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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를 위한 윤리학

봉준호 감독이 관객에게 준 선택지는?

하민지 2017년 07월 22일

<옥자>를 보시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 저랑 심리테스트 하나 할까요? 옥자의 머리에 총이 겨누어졌던 순간, 아찔했던 분들 많을 거예요. 지금부터 당신이 왜 아찔함을 느꼈는지, 제가 꿰뚫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옥자가 죽을까 봐 걱정했던 분은 두 번째 문단으로, 옥자가 죽어서 미자(안서현 분)가 슬플까 봐 걱정했던 분은 네 번째 문단으로 가세요. 물론 두세 번째 문단도 읽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옥자가 죽을까 봐 걱정했던 당신, 동물에게 '직접적인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시네요. 아마 이 분은 옥자의 앞 차례 돼지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을 때도 충격을 받으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구조되지 못 한 농장 속 다른 돼지들도 불쌍하게 여기셨을 거예요. 당신은 어쩌면 채식인이거나 '고기를 조금씩 줄여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둘 다 아니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 '옥자만 살아남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으셨을지도 모르고요.

'직접적인 도덕적 지위'는 어떤 존재가 도덕적 지위를 독립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떤 존재가 직접적인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건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그 존재를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그 존재의 도덕적 권리는 침해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미자가 황금돼지를 내동댕이 쳤을 때, "황금돼지 불쌍해!"라고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황금돼지에겐 도덕적 지위가 없으니까요. 반면 옥자가 미란도 기업으로 끌려갈 때부터 눈물이 고인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옥자는 도덕적인 존재고, 미란도 기업은 옥자가 행복하게 살 권리를 침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옥자가 죽어서 미자가 슬플까 봐 걱정했던 당신, 당신은 동물에게 '간접적인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간접적인 도덕적 지위'는 어떤 존재가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 때문에 도덕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옥자와 미자는 깊은 자매애를 형성한 관계입니다(옥자가 암컷인 줄 모르셨던 당신, 집중력이 부족한 분이네요!).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돼지들 중 미자의 가족인 옥자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image 옥자가 죽어서 미자가 슬플까 봐 걱정했던 당신, 당신은 동물에게 '간접적인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사진=넷플릭스,㈜NEW

도살장 시퀀스에서 돼지들이 총을 맞기 위해 차례로 머리를 내밀 때, "쟤가 옥자인가? 점박이네, 옥자 아니다. 아휴 다행이다. 쟤가 옥자인가? 쟤도 아니네. 헐, 쟤 옥자야! 어떡해! 미자야, 빨리!"라고 속으로 다급하게 외친 분 계시죠? 저도 그랬습니다. 앞 차례 돼지들이 쓰러져 간 모습들도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만, 우리의 가슴이 더 빨리 뛰었을 땐 옥자의 차례가 됐을 때였을 거예요.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분들, 제 심리 테스트 어떠셨어요? '나는 옥자가 불쌍하긴 했지만 미자가 슬플까 봐 걱정하기도 했는데', '옥자 불쌍하게 생각했는데, 그동안 고기 먹는 것에 대해서 별 생각 없었는데...?' 라고 생각하신 분 계세요? 그렇다면, 정확히 읽으셨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관객이 '옥자가 불쌍하다'는 감정을 미자와의 관계 속에서 느끼셨을 거예요. 영화 <옥자>는 동물의 간접적인 도덕적 지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옥자가 살아야 했던 이유는 미자의 자매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란거리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봉준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야? 옥자만 살면 되고 나머지는 죽어도 된다는 거야?"라고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을 표현한 거지. 미자가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도 아니고. 자기 가족만 찾으면 되는 거였잖아?" 라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앞에서 읽으신 대로, 전자는 동물의 직접적 지위를, 후자는 간접적 지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의도는 뭐였을까요.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동물의 직접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간접적 지위만 드러낸 건, 봉 감독의 동물권 인식 수준이 거기까지여서 그랬던 걸까요?

이쯤에서 잠시 봉 감독의 전작들을 들여다 봅시다. 봉 감독은 그동안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거대 시스템 아래에서 무능한 개인들이 시스템과 열심히 싸워나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옥자>의 미자는 자본과 싸웠고, <괴물>의 현서(고아성 분) 가족들과 <마더>의 도준엄마(김혜자 분)는 공권력과 싸웠고, <설국열차>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와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계급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무능했습니다. 거대 시스템 앞에선 누구나 무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권력과 자본을 가지지 않은 이상은요.

