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덕업일치

N잡 대모험: 월요일 직장 다르고 화요일 직장 다른 사람

밀레니얼의 '덕업일치' (8) N잡러 홍진아

윤지원 2017년 07월 24일

홍진아
여자, 35세
N잡러
진저티프로젝트 매니저, 빠띠 데모크라시 액티비스트,와일드블랭크 프로젝트 포장이사, 디모스 회원

여덟 번 째 덕업일치 주인공은 기자에게 두 개의 명함을 건넸다. 색깔 고운 분홍색 명함엔 '진저티 프로젝트 매니저'란 글자가, 보라색 명함엔 '빠띠 액티비스트'란 소개가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엔잡(N-Job)러 홍진아입니다."

image 사진=홍진아

'엔잡러란 표현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진아 씨는 하나의 직업(one job)이 아닌 여러 개(n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1인1직장'이 익숙한 우리는 보통 한 회사에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하는 형태를 떠올린다. 진아 씨도 올해 초까지 한 개의 직장에 다녔다.

3월부터 진아 씨는 두 개의 직장에 다니고 있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건강한 조직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회사 '진저티 프로젝트'에, 화수금은 시민의 직접 정치 참여 플랫폼 회사인 '빠띠'에 출근한다.

image 진아 씨와 진저티프로젝트 팀원들. 사진=홍진아

지속가능성의 기준, 돈이나 회사가 아닌 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와일드블랭크 프로젝트'‘디모스'는 친구들과 같이 하고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다. 와일드블랭크는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신념을 굿즈로 제작해서 파는 프로젝트로, 친구와 둘이서 올해 2년 넘게 해 오고 있다. 디모스는 작년 말부터 시작한 소셜 투자 계모임으로, 열두 명이 계를 만들어 6개월 뒤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빠띠나 진저티 프로젝트는 출퇴근을 하며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동료들과 같이 일 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직장이라고 쳐도,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같이 '일'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왜일까.

image 와일드블랭크 프로젝트. 오른쪽이 치마사장이자 동업자인 친구다. 사진=홍진아

"제게 지속가능성의 기준은 고용 형태가 아니라 '내가 일을 계속 하고 있는가'예요. 사이드프로젝트까지 제 '직업'중 하나로 소개하는 이유도, 와일드블랭크 프로젝트를 하면서 '더 좋은 기획이란 뭘까'를 고민하고, 디모스를 하면서 다른 팀원들을 설득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게 메인 잡에도 큰 도움을 줘요. 그래서 저는 사이드 프로젝트 역시 제 일이자 삶의 일이라고 말해요."

딸칵, 그건 어제 일입니다

엔잡러의 삶을 살기 전에도, 본업인 '낮일'과 퇴근해서 친구들과 진행하는 프로젝트성 '밤일'을 병행했다. 그런데 낮일에서까지 직장 두 곳을 요일마다 번갈아 다니는 것은 모험이었다. 진아 씨에게도 엔잡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두 일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머릿속에서 '일 레이더'가 꺼지지 않는 난처한 상황도 있었다. 화요일에 빠띠에 출근하면, 월요일에 두고 온 진저티 프로젝트의 업무가 생각나곤 했다. 두 회사 다 슬랙(기업 메신저)을 사용했기 때문에 빠띠 일을 하다가도 진저티 프로젝트의 단톡방에서 파일이 전송됐다는 알림이 뜨면 확인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계정을 따로 팠어요.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일하다 빠띠 일이 궁금해져도 계정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또 새로 로그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러면 안 돼' 하고 퍼뜩 정신이 들더라고요. 마치 디지털과 제 뇌를 연동시키는 것처럼, 로그인하고 로그아웃할 때마다 제 뇌에서도 '일 레이더'를 켜고 끄는 컨트롤 능력을 길렀죠. 원잡러가 아닌 엔잡러로서 처음 느꼈던 혼란이었어요. 결국 아주 간단히 해결 방법을 찾았지만요."

image 크롬에도 여러 개의 지메일 계정을 만들어 뒀다. 사진=홍진아

엔잡은 낭만적인 것도, 불안한 것도 아니다

사실 그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 기자의 머릿속엔 '돈 문제'와 관련된 질문만 계속 떠올랐다. 인터뷰이에게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불안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과 돈 버는 것이 동시에 가능할까? 앞으로 계속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까?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결혼도 하고 저금도 하고 집도 살 수 있는건가?

그런 궁금증을 단번에 없앤 것은 진아 씨의 반문이었다.

"엔잡러가 집 사고 결혼하는 것이 가능하냐 물으면, 원잡은 그것들을 담보해주나요?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직업이 미래를 확신하게 해 주나요?"

철저한 계산과 가치관의 전복

얼핏 보면 덕업일치란 단어는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버는 삶은 금수저나 희소한 재능을 가진 몇몇에게나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아 씨의 덕업일치는 자신이 최소한 얼마를 벌면 만족하며 살 수 있는지, 그걸 위해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남은 자원으로는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는지 철저히 계산한 결과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이 정도는 필요하다는 계산이 서 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 간 언론고시 준비를 했어요. 달리 말하면 백수였다는 거죠. 자취를 빨리 시작했기도 했고, 백수 시절 아르바이트만으로 살면서 제 삶에 대해 계산이 선 거죠. 살면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와요. 그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기준을 그 때 세웠던 것 같아요. 이게 정말 중요한데 사회에서 중요한 삶의 단계라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3년 동안의 언론사 준비를 그만두고 심리상담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상담 일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보통 전문 상담사는 ‘죽기 전에 몸값이 제일 비싸다'라는 말을 한다. 평생 그 일을 계속하면서 전문성을 계속해서 쌓을 수 있는 계획된 길이 있다는 뜻이다.

