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덕업일치

저는 마음에 드는 카피가 나와야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에요

밀레니얼의 '덕업일치' (9) 실험주의자 양성소 '공장공장' 대표 박명호 씨

정인선 2017년 08월 03일

박명호
31세
실험주의자 양성소 '공장공장' 대표

박명호 씨와 공장공장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밤, 페이스북 피드를 내리다가 특이한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함께 일을 할 당신에게'라는 제목부터 눈길이 갔다. 첫 마디는 이랬다.

좋은 사람, 행복한 시간. 돈을 벌고 일을 하면서도 얻을 수 있을까요?

서류 마감이 언제고, 언제 면접을 보며, 처우는 얼마인지 등 정보가 무미건조하게 나열돼 있는 채용공고들과 달리, 공장공장의 채용공고는 마치 예비 지원자들에게 쓰는 한 통의 편지 같았다. 본사가 목포에 있는데, 채용 설명회를 들으러 오면 교통비 지원은 물론, 목포 원도심 여행까지 시켜준단다.

호기심이 생겼다. 공장공장 웹사이트를 둘러봤다. '우리, 하루만 더 견디지 말자'라는 카피를 달고 히치하이킹 여행 상품을 팔고,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라는 의미를 담아 제주도에 팝업 게스트하우스 '한량유치원'을 열었다. 그리고 그 카피 문구들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호기심은 흥미로 바뀌었다. 바로 박명호 대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덕업일치 시리즈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그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말하자 뜻밖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저는 일상과 일, 직업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편이에요."

일상과 일, 그리고 직업을 분리해서 생각한다고? 그러려면 작은 기업의 사장님이 되기보다 큰 기업의 일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게 더 낫지 않나?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한 번 만나 보기로 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박명호 씨는 인터뷰하는 두 시간 동안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저는 마음에 드는 카피가 나와야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일상과 일을 일부러라도 떼어놓지 않으면, 분리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원래는 전국 일주를 하고 세계 일주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2014년 4월 15일, 세월호에 탈 뻔했다가 우연히 타지 못하게 됐어요.
그 날 이후 계획을 전부 바꿨죠.
세계 일주라는 게 더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됐어요."

무언가를 이루려면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잘 알고 있어야 한다던데, 박명호 씨가 딱 그랬다.

박명호 씨가 공동대표로 있는 주식회사 공장공장은 자칭 '실험 주의자 양성소'다. 공장공장은 '빈(空) 공간, 함께하는(共) 공간'이라는 뜻이다. 공장공장이란 이름 아래 전국일주 여행사 '익스퍼루트', 문화 기획 및 홍보 대행사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 공간 '한량유치원' 등 세 개의 브랜드가 모여 있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작은 사무실을 카페 '공장공장'으로 고쳐서 쓰다가, 다시 해방촌의 차고 딸린 가정집을 사무실로 썼다. 그리고 한 달 전쯤 전남 목포에 새 둥지를 틀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동네인 목포에서 셰어하우스, 편집샵, 책방 등 사업을 오픈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히치하이킹을 판매합니다?

익스퍼루트는 공장공장의 서브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생겼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전국일주 한다', '히치하이킹을 판매합니다'라는 카피로 200여 가지 놀이가 있는 여행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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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킹은 원래 공짜로 하는 건데, 거기에 돈을 받는다니 말이 되나? 의문이 들었다. 가격도 30만 원 대에서 50만 원 대까지, 국내 여행 상품 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구매할까?

"히치하이킹을 판매한다고 얘기하면, 사실 제가 생각해도 말이 안 돼요. 히치하이킹은 원래 공짜로 하는 건데 어떻게 팔아요. 그런데 접근을 달리 하면 말이 돼요. 히치하이킹을 못 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제공하는 낭만이 분명 있으니까, 그런 걸 체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요. 대신 이야기를 팔면 되죠. 그래서 아예 단순하게 '히치하이킹 재미있겠다'로 시작을 했어요. 그걸 상품으로 묶을 방법은 그 뒤에 고민했고요."

익스퍼루트의 이름으로 처음 만든 카피가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전국일주 한다' 였다. '우리, 하루만 더 견디지 말자', '미선아, 전국일주 할래?'와 같은 카피도 뒤이어 나왔다. 여행 참여자들을 각기 다른 지역에 떨궈 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약속한 도시로 알아서 히치하이킹 해 건너오게 하는 여행 상품이었다. 밤에는 준비한 놀이를 즐겼다. 68,138km, 114박, 226일, 806명. 2014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약 2년 동안 익스퍼루트가 지나온 길의 거리, 함께 보낸 밤의 수, 모은 사람의 수다.

image 사진=익스퍼루트

다른 누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가 기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람들을 잡아 끄는 카피를 만들고, 그에 걸맞은 가치있는 경험을 판매하는 일이 박명호 씨가 주로 하는 일이다.

