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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멀티가 되잖아, 남자는 개발밖에 못 해

대한민국에서 여성 개발자로 살아남기 (2)

조경숙 2017년 08월 01일

대한민국에서 여성 개발자로 살아남기 (1) 국문과 나와서 개발자가 됐다고?에서 이어집니다.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웬만한 IT 기업의 여성 노동자 비율은 남성에 비해 낮은 편이다.1 자칭 ‘여성 친화 기업’ 이었던 나의 첫 회사도 여성 근로자 비율이 30%를 넘지 않았다. 과장, 차장급 중간 관리자 중엔 여성 비율이 다른 회사보다 높은 편이었지만 팀장이나 그 이상의 임원 중에서는 여성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다만 열 명을 웃도는 임원 가운데 고정적으로 1~2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마침 ‘알파걸'이라는 말이 유행할 시기여서 ‘우먼 파워', ‘여풍당당' 등의 키워드로 회사를 홍보하기에 딱 좋았다.

image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다. 사진=Ada Lovelace의 초상화, Wikimedia

여성 임원들에게는 늘 후문이 따라다녔다. 임원 A 는 ‘술상무'라는 말이 돌았고, 임원 B 는 집안을 거의 돌보지 못하는 여성이라고, 매정한 엄마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작 내가 속한 조직의 직속 상사인 남성 임원에 대해서는 가족사를 한 톨도 알지 못했는데 여성 임원들에 대해서만 가정사와 씀씀이, 옷매무새 등의 소문이 은밀하게 전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임원 B 는 신입사원의 입사 축하 행사에서 늘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남자처럼 살았다. 남자들 가는 곳엔 다 따라다녔다. 바지만 입었고, 흡연실도 갔다. 흡연실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 그래서 지금처럼 임원이 될 수 있었다."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거 잘 못 해"

여성 임원도 있었고, 여성 비율도 (다른 IT 회사에 비해 그나마) 높았지만 그렇다고 성차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성차별인지도 모르는 성차별이 많았다. 같은 사원을 동일한 프로젝트에 투입할 때, 여성 사원이 남성 사원보다 개발을 더 잘해도, 여성 사원에게는 주로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PM(프로젝트 매니징) 업무를 맡긴다. 회사의 시각에서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남성보다 우위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에게 기대되는 기술 전문성은 언제나 남성보다 낮다. 이러한 기대 수준에 따라 업무가 할당되니, 처음에는 개발 능력이 비슷하거나 더 뛰어났다 하더라도 남성의 기술력이 여성을 앞지르는 건 당연하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뛰어나거나 개발 공부를 더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투입되는 프로젝트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부여되는 역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그 문화에 불만이 많았다. 같이 일하는 부서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있는데, 다른 직원들과 소통하고 회의하고 협의해야 하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개발하기도 바빴는데 개발한 시스템에 대해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질답 하는 일은 늘 여성이 준비하고, 남성 직원은 ‘당연하게' 그 회의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동등하게 일을 나누자고 하면, 자기가 왜 그런 일에 참여해야 하느냐고도 반문했다. 그의 경험 속에서 ‘그런 일'은 언제나 여성이 해왔던 것이다.

나도 앉아서 개발에 집중하는 게 좋지, 시스템에 항의하듯 들어오는 문의에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감정 노동은 당연히 싫었다. 이런 고충을 파트리더에게 털어놨더니, 남성이었던 파트리더 역시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거 잘 못 해", 하고 웃어 넘겨버렸다. 못하는지 잘하는지 몰라도 명백하게 그건 남성들이 ‘안 하는’ 일이었다.

'여성은 잘하니까' 그럼 제 커리어는요?

성별에 따라 역할을 다르게 주는 건 명백히 성차별이지만, 정작 회사에 재직할 땐 잘 몰랐다. 늘 그런 역할 분담은 ‘너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니까’ 라는 식으로, 능력을 인정 받는 형태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는 걸 알았던 건 나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의 업무 분업 회의에 우연히 참여하면서였다. 프로젝트에 투입될 개발자를 계약하는데 이미 개발된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업무에 있어서는 여성을 뽑고, 새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업무에는 남성을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상사는 "여성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잖아. 남자는 개발밖에 못 해" 하며 되려 어리둥절해 했다.

<실리콘밸리>, <빅뱅이론>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는, IT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만연한 ‘긱’한 문화는 남성 개발자의 전유물이었다. 남성 개발자는 집중하고 싶을 때 메신저를 꺼놔도 되지만 여성 개발자는 그럴 수 없었다. 남성은 ‘원래' 하나의 일 이상으론 집중할 수 없지만 여성은 멀티 플레이가 되니까 - 이런 인식들이 지배적이었다.

남성들끼리만 기술 이야기를 쑥덕거리고, 오류가 나면 남성 개발자들끼리 모여 해치워 버리고, 그러고 나면 또 그들끼리 뿌듯해서 좋아죽으며 커피 마시러 가고… 남성들이 그들의 세계 안에서 ‘괜찮은 기술자'로 성장하는 동안 나는 전화 상담원 역할만 죽어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개발에서 밀려날수록 더 개발 코드를 보고 혼자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조언하고 챙겨주는 선배들이 주변에 있었다. 1을 물어봤는데 자리에 앉아 10까지 강론해준 대리님이 있는가 하면, 묻지도 않은 신기술을 먼저 찾아 와 알려 준 과장님도 있었다.

회사 안에서 개발 프로젝트가 주어지지 않아, 나는 외부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지인이 신규 런칭한 서비스에 웹사이트 개발자가 필요하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개발 프로젝트를 더 경험하고 싶던 내게도 좋은 기회여서 평일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할애하여 온통 개발에 집중했다. 회사 내부에서 쌓을 수 없는 개발 경력을 외부 경험으로 채웠고 이 경험은 이후 이직할 때에도 큰 자산이 되었다. 투잡을 하는 게, 본업에서 불가한 본업의 경력을 위해서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거웠다.

내 앞길을 자신들의 일처럼 걱정해 준 선배들 덕택에 나는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시스템이나 문화를 따랐다면 나는 지금쯤 개발을 전혀 하지 못하는 개발자로 남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력이 끊어지지 않았던 건 전적으로 선의를 가진 소수의 사람 덕택이었다.

Cover Illustration=Grace Heejung Kim


  1. DART 2017.03 공시 기준 일부 IT 기업의 여성 재직자 비율은 다음과 같다. 엔씨소프트 11.6%, 삼성SDS 23.7%, LG CNS 24.5%, 네이버 37.5%, 카카오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