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덕업일치

야그림 그리는 작가, 민조킹입니다.

밀레니얼의 '덕업일치' (10) 일러스트레이터 김민조

윤지원 2017년 08월 22일 정인선

노골적이다. 부드러운 선이 몸을 섞는다. 굳이 숨겨서 몰래 볼 건 없지만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큰 화면으로 보기는 힘들 테다. 왜냐고? ‘야한 그림’이니까.

민조킹(김민조)
31세
야그림 그리는 작가

성 엄숙주의가 깨져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적 개방도가 여전히 낮은 한국 사회에서 야하다는 말은 부정적 느낌을 준다. 특히 야한 그림은 특정 성별의 독자만 겨냥하거나, 인체를 과장·왜곡해 남성 중심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콘텐츠가 대다수였다. 이런 시장에 “나는 야그림(야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는 한 문장으로 스스로 소개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민조킹의 그림이 표현하는 바는 명확하다. 사랑, 성애, 체위, 섹스.

더우니까 붙어있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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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은 따뜻하고, 귀엽고, 유쾌하다. 지나간 연애의 서사가 주루룩 떠오르면서 왠지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유명해진 작가, 민조킹을 인터뷰하러 간다고 했을 때 기자의 친구는 자신이 얼마나 그의 팬인지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연인과 나누는 신체적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었는데, 민조킹의 그림으로 인해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민조킹은 독자들에게서 “행복하고 슬펐던 그때 연애의 기억이 떠올랐다”, “진실하게 사랑했던 사람과 연애가 끝났는데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라고 고마워하는 반응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반응이 와야 그리는 사람도 재밌지

중·고등학생 때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일반 회사에서 번역 업무를 맡았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연인과 장거리 연애를 하느라 시간이 남았다. ‘그림을 취미로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인 2012년 일이다.

“그 때는 인스타그램이 지금처럼 보편적인 SNS가 되기 전이었어요. 보통은 다들 셀카나 여행 사진처럼 자랑하고 싶은 사진을 올리잖아요. 저는 뭘 올릴까 하다가 취미로 그린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 야한 그림이 있었던 거죠.
사람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제 계정을 보던 사람들이 지인들이었으니까 유쾌한 ‘섹드립’이 나왔고, 저도 그런 데 거부감을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더 재밌었어요.”

여름인가 #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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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지금의 민조킹을 있게 한 첫 번째 ‘야한 그림’이다.

처음부터 ‘야한 그림을 그리자’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는 소리다. 반응이 오니 그림 그려서 올리는 것도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무조건 매일 그림 한 개는 그려서 올리자는 목표를 스스로 세웠다. 계정에 그림이 쌓이는 만큼 팔로워 수는 늘었다. 처음으로 외부에서 작업 의뢰 연락이 온 것은 일 년이 지난 후였다.

직장인의 취미와 전업 프리랜서 작가의 사이에서

민조킹은 작년 2월 5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두 차례 독립출판물(<귀엽고 야하고 쓸데없는 그림책>, <연애고자>)을 내는 동안 그림 그리는 취미는 부업이었다가 투잡이 됐고, 결국은 메인 잡이 됐다. 정식 단행본이자 세 번째 책 <모두의 연애>는 전업 작가로서 낸 첫 번째 책이다. ‘간절히 원하면 성취하게 된다’거나 ‘취미로 돈 버는 부러운 사람’라는 말로 민조킹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프리랜서 선언은 낭만적인 인간승리가 아니다.

“원래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부업으로 하려 했어요. 그림만 가지고 돈을 벌며 살아가는 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프리랜서가 되면 수입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들쭉날쭉해진다는 것도 불안했고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라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고민과 걱정이 많았어요.”

온라인에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개인 창작자와 오프라인에서 책을 펴낸 경험이 있는 작가의 무게는 달랐다. 원고 작업에서부터 감리까지 모든 출간 준비를 독립적으로 하는 것과 정식 출판사를 끼고 하는 것의 무게가 또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자신의 그림이 시장에서 확실한 영역을 차지하지고 있다는 셈이 섰기 때문이다.

image 디퍼와 인터뷰 중인 민조킹. 사진=정인선

“이 분야에서 제가 약간 독보적이라고 해야 하나, 저 같은 사람이 많이 없잖아요. 야한 그림을 그리는 여성 작가는요. 그래서 이걸 계속 하다 보면 확장성이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블루오션이었던 거죠.”

하지만 그것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장르에도 한계는 있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야하다’는 제 컨셉은 계속 가지고 가되 새로운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재밌었기 때문에 그림을 시작했던 거니까, (정체되지 않고) 이것저것 신선한 시도를 계속 해야지 저 스스로 지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겠고 생각해요.

창작물은 남들에게 가 닿아야 한다. 꾸준히

지금이야 창작으로 돈을 버는 작가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던 그 때 어떻게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올리는 작업을 이어 왔는지 궁금했다. 좋은 소리만 기대할 수는 없을 텐데, 남에게 보여 진다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이 지점에서 민조킹은 단호했다.

