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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한 달에 한 번만 아프면 안될까?

대한민국에서 여성 개발자로 살아남기 (4)

조경숙 2017년 08월 28일

“대체 꿈이 뭐예요? 육아하면서 적당히 칼퇴하는거? 아님 여성임원이라도 되고 싶어요?”

이직을 위해 찾은 면접장에서 받은 질문이다.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는 둥, 남편 직업이 뭐냐는 둥 다소 무례한 질문들을 모두 참고 있었는데, 여기에선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말이 있냐기에, ‘면접관님의 꿈은 대체 뭐예요? 얼마나 큰 꿈이 있으세요?’ 하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피차 시간 낭비였는데 안녕히 계”시라며 마지막 말을 마치고 씩씩거리며 면접장을 나왔다. 1시간의 긴 면접 동안 내 실력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남편 직업이 뭐길래 애 낳고도 일을 하냐는 둥, 꿈이 뭐냐는 둥, 회사 다니면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는 둥 시답잖은 이야기만 하다가 면접이 끝났다.

첫 회사와 인연이 갑작스럽게 끝나고 난 뒤,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나는 열심히 면접장들을 찾아다녔다. 다른 회사들도 면접에서 으레 육아와 남편 이야기가 등장했다.

면접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건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여성 개발자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들을 가끔 눈팅하는데, 거기에서도 면접 볼 때 남편의 직업을 묻는 일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남편의 직업이 좋으면 좋은 대로 ‘그런데 왜 일을 하세요?’ 했고, 남편의 직업이 좋지 않으면 괜히 비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image Illust=Grace Heejung Kim

회사를 고르는 단 두 가지 기준: 어린이집에서 가까운지, 칼퇴가 가능한지

어딜 가든 남편과 아이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무례한 케이스가 있는 반면 그 정도가 매우 양호한 곳도 있었다. 내가 두 번째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 회사는 후자에 가까웠다. 3명의 면접관 가운데 2명은 여성이었다. 여기서도 보육 문제가 어김없이 나왔지만, 그건 기술 면접을 충분히 치르고 난 뒤 넌지시 물은 말이었다. 임원 면접에서도 무례한 태도를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다.

지원할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전적으로 ‘아이'였다. 어린이집에서 가까운지, 정시퇴근이 가능한지 잡플래닛이나 사람인 사이트를 꼼꼼하게 뒤져가면서 육아와 사회생활의 병립 가능성을 중점으로 두었다. 물론 그렇게 고르고 골라 지원한 회사에서도 나를 필요로 해야 하므로, 쌍방의 필요가 딱 들어맞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운 좋게도 두 번째 회사는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곳이었다. 회사에서도 마침 내가 가진 연차와 스펙(프로젝트 수행 이력, 보유 기술 셋)의 인력을 원했고, 내게도 항상 6시 ‘칼퇴'한다는 그 회사가 필요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했다

회사는 정말 ‘칼퇴'였다. 아무리 칼퇴근한다 해도 6시 20분이나 30분쯤을 예상했는데, 이 회사에서는 5시 58분이 되면 모두 일제히 컴퓨터를 껐다. 그 대신 업무 시간의 업무량은 그야말로 ‘하드’했다. 처리해야 할 개발 건들이 늘 산적해 있었고 급하니까 먼저 해달라고 하는 긴급 요청 역시 줄지어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개발하다가 기진맥진해서 퇴근하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는 기어 다니지도 못했는데 어린이집에 맡겨졌고, 아직 너무 어린 터라 조금 일찍 하원 해 아이의 양가 조부모님들이 번갈아 2~3시간씩 아이를 돌봤다. 간혹 조부모님이 못 오시거나 몸이 좋지 않으실 때를 대비해 보조할 베이비시터도 고용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 그 자체였다.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돌아갔지만 내 건강 상태는 눈에 띄게 악화됐다. 갑작스러운 퇴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한창 내부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던 회사의 물리적 환경도 한몫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염을 달고 살았고 자주 소화 불량과 구토에 시달렸다.

야근이 잦은 남편을 대신해 ‘칼퇴’하자마자 ‘육출(육아출근)’ 해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근로기준법상 신규 입사였기 때문에 연차는 고작 월 1회의 월차가 다였다. 그나마도 월 1회 꼬박꼬박 쓰면 다음 해 쓸 수 있는 연차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아끼고 아껴서 정말 써야 할 때만 신청했다.

아가야, 한 달에 한 번만 아프면 안될까?

휴가를 ‘정말 써야 할 때'란 딱 하나였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는데 아이의 조부모님들도 시간 내기가 어려울 때였다. 베이비시터도 오후 시간대로 계약했기 때문에 최소 오전에 병원을 다녀온다거나 교대할 때까지는 내가 아이를 돌봐야 했다.

그나마도 아이가 많이 아픈 때엔 누군가에게 맡기기가 어려워서, 종일 휴가를 내고 아이의 옆을 지켰다. 내게 있는 휴가란 월 1회뿐인데 아이는 월 1회만 아프지 않았다.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일주일은 등원할 수 없었고, 여름엔 어린이집 여름 휴가 기간으로 또 일주일을 집에서 돌보아야 했다.

그나마 내겐 월 1회의 휴가라도 있었지만, 남편의 회사는 휴가를 아예 쓸 수 없었다. 여름휴가 3~5일 정도는 있었지만, 처음부터 아예 연차를 돈으로 보상해주고 아주 필요할 때 반차 정도로 양해를 구했다. 야근이 많고 휴가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였어도 육아는 거의 내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아플 땐 휴가를 쓸 수가 없었다. 온갖 약과 건강 보조제를 털어 넣으면서 버텼다. 점심시간엔 주로 점심을 거르고 병원을 찾았다.

두 번째 퇴사, 내 손으로 내린 사회생활 사형선고

그렇게 만 1년이 지난 뒤, 결국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의원도 가보고 대학병원도 가봤지만 멈추지 않는 기침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식도염, 위염, 폐결핵, 폐렴 등 여러 질병의 가능성을 달고 온갖 검진을 받고 갖가지 약을 먹어도 기침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커피를 끊고 식생활을 바꾸고 운동을 하고 … 별별 요법을 다 해봤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커리어를 이어야 한다는 건 내 욕심이었을까. 맞벌이가 불가능하다면 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퇴사한다고 해서 기침이 멈출까. 여러 질문과 불안을 안고 두 번째 회사를 그만뒀다. 스스로 사회생활에 대한 ‘사형 선고'를 내린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