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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독립한다고? 당신의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디퍼x민달팽이유니온]튼튼한 임차인의 필수품 원룸상식사전 스토리펀딩을 시작합니다

정인선 2017년 08월 16일

민달팽이유니온을 처음 알게 된 건 2014년이었다. 원룸 관리비 표준화 운동 때문이었다. 지역마다 시세나마 알려져 있는 월세와 달리 관리비는 한 건물 안에서도 집주인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로 인해 자취하는 친구들이 겪는 고충이 크다는 걸 민달팽이유니온 덕분에 알았다.

image 민달팽이유니온은 2014년 2개월에 걸쳐 진행한 '청년 1, 2인 가구의 원룸 관리비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표준 원룸 관리비 기준표'를 개발했다. 사진=민달팽이유니온

한 해를 거듭할 때마다 치솟는 월세에 힘들어하던 친구들이 민달팽이협동조합의 협동조합형 공동주택 '달팽이집'을 통해 월세 걱정을 더는 걸 옆에서 보기도 했다. 사회 운동이 당사자들 삶의 가장 급한 문제를 건드려주는 실용적인 방법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는 걸 민달팽이 협동조합을 통해 알았다.

그런데, 내 얘기라고는 안 느껴졌다.

'좋은 일 하는 곳이구나' 정도가 끝이었을 뿐, 회원 혹은 조합원 가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세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까지 사회운동의 도움을 받는 게 맞는 걸까?

무리해서 산 집이긴 하지만 서울 시내에 부모님 집이 있다. 지저분하긴 해도 내 방 한 칸이 있다. 교통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동네라,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몰라도 그 전에는 단기간에 독립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니 민달팽이유니온이 사회에 던지는 의제들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일 뿐, 내 삶에 피부로 와닿는 문제들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나까지 사회운동의 도움을 받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독립을 한다면 삶의 만족도는 크게 올라갈 거였다. 자고 싶은 때까지 늘어져 잘 수 있고, 방 안에서 혼자 집중하고 싶을 때 밖에서 벌컥벌컥 열리는 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대선을 앞두고 '밀레니얼 어젠다' 시리즈의 첫 주제로 청년 주거 문제를 취재할 때 만난 20, 30대 취재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 20대 직장인 친구는 서울로 독립해 나와서 고생하며 사느니, 매일 왕복 세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길 택했다. 심지어 ‘지옥철’을 피해 경기도 한 도시의 집까지 가기 위해, 광역버스를 타고 다른 경기도 도시에 들렀다가 집까지 가는 코스를 직접 개발했다. 포털 지도도 알려주지 않는 통근 경로다.

그는 귀가하면 책 한 권 들여다보거나 동네를 산책할 여유도 없이 쓰러져 잠이 든다고 했지만, 그래도 독립을 할 엄두는 안 난다고 했다.

“(독립했을 때 져야 하는) 월 주거비 부담이 30만원 정도만 줄어들어도 독립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대선 후보를 고를 때 청년 주거 정책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나는 취약계층이 아니니까 어떤 정책을 당장 만든다고 해도 적용 대상이 아니잖아. 돈을 벌고 있으니까. 내가 봐도 내가 혜택 받을 사람은 아니야. 우리보다 힘든 사람이 많으니까."

스스로의 권리를 계속 다른 누군가와 상대평가하면서 유예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스물 다섯이란 것 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한 거 아니야?"

취업 준비를 막 시작했던 스물 다섯 살 때 일이다. 집에서 나와 살고 싶은데 백수 취준생 주제에 언감생심 아닌가 싶다고 친구에게 한탄하듯 이야기하자, "스물 다섯이란 것 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한 거 아니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권리로서 내 집 한 칸을 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

숫자도 보여주는 '집 나오면 개고생'

한국장학재단이 2016년 실시한 대학생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열 명 중 여섯 명은 부모의 공간에 얹혀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스스로가 독립을 원하지 않아서 자발적으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이는 20.9%에 불과하다.