공장공장의 또 다른 서브 브랜드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운영한다. 누가 보기엔 단순한 문화 기획사 혹은 홍보 대행사일 수 있지만, 빠져들 만한 이야깃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제주도의 체험여행 플랫폼 '디스커버 제주'의 홍보 대행을 맡고, 여행 배낭 전문 브랜드 '킬리 아웃피터스'의 브랜드 컨설팅을 한 것도 모두 "스토리텔링이 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종종 뉴스에도 소개될 만큼 근무 환경과 복지가 좋았던 기업 홍보팀을 3년 만에 그만두고 나온 것도 다른 이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의 일 해 주는 거에서 오는 상실감이 컸어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를 했죠."

회사를 나와서는 1년 동안 전국을 여행했다. '목욕탕 옆'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을 짓고,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실험적인 일을 했다. 평소 읽던 책 600여 권을 2002년식 산타모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 해 글로 엮었다. 3년이 지난 지금, 180여 명의 인터뷰가 쌓였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인터뷰로 책을 내 보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반려했다. 좋아하는 일에 수익적인 요소를 결부하면 오래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image 사진=박명호

2014년 여름 전국일주 여행을 마친 박 씨는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 없어'라는 카피로 사진전을 열었다. 몇 해 전 스쿠터 대여 업체의 사장과 손님으로 알고 지내던 홍동우 씨를 이때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전국일주 여행사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익스퍼루트'다.

'대동강 물장사하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박명호 씨와 동업자 홍동우 씨는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매력적인 카피와 이야기는 꼭 함께다.

박 씨가 익스퍼루트에서 잠시 하차하고 굴려 본 '메아리 울려 제주'는 "여행에서 버려지는 것은 지친 마음뿐이라면 좋겠다"라는 카피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용두암, 해안도로, 올레길 등 관광지마다 버려진 쓰레기들이 박명호 씨의 눈에 띄었다. 지저분하게 버려진 것들 중 제주행 비행기 티켓이나 관광지 입장권, 감귤껍질 등은 모으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투명한 병에 제주 여행을 보여주는 쓰레기를 모아 담아 판매했다.

image 사진=메아리 울려 제주

image 사진=메아리 울려 제주

언론에 소개된 뒤 '대동강 물장사하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돈을 쓰기만 했지, 벌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향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게 욕이든 칭찬이든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과가 있었다고 박 씨는 회상했다.

"돈 버는 건 1년 계획이 다르고 2년, 5년 계획이 다르잖아요."

박 씨는 지금도 '목욕탕 옆'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안 될 것 같지만 해 보고 싶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과 돈 되는 일 사이에서 갈피를 잃을 때도 많았을 텐데, 돈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칼같이 나눌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돈 버는 건 1년 계획이 다르고 2년, 5년 계획이 각각 다 다르잖아요. '목욕탕 옆'은 처음부터 50년을 해 보자는 계획이었어요. 돈 버는 일, 남의 이야기를 대신해 주는 일에 지치면 돌아갈 구멍도 하나쯤 만들어 둬야 하고요."

밀레니얼의 '덕업일치'는 좋아하는 일과 돈 버는 일을 일치시킨 사람을 찾는 시리즈인데, 사람을 잘못 찾아왔나 싶어 머리가 띵했다.

image 사진=정인선/Deepr

image 사진=정인선/Deepr

"대신 수익을 내야 하는 일에선 한 번도 '돈을 못 벌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대학생 때부터 이런저런 사업을 많이 벌였는데, 한 번도 돈이 안 된 적이 없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여러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데 나부터 확신이 없으면 그 사업은 잘 될 리가 없어요."

전국일주 여행사 익스퍼루트, 기획사 장래희망은 한량, 공간 한량유치원 등 여러 브랜드를 공장공장이라는 기업으로 묶은 것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그것대로 집중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애초에 일과 일상을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칼같이 나눈 것도 있었다. 대신, 마음에 드는 카피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며칠 밤을 매달려서라도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을 방법을 만들어 낸다.

저는 그냥 이런 사람이에요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 '낭만을 판매합니다', '우리, 하루만 더 견디지 말자'는 카피는 누군가에겐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일상의 무게를 집어던지고 싶지 않아서 견디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박 씨는 "그냥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게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자신이 일하는 방식이나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 얘기다.

"누군가의 눈에는 제가 굉장히 편안해 보이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걸로 보이겠지만, 그 사람이 가진 것 중 제가 못 가진 것도 많아요. 내가 만약 돈이 많았다면, 내가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내가 서울에서 살았으면, 그때도 과연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많아요. 저는 그냥 이런 사람인 거예요."

image 박명호 씨가 만든 카피 문구들. 사진=익스퍼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