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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월호를 떠나 집으로 갑시다

단원고 2학년 조은화 님, 허다윤 님의 이별식

하민지 2017년 09월 26일

image 사진=하민지

“은화님, 다윤님, 이제 세월호를 떠나 집으로 갑시다.”

‘장례식’이 아니다. ‘이별식’이다. 지난 9월 23일부터 3일간,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단원고 2학년 조은화 님과 허다윤 님의 ‘이별식’이 있었다. 24일 오후 8시에는 신학생시국연석회의 주관으로 이별식 위로 기도회가 열렸다. 사회를 맡은 전이루 씨는 “이제 세월호를 떠나 집으로 갑시다”라며 기도회를 시작했다.

은화·다윤 님은 세월호 미수습자였다. 세월호는 지난 3월 23일에 뭍으로 올라왔다. 미수습자 수색은 4월 18일에 시작됐다. 은화·다윤 님은 지난 5월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4년 4월 16일부터 2017년까지, 이들은 3년을 세월호 안에 있었다.

꽃향기 가득했던 이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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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어머니 이금희 씨와 다윤 어머니 박은미 씨는 차가운 곳에 있었던 딸들을 따뜻하게 보내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장례식’이 아니라 ‘이별식’이다. 헌화도 국화가 아니라 분홍색 장미로 했다. 딸들이 좋아하는 색이라고 한다. 이별식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사한 꽃향기부터 맡을 수 있었다. 가족들은 딸들의 사진도 가장 환하고 밝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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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기도회는 은화·다윤 님과 둘러 앉은 형태로 진행됐다. 기도회를 진행하는 이들은 목소리를 낮췄다. 이별식장에 들러 조용히 은화·다윤 님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이별식장에 있던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대로 은화·다윤 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기도를 올리는 이도 있었고, 가만히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어머니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도 있었고, 짧게 목례한 뒤 천천히 이별식장을 둘러보는 이도 있었으며, 준비한 물건을 두고 가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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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은화가 많이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같이 밥 먹고 싶은데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보내주는 겁니다. 우리 만날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이별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난다. 이 씨는 딸을 보내며 그렇게 소원했다. 이별식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는 언약식이었다.

남은 자가 아니라 ‘남겨진 자’

이 씨와 박 씨는 이별식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 씨는 “여러분의 간절함이 세월호를 올렸습니다. “이게 나라냐”며 상처 받은 분들도 오늘 위로받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남은 자가 아닙니다. ‘남겨진 자’입니다”라며 아직 돌아오지 못 한 5명의 미수습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2014년 11월 11일 미수습자 수색이 종료됐고 2015년 4월 22일에 세월호 인양이 결정됐다. 그리고 그 해 8월에 인양업체가 들어왔다. 지난 3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들은 미수습자를 찾아달라고 한결같이 요구해 왔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하나둘씩 돌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미수습자 가족들이 있다.

기도회에서 설교를 하던 호남신학대학교 오현선 목사는 “우리 모두는 기억공동체고 증언공동체입니다. 삶의 모퉁이에서 기억하고 증언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별식은 끝난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할 일이 있다. 이 씨와 오 목사의 말은 세월호를 잊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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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죠? 예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씨와 박 씨는 이별식에 온 사람들에게 “예쁘죠? 나 잘했지?”라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딸들이 좋아할 거라며 미소 짓기도 했다. 이 씨에게 “이제 뭐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 이 씨는 “아들 밥 해줘야지”라고 말했다.

은화·다윤 님의 유해는 25일에 화성에 있는 효원납골공원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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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사진=하민지


덧붙이는 말 | 은화 님과 다윤 님의 호칭을 '님'으로 통일합니다. 첫째는 반말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양'이라는 호칭을 써서 특정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딸'이라고 표기한 것은 은화·다윤 님의 어머니들께서 쓰신 호칭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