작업물을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하다못해 자비로 출판이라도 하는 거랑 안 하는 거랑 엄청 차이가 커요. 저는 주위 사람에게도 계속 어딘가 보일 수 있는 곳에 올리라고 해요. 블로그 글을 써도 이웃공개보다 전체공개로 쓰라고 해요. 그래야 내 작업의 결과물을 누군가 계속 봐 주거든요.”

그림에 대한 평가가 두렵진 않았을까? 특히 점점 유명해지면서 독자가 친한 지인 집단에서 얼굴도 모르는 대중으로 확장되는 것은 글이든 그림이든 창작자에게는 솔직히 겁나는 일이다.

“남들의 평가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맞아요. 예를 들어 저는 미술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체 비례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전체적인 그림의 느낌을 보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로 접근을 하신 분들이었죠.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예민해서 그런 지적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서 해명할까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초연해졌죠.”

image 작업하는 방 한 켠에 세워져 있던 이젤. 사진=윤지원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격지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초반에 잠깐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과 비슷한 수업을 들을 때,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기초를 쌓아야 하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흔들렸던 그 때 다잡아줬던 사람도 인스타그램에서 오래 교류한 팬이었다.

“‘사람들이 네 그림의 기술적인 부분을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네 그림을 어떻게 발전할지에만 신경 써라.’고 말해 주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입시미술에서 강조하는 기본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저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새로운 도구를 써 본다든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도전해보려고 더 노력해요.
어떤 전공자 분들은 예술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고집이 있다 보니 인스타그램은 (그림을 다루기에) 가볍다고 생각하시기도 하거든요. 저는 그냥 제 그림이 어디선가 보이면 좋고, 많이 써 주신다고 하면 감사하죠.

image 민조킹의 작업 책상. 다양한 채색 도구가 꽂혀 있다. 사진=윤지원

셀프 브랜딩은 프리랜서의 필수 단계다

회사를 나와 작가로 활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립하고 남에게 판다는 것과 동일하다. 프리랜서가 된다는 건 자기 자신이 사장이자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혼자서 일하는 건 회사 다닐 때와 달리 진짜 힘들긴 해요. 회사 다닐 때는 당연히 '나인 투 식스'로 앉아서 일 하고 열두 시엔 나가서 밥 먹는 패턴이 정해져 있어서 어찌 보면 편하거든요. 근데 저는 작업실이 따로 있지 않아요. 중간에 낮잠을 자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끄적거리자는 식으로 다잡으려고 하는 편이죠. 제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망하는 건 한 순간이니까요.

image 사진=정인선

때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돈이 되는 일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덕업일치’라 해서 현실적으로 오직 덕질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올 5월부터 저스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웹툰 <쉘위카마수트라>가 그랬다.

새로운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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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올린 그림. ‘약간 카마수트라 느낌’이라는 댓글이 눈에 띈다.

image 책장에 책 <카마수트라>가 꽂혀 있었다. 사진=윤지원

“<연애고자>나 <모두의 연애>도 다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웹툰이라는 조금 긴 스토리텔링의 호흡이 그렇게 낯선 작업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평소 작업량보다 몇 배는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해서 좀 힘들어요.
솔직히 계속 작업을 즐기고 싶지만 웹툰 하면서는 (예전보다) 못 즐기고 있어요. 제가 창작자로서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해서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제 그림으로 전시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근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웹툰이 재미보다는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의미가 큰 작업이라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의뢰는 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다. 예를 들어 한국 런칭 일주년을 맞은 일본 자위기구 업체인 텐가와의 협업은 재미있어서 신나게 작업하고 있다. 돈이 되는 수입원과 하고 싶은 일이 보장되는 수입원을 구분하고 그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웹툰 외에도 (비정기적으로)잡지 일러스트나 삽화도 그려야 하고, 이벤트 성 굿즈도 기획해야 하고……. 되게 힘들어요. 하지만 계속 뭔가 쉬지 않고 해야 하는 건 맞는 거 같아요.
예전에 회사 다니면서 출판 준비했을 때는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원고 작업하고, 디자인 하고, 인쇄소 알아보고 감리 보는 일을 혼자 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네요. 뭔가를 분간할 새도 없이 경주마처럼 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이 어떤 특별한 고비도 아니었고, 좋은 기회들이 계속해서 제게 찾아왔다고 느껴지거든요.
제게는 되게 운 좋게도 자연스럽게 지금의 커리어가 쌓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변 분들은 제가 한 일이 큰 노력이라고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끝까지 파라’는 격언이 떠올랐다. 평소 끈기가 없고 좋아하는 것도 자주 바뀌는 기자에게 그 말은 꼰대들이나 하는 소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작가 민조킹이 운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우물을 파는 그가 상상됐다.

‘내가 한 구덩이를 얼마나 깊게 팠는지 보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구덩이를 파다가 이런 보물을 발견했다'고 소리친 것도 아니다. 그저 그가 깊게 판 곳에 물이 찾아들었을 뿐이다. ‘덕업일치'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감동은 열심히 판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 차오를 때를 바라보는 감정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cover=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