반면 절반에 가까운 46.7%는 독립을 원하지만 주거비·생활비가 부담돼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독립을 원하지만 가족이 반대해서'라고 답한 4.4%를 더하면, '캥거루족' 대학생의 절반 이상은 독립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채 자립을 유예하고 있다.

image '캥거루족' 대학생의 절반 이상은 독립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채 자립을 유예하고 있다. Illust=Grace Heejung Kim

절반이 넘는 대학생을 비자발적 미독립 상태로 묶어 두는 양대 공신은 소득 수준을 훨씬 웃도는 임대료, 그리고 독립했을 때 마주쳐야 할 형편없는 주거 환경이다.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이라는 지표가 있다. 한 달 가처분소득에서 보증금(이자)이나 월세와 같이 주거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지출의 비율을 계산한 값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RIR이 30%를 넘는 주거빈곤층의 대다수는 청년 1, 2인가구다. 반면 장년 부모와 청년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의 경우 주거빈곤층에 속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걸로 나타났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청년 1인가구의 36.3%는 집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집에 거주한다. 일단 독립을 결심하면 법이 정해 놓은 면적인 방의 개수, 시설을 못 갖췄거나, 반지하, 옥탑 등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지내는 세 명 중 한 명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말 그대로 집 나오면 개고생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 부모님 집 있는 청년에게 독립은 배부른 소리다.

혼자이고 싶은 욕구, '병' 아니다

누군가에겐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바라는 게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거스르는 '병'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얼마 전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한 방송에 출연해 혼밥 문화를 사회적 자폐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었다. 황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내게 왜 혼밥이 주어졌는지 알고는 먹자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1인가구를 '정상적이지 않은' 가구 형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홀로'이고 싶은 청년들의 욕구를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보는 탓인지, 청년을 위한 주거 정책도 주로 신혼부부나 대학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잠깐 저러다 말 애들이니까. 잠깐 살다 갈 애들이니까 후순위로 미뤄 두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거나, 출산율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이들이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인다.

‘언젠가’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독립을 유예시키는 삶에서 청년들은 때로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된다. 서른이 다 되어서도 온전한 의미의 성인이 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존해 몸 누일 곳을 찾아야 하거나, 최저임금 조금 올라서는 감당할 수 없는 월세에 허덕여야 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사회는 과연 '정상'일까?

민달팽이유니온이 최근에 '텀블벅'에서 진행한 <원룸상식사전> 제작 프로젝트에 후원 버튼을 누른 것도, 두 달 전 늦게나마 민달팽이유니온의 회원이 된 것도 "언젠가 독립하겠지, 그럼 나에게도 언젠가 필요하겠지"하는 생각에서였다.

이젠, 그 '언젠가'라는 세 글자를 떼어 버리고 싶다.

디퍼와 민달팽이유니온이 손을 잡았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민달팽이유니온이 텀블벅 프로젝트에 다 못 담은 이야기를 마저 담는다. '튼튼한 임차인의 필수품 원룸상식사전' 프로젝트다. 책 원룸상식사전과 민달팽이유니온이 개발한 표준주택임대차계약서 등이 들어있는 '원룸키트'를 리워드로 제공한다. 디퍼의 오프라인 행사인 '디퍼살롱: 잠깐 스쳐 가는 집은 없다'(11월 초 개최 예정) 입장권도 마련했다.

image 원룸키트 미리보기 ⓒ민달팽이유니온, 신인아(오늘의풍경)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집의 의미, 그리고 주거권의 의미를 다시 써내려갈 것이다. 원룸이라는 획일화된 공간이 낳는 획일화된 삶의 모양 이야기,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불화를 필연으로 만드는 제도 이야기, 부모님 집도, 창문을 열 수 없는 원룸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기만의 방’이 보장됐을 때 청년에게 열리는 가능성의 이야기를 하나씩 다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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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Grace Heejung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