 투쟁 노선을 이어갔습니다. NL도 기존 투쟁 노선을 이어간 계열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NL이 주도적으로 시작했던 통일 운동에서 여러 가지 노선들이 등장할 때에도, NL 계열의 주류인 주사파는 좋게는 ‘뚝심 있게’, 나쁘게는 ‘남들 보기에 고루해 보이는’ 그들의 투쟁 방식을 고집했습니다.

때문에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그에 따른 정세 분석이 다양해 질 수 있음에도 ‘반미반제국주의, 민족 자주 통일’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게 되었고, 결국은 대중을 설득력 있게 포섭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관료화의 경우 학생운동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학생운동이 동아리 정도의 소규모 집단에서 학교 학생회로 대표되면서, 분기별로 있는 큰 행사(OT, 농활, 학생회 선거 등의 대중사업, 5.18 등의 연간사업)를 치르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달력식 투쟁’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업을 ‘일정’에 맞추게 되고, 사업 시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문화도 ‘관료화’되기 시작합니다.

조직 구조는 탄탄해지기 시작했지만, ‘동지를 비판하는 건 동지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분위기와 빡빡한 일정 소화로 인한 학습 결여의 문제가 뒤섞여 조직에 대한 문제점 비판은 불가능해졌으며, 사안이나 정세에 대한 토론은 다양한 의견 공유가 아닌 ‘조직의 방향성’에 맞춘 획일적인 답안만 나오는 상황으로 빠지게 됩니다.2

이렇게 관료화 되고 획일화된 입장 유지 태도를 견지하다보니, 대중적인 지지는 받기 어려웠지만 어떠한 지정된 과업을 이루는 데에는 탁월했죠. 그 사례가 민주노동당의 NL 진입입니다.

2001년, 당시 NL 계열이 주도하던 전국연합에서 한 문건을 발행합니다.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이라는 이름의 이 문건은, ‘민주노동당 참여를 통해 민족민주정당을 세운다’를 포함해 ‘자주적 민주정부와 연방통일조국 완성’을 위한 계획을 담고 있는데요. ‘군자산의 약속’이라고 불리우는 이 마스터 플랜에 맞추어 NL 계열의 조직들은 역량을 구축해 각종 방법으로 민주노동당에 가입을 하여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마침내는 민주노동당 전체의 주권을 잡는데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이처럼 NL은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결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조직 내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고, 원론만 고수하는 외길 인생을 걸은 덕에, NL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타 운동권 노선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고립된 상태’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image 사진=YTN

작년 촛불 집회에 나가 보셨던 분들이라면, 이 이름이나 구호를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민중연합당, 환수복지당, 민중의 꿈, “이석기를 석방하라”. 앞의 3개 단체는 현재 잔존하는 NL 계열의 정당 혹은 정당을 준비하는 모임(민중의 꿈) 입니다. 그리고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민중연합당이 내란 음모사건으로 구속된 통진당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며 내건 구호 중 하나입니다.

이들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향후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는 모릅니다. 지금은 2017년이니까요.


커버사진=YTN


  1.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1987, 2장 전반 

  2. 이명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2012, 바오출판사, 71-73쪽, 285-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