미자를 떠올려 보세요. 미자의 사고회로는 단순합니다. 유리문이 열리지 않으면 몸을 던져 깨고, 달리는 차를 따라잡을 수 없으면 차 위로 뛰어내리고, 미란도 기업이 제공한 왕복 항공권 플래카드는 시원하게 부숴버렸습니다. 그저 옥자를 향해 직진.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과 싸우기 위해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돌진합니다.

image 미자의 사고회로는 단순합니다. 그저 옥자를 향해 직진. 사진=넷플릭스,㈜NEW

중요한 것은, 봉 감독이 거대 시스템과 싸우는 무능한 개인을 그릴 때 가능한 한 '현실적으로' 그린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어지고, 자빠지고, 실수하게 합니다. 미자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해서 ALF 단원 케이(스티븐 연 분)가 사기친 줄도 몰랐습니다. 이렇듯 봉 감독 영화의 주인공은 좌충우돌을 겪습니다. 사실, 시스템과 대등한 능력치로 싸우는 건 헐리우드의 히어로 영화에서나 말이 되는 일입니다. 당장 우리 주변을 둘러 봅시다. 공권력이나 대기업과 싸우는 개인들, 어떤 모습인가요.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과 개인이 비슷한 힘의 크기로 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봉 감독은 영화에 이런 현실을 늘 반영해 왔습니다.

다시 <옥자>로 돌아옵니다. 방금 언급했던 것처럼, 미자는 무능할 수밖에 없는 개인입니다. 미자 혼자서 세계적 규모의 미란도 기업과 싸워야 합니다. 봉 감독은 미자에게 튼튼한 팔다리 말고 다른 것은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미자가 농장의 돼지를 모두 풀어주고 '동물 해방'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봉 감독 스타일을 봤을 때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옥자를 구했고, 옥자가 입에 숨겨 온 아기 돼지도 구했습니다. 그렇다면 봉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미자는 자신의 가족 옥자를 구했다, 이게 끝일까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 긴 것 아닌가'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역 대난장판씬 이후 미란도 기업 수뇌부들이 대책 회의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와 미란도 기업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회사가 생명이나 환경에는 관심이 거의 없고 돈과 자사의 이미지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조니 박사(제이크 질렌할)가 소주를 마시며 옥자를 학대하는 장면도 지나치게 길었습니다. 조니 박사 캐릭터는 조연인데, 조연에게 굉장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입니다. 관객은 조니 박사의 학대로 옥자가 비명을 지르는 걸 듣고 난 후, 뉴욕에서 펼쳐진 화려한 행사씬을 보게 됩니다. 루시 미란도가 행사 전 대기실에서 슈퍼돼지로 만든 간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조니 박사의 실험실씬과 대비돼 더 큰 충격을 안겨 줍니다.

이처럼 봉 감독은 두 시간 러닝타임 중 긴 시간을 할애해서 동물을 괴롭히는 이들의 탐욕을 자세히 드러냈습니다. 또, 도축과정을 모두 드러내진 않았지만 정육점처럼 고기가 매달려 있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관객이 탄식하게 했습니다.

종합하면, 봉 감독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먹는 고기가 누구의 탐욕을 채운 채로 식탁에 오르는지를. 미란도 기업과 같은 회사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닭고기로 유명한 회사'하면 몇 군데가 떠오르실 거예요. 그리고 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봉 감독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봉 감독은 동물의 직접적 지위보다 간접적 지위를 다루는 게 맞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가족이 아닌 동물은 먹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저만해도 강아지 두 마리와 살면서 다른 동물의 살점은 먹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우리집 강아지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왜냐면 우리집 강아지는 도덕적 지위를 가진 저와 관계 맺으며 간접적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image 미란도 기업과 같은 회사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사진=넷플릭스,㈜NEW

봉 감독은 고기가 거대 자본의 탐욕으로 생산되면서 동물이 원치 않는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이하는데도, 동물의 간접적 지위만 인정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결국봉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동물의 직접적 지위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다같이 생각해 보자' 였을지 모릅니다.

동물의 직접적 지위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봉 감독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채식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육식이 나쁘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공장식 축산과 육식은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논의해 왔고, 아직도 논의 중인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바로 다음 스탭을 제시할 수 있으면 영화가 아니라 논문이겠지요. 봉 감독은 우리에게 다음 스탭을 생각할 기회를 열어줬습니다. 다만, ALF가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보여줬네요. 옥자를 운반하던 트럭기사도 합류했고요. 이처럼,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 참고문헌 : <동물을 위한 윤리학>, 최훈, 사월의책,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