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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노동을 상상할 수 있는 힘

대한민국에서 여성 개발자로 살아남기 (5)

조경숙 2017년 09월 26일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내가 더 감동할 때가 있다. 최근에 읽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그랬다. 이 책은 곰 가족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 곰은 최근에 실직하여 돈벌이가 없었고, 근근이 사는 가운데 저축한 돈도 바닥나 부모 곰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지 못한다. 그래도 곰 가족은 정성껏 저녁을 차리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다. 조용하고 침잠된 분위기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두가 잠을 자러 침실로 올라갈 때 아기 곰이 부모 곰에게 말한다. '산타는 우리를 잊지 않을 거예요.'

다음 날 일어나보니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가족들이 상상하지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제각기 열어 든 선물 상자 속에는 잃어버린 모자, 놀이터에 두고 왔던 우산, 소중한 옷에서 떨어졌던 단추, 새것처럼 반짝반짝한 야구 글러브가 들어 있었다.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이 돌아와 모두 감격스러워하면서 곰 가족은 매우 기쁘게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곰 가족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신상 장난감이나 예쁜 새 옷보다도 더 멋지다. 평소에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무엇인지 섬세하게 살펴봐 주고, 그 물건들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에 공감해주며, 물건뿐 아니라 물건에 담긴 추억과 사랑을 함께 돌려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 책을 다시 읽어달라고 했고, 다섯 번을 다시 듣고서야 곤히 잠들었다. 아이의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도 나는 이상한 상념에 빠져들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개발을 좋아했던 건 왜였을까? 나는 지금 뭘 잃어버린 걸까. 내게 소중한 것, 내가 지켜야 했던 건 뭐였을까.

만드는 사람조차 뭘 만드는지 몰랐다

개발자가 되기로 처음 마음먹었던 건 2010년 즈음이었다. 지원한 채용 공고마다 죽죽 떨어지고 나조차도 무엇을 지망해야 하는지 길을 잃었을 때, 친한 지인이 연구소 인턴을 제안했다. 선거제도 관련 연구소였는데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발 벗고 뛰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선거제도 개혁 캠페인 사이트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사이트 개발에 앞서 어떻게 사이트를 꾸밀건지 여러 사례를 수집하고, 우리 사이트의 브랜드 색상을 정하고, 연구소 각각의 사람들과 기획 아이디어를 조정했다. 인턴이긴 했지만 연구소 안에서는 멤버들끼리 의견을 민주적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개발하기 전에 어떤 것을 개발하고 싶은지 주도적으로 협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이트의 형태뿐 아니라 사이트의 내용에서도 함께 스터디했다. 사이트에 정보를 배치하기 위해서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스스로 알아야 하기도 하고, 내가 만드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개발하는지 알고, 어떤 것을 개발하고 싶은지 떠올리고, 그리고나서 스스로 개발하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2011년 초반의 나는 개발이 내 적성에 잘 맞으며, 나는 진심으로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업의 개발자로 취직하면서 이러한 경험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윗 사람이 원하니까' 또는 ‘고객이 원하니까' 개발해야 했지, 그게 개발로 구체화되었을 때 실제 효율적이고 적합하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IT 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대로 해주면 그 프로젝트는 망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하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꼭 반대로 개발하라는 말은 아니고, 고객조차 원하는 그림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시스템 엔지니어가 적극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여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공한 프로젝트는 대개 윗사람이 관심 없는 소규모 프로젝트였고,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시스템들은 서서히 아무도 안 쓰게 되어 나중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게 방치되곤 했다. 그렇게 내가 만든 시스템이 죽어가는 동안, 개발에 대한 흥미도 차차 사그러 들었다.

개발자는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일할 바에는 차라리 ‘칼퇴'라도 되는 곳을 바랐다. 두 번째 이직한 곳은 그래서 정말 ‘칼퇴'만 되는 곳이었다. 그나마 기획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직장과 달리 두 번째 직장에서 기획과 개발은 칼같이 나누어져 있어, 개발 부서는 부서에 떨어지는 일만 기계적으로 수행해야 했다. 아무리 ‘칼퇴'하고 주말이 보장되는 직장이라도 내가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이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직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내게 맞는 업무의 방향을 찾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직장을 옮기면서 내가 원하는 일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찾아 나갔다. 지금의 회사는, 아직 입사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와 꽤 잘 맞는다. 개발자와 기획자가 구분되어 존재하지 않아 모두가 함께 기획에 참여하며, 일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다. 이 조직에서는 누가 ‘시켜서’ 해야 하는 일은 없고, 누군가 ‘제안한' 일들만 있다.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함께 논의하여 결정한다.

이렇게 일을 하는 곳은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안경 쇼핑몰 ‘와비파커'는 고객이 안경을 일단 수령한 다음에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기획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개발 문화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image 와비파커 홈페이지

와비파커 역시 개발자들이 늘 경영진들의 지시에 따라 개발하다 보니 조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개발자들의 업무 소외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 자신의 업무를 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 권한이 개발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와비파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직원이나 경영진이 제안한 기능 개선 아이디어 가운데 개발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정하여 개발하게끔 했다. (자세한 내용은 티타임스의 와비파커가 개발자들을 춤추게 한 비결 참조)

내가 원하는 노동을 상상할 수 있는 힘

작년 이맘때쯤 여성 개발자와 함께 하는 토크 테이블에 초대되었던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고 해서, 5년 차 개발자로서 10년 차 이상의 선배들을 향해 “후배 개발자들이 똑같은 경험을 답습하게 그냥 두지 말아 주세요.” 라고 했다. 다소 치기 어린 말이기는 하나 여전히 돌이킬 생각은 없다.

내가 노동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내가 원하는 노동을 상상할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만난 선배들 덕택이었다. 일의 노예가 되어 극도로 스트레스받을 때, 소수의 선배들은 이런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감을 맡기곤 했다. 괴로워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화해주고 이끌어주었다. 지금의 회사나 와비파커처럼 혁신적인 시스템을 회사 차원으로 도입하긴 어렵더라도, 선배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발자 주도적인 문화를 만들고자 심혈을 기울였을 때 실질적으로 숨통이 트인 느낌을 받았다.

image Illust=Grace Heejung Kim

나는 여전히 노동자의 힘을 믿는다. 꼭 노조를 결성하라는 건 아니다. 지금의 내 자리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권 안에서 업무를 다시 재구성하고 조율하는 일 역시 작지만 매우 영향력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수가 부사수를 챙기고 보조를 맞추는 일, 혐오하고 싫어하는 문화를 아랫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 일… … . 사람이 태어나 아기 걸음으로 먼저 걷듯이, 문화를 바꾸는 일도 아기 걸음처럼 한 발 한 발 휘청거리며 걸을 때 진전하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은 너무나 멀고 큰 이야기 같아 부담스럽다. 하지만 더 나은 사무실 정도는 우리 힘만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신뢰하는 건, 딱 내 파티션 하나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마지막 문장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에서 차용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 개발자로 살아남기' 시리즈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종료됩니다.

(1) 국문과 나와서 개발자가 됐다고?
(2) 여자들은 멀티가 되잖아, 남자는 개발밖에 못 해
(3) 첫 직장과의 인연, 아이와 함께 강제 종료
(4) 아가야, 한 달에 한 번만 아프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