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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주어졌을 때, 그들은 무엇을 찍어왔을까

노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시선을 담은 <조금 특별한 사진전>을 다녀와서

윤지원 2017년 07월 27일

어느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노숙자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가로수에 기대 누워 있었습니다. 밝은 낮, 큰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죠. 게다가 호텔 앞이라면요. 아니나다를까, 호텔 경비 아저씨는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경찰을 부르시더라고요. 경비와 경찰이 달라붙었지만 할아버지는 결국 인도와 차도에 걸쳐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버렸습니다. 행인들과 호텔 앞에 서 있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못 본 척 서 있었지만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생긴 궁금증이 있습니다. 그 소동 한가운데서 할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화난 경비의 얼굴이었을까요, 파란 하늘이었을까요. 칼퇴근한 평일 저녁, <조금 특별한 사진전>을 보러 간 것은 그 날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쓰는 사람을 찾기도 힘든, 만 원밖에 안하는 일회용카메라지만, 이조차 살면서 처음 잡아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노란색 코닥 카메라를 갖게 된 건 작년 7월. 무료 급식 봉사를 하며 얼굴을 익힌 한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님들. 이 카메라 안엔 필름 한 롤이 있어요. 가지고 다니면서 찍고 싶으신 걸 찍어주세요. 필름 다 쓰시면 밥 드시러 오실 때 제게 다시 주세요.”

image 사진=윤지원

<조금 특별한 사진전>을 시작한 이용현 씨는 어느 날, ‘노숙자 천국’이라고 불리는 서울역에서 사진을 찍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분들은 무엇을 바라볼까, 저분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하지만 일정한 거처가 없고, 일자리를 따라 돌아다니는 불특정다수의 노숙인, 일용직 노동자들과 정기적인 연락을 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 번 만난 분을 어떻게 또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 씨는 무료급식 봉사를 떠올렸습니다. 밥을 먹는 곳에는 정기적으로 다시 오시거든요.

“구로의 한 교회에서 ‘밥퍼봉사’를 작년 초에 시작했어요. 스킨십 기간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봉사자와 피봉사자 사이는 당연하고, 식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계신 분들끼리도 아무 말도 없었어요."

일 년으로 계획한 프로젝트의 절반을 관계를 다지는 데에만 썼습니다. 사실 친해지는 과정에는 음식이 도움이 됐습니다. 늘 비슷비슷한 급식이 아니라 카레 만들기, 짜장면 만들기, 더운 여름에는 화채 만들기 등 이벤트성 메뉴에도 신경 썼다고 하네요. 들인 정성은 변화로 돌아왔습니다. 조용하던 배식 시간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일회용 카메라를 나누어드리면서 그분들과 저희 사이에만 다리가 생긴 것이 아니에요. 그분들끼리도 말을 트시더라고요. 밥을 기다리면서 줄을 서 계신 동안 ‘자기는 무슨 사진 찍을거야?’ ‘어디로 가는데? 같이 갈까?’ 이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셨어요."

이 전시회의 의도는 ‘대화 그리고 소통’입니다. 이 씨는 동정심은 일방적인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숙은 아저씨, 아주머니가 처해 있는 상황일 뿐입니다. 이 씨는 상대의 불편함을 안쓰러워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편견이고, 불편함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배려라고 말합니다. 일방적인 동정심에서 시작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시선을 느끼고 소통하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사실 필름을 회수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해요. 식사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 중 대략 사오십 명에게 코닥 카메라를 드렸지만, 삼사개월 뒤에 돌아온 카메라는 다섯 개였습니다. 이 전시회는 그 다섯 분의 사진을 담았습니다.

대화는 궁금함에서 시작합니다. 상대가 뭘 말하고 싶을까, 상대는 뭘 좋아할까. 상대는 뭘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을 보는 시선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죠. 그래서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 저도 모르게 뭔가 다른 것을 상상했습니다. 새벽녘 지하철 역사나 뒷골목의 풍경이나 내가 모르는, ‘노숙인과 일용직 노동자만의 특별한 시선’같은 걸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전시회 장소인 WowfactorStay는 홍대의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폭신한 침대와 쇼파 위에 기대 놓은 사진들은 예상했던 장면과 달랐습니다. 화분에 핀 꽃, 햇살이 내리쬐는 주택 마당,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 타국에 있는 아들과 통화하다 내려놓은 공중전화 수화기, 반짝이는 트리 장식,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동료의 얼굴… … . 길생활을 오래 한 분들이 채워 온 필름엔 이런 장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image ‘아들생각 아저씨’의 사진. 사진=윤지원

눈에 보이는 예쁜 것, 멋진 풍경, 마음에 담기는 장면을 보면 그 순간을 포착해 두고 두고 보고 싶어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죠. 평생 사진을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분도, 일이 바빠 사진을 찍으러 갈 여유가 없는 분도, 젊을 적 카메라가 없었던 아쉬움을 지금까지 품고 사는 분도 ‘사진기로 찍고 싶은 순간’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화려하거나, 특별하거나, 지저분하거나, 충격적인 사진이 아닙니다. 수평도 안 맞고, 불쑥 침범한 손가락이 프레임 안에 반도 넘게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것만 찍으시다 보니 비슷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노숙인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 같이 고발적인 내용을 생각했다면 실망할 거예요.

image ‘파란장갑 아주머니’의 사진. 사진=윤지원

image 파란 장갑을 늘 끼고 다니는 아주머니께서 찍은 사진. "우리 아들이 방송국 다니는 사람이라서 비싼 카메라도 내가 써 봤어. 아마 내가 제일 잘 찍었을 걸?” 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셨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엔 파란 장갑이 함께 찍혔답니다. 사진=윤지원

하지만 그래서 더 들여다보고 싶더군요. 가족을 중국에 두고 돈 벌러 오신 ‘아들 생각 아저씨’가 찍은 사진이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사람과 달리 늘 그 자리서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좋아하시는 ‘조경 아저씨’가 찍은 사진이고, 눈을 좋아해서 남들이 가을 내내 사진 찍을 때 참고 기다리다가 겨울이 되고 나서야 셔터를 눌렀던 ‘눈 아주머니’가 찍은 사진이었거든요.

저와 같은 시간대에 관람한 김연주씨도 같은 걸 느꼈나 봅니다. "사람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노숙자분들 지나가다가 볼 때 보통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사진으로 보니 (이런 감정을 공유하는 게) 다들 같구나 싶었어요. 자극적인 사진이 아닌데도, 한 분 한 분 스토리를 이해하고 보게 되니까 동화되는 느낌이었어요.”

image 일회용 카메라의 렌즈를 들여다본 지 얼마나 됐나요? 사진=윤지원

<조금 특별한 사진전>은 지난 3월 첫 전시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 전시입니다. 24일 월요일부터 26일 수요일까지 단 3일 동안만 해서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시회를 주최한 팀 BRAD는 두세 달 뒤에 좀 더 길게 전시를 다시 할 계획도 있다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전시회를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cover=BR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