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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과의 인연, 아이와 함께 강제 종료

대한민국에서 여성 개발자로 살아남기 (3)

조경숙 2017년 08월 15일

첫 회사에서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약 1년에 거쳐 진행된 (나름)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규모에 비해 프로젝트 수행 인원은 턱없이 적었지만 내겐 나름대로 의미가 깊었다.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 소스를 볼 수 있었고, 각각의 시스템들이 구동되는 인프라 환경을 가장 밑바닥부터 뜯어 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대상으로 하는 분야가 워낙 넓고 새로운 데다가 정보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괴로웠지만, 그만큼 오류를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선배들도 업무에 박식하고 성품도 대단해 배울 점이 많았다. 사람도, 일의 내용도 좋았다. 단, 내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임신해서 미안해

난임으로 임신이 잘 되지 않다가 우연히 착상된 귀한 아이였다. 초기에는 심한 입덧으로 고생했고, 중기부터는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다. 임신 중의 호르몬 이상 때문에 혈당이 올라가게 되는 증상으로, 엄격한 식이 조절과 운동을 통해 체중을 조절해야 했다. 아침에 눈 뜨기도 힘들었는데 점심으로 먹을 샐러드 도시락을 준비했고, 회사에는 늘 혈당 측정기를 들고 다녔다. 혈당이 과하게 높아지면 반드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 프로젝트는 계속 난항으로 치달았다. 심혈을 기울여 테스트해도 워낙 프로젝트의 범위가 큰 탓에 여기저기서 시스템 장애가 속출했다. 신경을 뾰족하게 세우고 일을 해도 어딘가에서는 구멍이 나다 보니, 오류 없이 잘 되면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했다. 새벽에 장애 콜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스트레스가 과도해져서 아무리 샐러드를 먹고 점심에 나가 발이 아프도록 걸어도 혈당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image 첫 직장에서의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발견한 메모.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날 끼적인 '호사분면'이다. 사진=조경숙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신 중기부터 배 뭉침 현상이 심하게 오기 시작했다. 배 뭉침은 배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쥐어짜듯 아픈 증상으로 자궁이 수축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 안정을 취하면 금방 없어진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배 뭉침 증상이 오랫동안 지속하곤 했다.

보통은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겨왔는데 임신한 지 29주가 되었던 어느 날 새벽, 장애 콜을 받고 오류를 조치하던 중 또다시 배 뭉침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심상치 않았다. 여느 때의 배뭉침보다 훨씬 더 배가 딱딱하게 굳어와서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잘못한 사람 없는데 모두가 죄책감

다행히 오류는 금방 잡혔는데, 조치를 마친 이후에 침대에 돌아가 누운 이후에도 배 뭉침이 멈추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병상에 누워 수액을 맞고 나니 금방 안정되었지만, 이런 일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니 절대 안정을 해야 한다며 의사 선생님이 엄한 얼굴로 경고했다.

나도 나대로 고생이었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이중고에 시달렸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산부는 원칙적으로 야근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야근을 하더라도 ‘야근 수당'을 신청하지 못했다. 동료들의 잘못은 정말 없었는데, 그 내용을 동료들도 알고 있어서 나를 배려해 동료들까지 야근 수당을 신청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야근과 주말 근무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는데, 옆 팀에서는 '임산부를 왜 이렇게 부려 먹냐'며 짐짓 눈치를 주기도 했다. 배 뭉침으로 내가 힘겨워할 때 옆에서 함께 안타까워 하면서, 함께 야근을 해야 하는 일에서도 나만 먼저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동료들은 동료들대로 내게 늘 미안해했다. 애당초 프로젝트 규모에 비해 인원을 너무나 적게 배치한 윗선 잘못이 가장 큰데도, 함께 고생하는 얼굴들이 서로에 대한 죄책감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33주 출산을 목표로 해봅시다"

프로젝트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나는 임신 30주차였다.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에 들렀는데 검진하던 의사 선생님 얼굴이 그야말로 ‘사색'이 되면서 당장 대학 병원으로 가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내로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완전히 패닉에 빠져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울고 불고 하면서 당장 대학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미리 전화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대학 병원에서는 지금 일어서도 안된다며 휠체어에 태워 곧바로 병상으로 이동시켰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30주면 아기 뇌가 발달해야 하고 31주면 폐가 발달하는 시기예요.
폐가 생기기 전에 태어나면 아이가 호흡하기 너무 힘드니까
우리의 목표는 32~3주라고 정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아이는 40주를 전후해서 태어나고, 37주 이전에 태어나면 조산으로 본다. 조산 기준보다도 한참 못 미친 32주가 우리 아이의 ‘목표'였다. 게다가 나는 자궁 수축을 방지하는 수액을 투여하되 혈당을 올리지 않아야 하므로 인슐린 투여까지 고려해가면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해서 개인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고위험 산모군’이었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선배에게 급히 전화했고, 다행히 회사에서는 바로 휴직계를 내주었다. 이제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 무렵이긴 했지만 마지막 대규모 작업을 앞두던 때여서 정말 너무 큰 죄책감이 들었다.

"시스템 죽는다고 사람 죽는 거 아니잖아요"

병원에 누워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노트북은 당연히 금지였고 책도 읽지 말라고 했다. 배가 아래로 향하면 아이가 더 빨리 나올 수 있으니, 식사할 때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상체를 세우지 않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어야 했다. 가끔 옆으로 누워서 영화를 볼 수는 있었지만, 계속 투여되는 수액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image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 생활을 하면서 시스템 하나 멈춰도 세상 멈추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사진=조경숙

병원의 시간은 회사와 다르게 흘러갔다. 매시 매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회사의 분위기가 (당연하지만) 여기까지 미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시스템이 하나 멈추면 세상이 멈출 것처럼 난리가 났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병원은 병원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전에 프로젝트 도중 심한 질병을 얻고 휴직했던 선배가 복직해서 한 말이 떠올랐다.

“시스템 죽는다고 사람 죽는 거 아니잖아요.
밖에서 보니까 별거 아니더라.
우리 너무 매여 살지 말아요...”

엄마 퇴근 시간에 맞춰 나온 아기

몇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아기는 기적적으로 40주 0일, 예정일에 딱 맞추어 태어났다. 오전 9시에 태동이 오기 시작해서 병원에 갔는데 오후 1시 무렵부터 진통하기 시작해 오후 6시 10분에 태어났다. 의사 선생님이 웃으면서 '엄마랑 직장 다녀서 그런가, 딱 퇴근 시간에 맞춰 나왔네요.' 하고 말을 건넸다. 그 시간에 퇴근한 적은 손에 꼽았지만, 아이는 커서도 야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통했나보다, 속으로 생각하며 함께 웃었다.

풍문으로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내 눈으로 직접 프로젝트의 성과를 다시 볼 일은 없었다. 육아 휴직을 하던 중에 회사에는 권고사직의 칼바람이 불었고, 당시 육아 휴직자였던 나는 자르기 좋은 대상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회사와의 짧고도 긴 인연은 5년 만에 ‘강제 종료' 되었다.

Cover=Grace Heejung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