"남들은 안정된 길을 빨리 정하고 척척 걸어가는 걸로 보이는데, 왜 나는 계속 방황하는 걸까 많이 답답했어요. 그 때 교수님이 '자기가 진짜 원하는 걸 찾기 시작한 사람은 평생 고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해주셨어요. ‘세상은 변하고 나도 변하니까 그 변하는 만큼의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길을 정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네가 하는 고민을 언젠가 할 거고, 그게 계속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게 인간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조직과 함께 하는 실험, 엔잡

"직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진아씨의 가치관이 뭐예요?" 라고 물었다.

"채용공고가 나야죠. 제가 FA시장에 나왔을 때 나를 찾는 직장이 있는지가 중요하죠."

맞는 말이지만, 질문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대답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진아 씨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제겐 '꼭 OOO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요. 언론사 준비하던 시절엔 '나 꼭 MBC 갈래' 이런 열망이 컸죠. 그게 한 번 꺼지면서 조직에 나를 맞추면 별로 행복하지 않은 삶이란 걸 알았어요. 어느 회사냐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왜냐면 못 갈 수도 있으니까. 그 이후 이 조직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이며,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을 하고 싶은지, 소위 말해 궁합이 잘 맞는지 알아보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요."

진아 씨의 엔잡은 혼자 하는 실험이 아니다. 조직에게도 중요한 실험이다. 예를 들어, 진저티 프로젝트는 경력 단절 여성이 시작한 단체라 애초에 주5일제 조직이 아니었다. 모두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삼일씩 출근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이틀을 일하면서, 나머지 요일엔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하는 팀원은 진아 씨가 처음이었다.

"회사도 제가 다른 직원보다 유동성이 적은 걸 알고 시작한거죠. 똑같이 일주일에 3일을 일해도, 나머지 요일엔 노동을 하지 않는 경우엔 유동성이 좀 생기잖아요. 그런데 전 그렇지 않았던 거죠. '네가 하고 싶은 일의 형태가 엔잡이야? 오케이, 같이 일해보자. 너의 실험에 우리가 도움이 되면 좋겠어'라고 말해줬어요."

image 다른 회사지만, 시민의 직접 정치 참여 플랫폼인 빠띠와 건강한 조직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진저티프로젝트 간 교류도 활발하다. 사진=빠띠 페이스북 캡쳐

한편으로 노무 관련 문제도 새롭게 정해야 했다. 4대 보험은 어떻게 할지, 휴가는 어떻게 가질 지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저는 평일 낮에 미술관에 가는 것이 취미예요. 예전 직장에서는 반차나 연차를 쓰고 휴식을 가지곤 했죠. 근데 만약 제가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하루 휴가를 낸다면? 일주일에 하루 일하러 가는 건 저 개인적으도 일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좋지 않아요. 회사에 휴식 규정이 있지만 그걸 제게 어떻게 유용하게 적용할 것인지는 스스로 고민을 더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포인트는 이런 엔잡러의 노동 형태는 아직 실험 중인 거고, 저와 조직이 같이 맞춰나간다는 점이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팀원과 일대일로 마주앉아 팀원의 라이프스타일까지 같이 고민해주는 조직이라니. 기성조직의 시스템과 거리가 있는 위계질서가 없는 소규모 조직이기에 가능하기도 하지만 진아 씨가 그만큼 매력적인 인재여서가 아닐까. 문득 그의 포트폴리오가 궁금해졌다.

"저는 포트폴리오보다 포트폴리오를 내가 어떻게 해석해내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누가 저보고 '홍보 전문가야?'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홍보 전문가가 갖는 모든 속성을 갖추지 않더라도, 제가 행사 기획을 하고 홍보를 해 본 경험이 있다면 경험을 했다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분야에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제 경험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제시하는 건 저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기존의 전문가 개념과는 다른 해석이다. 진아 씨는 이것이 자신의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전문성 없이 나이 40살이 되면 어떡하나'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전문성은 일의 숙련도나 어떤 레벨의 성취만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는 아니다.

"물론 분명히 전문직이라고 하는 분야는 있어요. 제가 갑자기 주식이나 부동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전문성이 자신의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나보다 더 일 잘하는 사람이 나오면 자리를 뺏기겠죠. 기술이 발달하면 로봇에게 일자리를 넘겨줘야 하고요. '남들과 교체할 수 없는 유니크한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서사를 가진 사람이에요."

image 진아 씨의 다이어리. 한번에 여러 일을 하면서도 스케줄이 꼬이지 않도록 모든 것을 기록한다. 일 외에도 개인 일정을 지킬 때 나름의 규칙이 있다.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 번개로 만나는 약속은 잡지 않을 것. 주말엔 꼭 혼자 쉬는 시간을 확보해 둔다. 사진=윤지원

딱 반 발짝 앞서나가는 엔잡러

진아 씨는 앞으로 엔잡 실험을 최소 일년 반 정도 이어나갈 생각이다. 혹시 2년 뒤에 다시 원잡러로 돌아간다 해도, 그건 엔잡 라이프에 실패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을 결정하는 방식이나 가치관을 그 다음 직업을 고를 때 그대로 적용할 것이다.

"제게도 엔잡은 제 인생에서 하나의 실험이에요. 일을 하고 산다는 것에 대해 남들보다 약간 다른 생각으로 시도해 보는 라이프스타일이죠. 엔잡으로 사는 사람이 흔하지 않으니까 주위에서 많이들 궁금해하고 질문해요. 하지만 저는 엔잡러라는 상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엔잡을 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요."

Cover=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