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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총선리포트①] 독일의 정당엔 OOOOO이(가) 있다.

Q. 빈 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정인선 2017년 10월 12일

"독일의 정당엔 OOOOO가 있다.”
Q. 빈 칸에 들어갈 말은?
A.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에 가면 그 집을 사고 싶어진다. 아늑하게 꾸며진 침실과 막 손님이 다녀간 듯한 따뜻한 주방, 그리고 모던하게 꾸며 놓은 서재를 둘러보면, 멋들어진 생활이 가까이 있는듯 느껴진다. 모델하우스는 집을 팔기 위한 공간이다. 동시에 집에서 누릴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에 대한 기대를 판매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독일 연방의회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22일, 정치발전소 '2017 독일총선기행' 참가자들과 함께 청년기민당(Junge Union)의 선거운동 전략에 대해 듣기 위해 기민당(CDU) 프로젝트 하우스를 방문했다. 미팅 약속을 잡을때 베를린 미테 지구 브룬넨 가에 위치한 '프로젝트 하우스'로 오라고 해서, “기민당 당사는 아닌 것 같은데 뭐 하는 델까” 궁금했다.

image 과거 유대인 백화점으로 쓰이다가 나치 집권기에 폐쇄되고, 2차대전 이후 소련 점령기에는 소련문화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CDU가 선거를 앞두고 단기로 임대해 프로젝트 하우스로 활용하고 있었다. 사진=최필경/정치발전소

image 사진=최필경/정치발전소

기민당 프로젝트 하우스는 딱 모델하우스같은 공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과 우리 후보를 뽑아 주신다면, 앞으로 이런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촌스럽게 직접 광고하는 대신, 시민들이 이 정당과 함께 하는 사회, 가정, 자기 삶의 미래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 공간, 정당이 시민에게 가 닿는 Accessibility 접근성을 높이는 공간.

image Emma, 5 year old girl. 사진=정인선/Deepr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커다란 로봇 팔같이 생긴 기계였다. 한쪽 벽 가득 엽서만한 종이에 "I ♡ CDU” 따위의 문구가 써 있길래, 방문자들이 직접 써 붙인 지지 문구이겠거니 생각했다. 프로젝트 하우스의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image 누가 썼을까? 사진=정인선/Deepr

image 사진=정인선/Deepr

가이드는 로봇을 “5살 소녀 엠마”라고 소개했다. 로봇 팔 옆에 있는 스크린에 전자펜으로 글씨를 쓰면, 그걸 로봇이 똑같이 종이에 써서 벽에 붙인다.

▵엠마만의 트위터 계정도 있다. 프로젝트 하우스에 직접 오지 못하는 지지자가 트위터를 통해 ‘독일의 미래’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말을 입력하면, 엠마가 대신 적어 벽에 붙여 준다. 또 유권자가 기민당에 묻고 싶은 것을 입력하면 엠마가 그에 대한 답을 적어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로봇 팔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에 담겨 트윗으로 올라온다.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의 정당 버전같기도 했다.

‘쓸고퀄(쓸데없는 고퀄리티. 뛰어난 재능이나 기술을 사소한 데 낭비한다는 의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엄청나게 정교한 기술을 갖춘 로봇으로 한다는 일이 고작 이름쓰기라니. 그렇지만 이 공간의 이름이 ‘Future’이고, “독일의 경제는 강하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걷지 않으면 계속 강하게 남을 수 없다”는 슬로건을 달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우리는 이런 사소해 보이는 곳에도 이만큼의 기술을 쓸 수 있는 나라야’ 하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image 나도 흔적을 남겼다. 사진=정인선/Deepr

그 다음 안내받은 방은 벽에서부터 방 안을 채운 전시물까지 전부 황토색 종이 박스를 재료로 만들어진 전시관이었다.

image 사진=정인선/Deepr

앞선 공간의 주제가 '미래'였다면 이 공간의 주제는 '가족'. (이렇게 방마다 주제와 컨셉이 있다.) 기민당은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수 기독교 정당이다.

“할머니와 스파게티 요리해 먹기”

“아빠와 축구하기”

“엄마와 수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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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박스를 접어 만든 아이 옷 하나하나에 써 있는 문구는 전부 기민당이 추구하는 '부모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변화시킬 미래 가정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각 가정에 자녀 수에 따라 주거 보조금이 지급될 경우 가정의 모습이 어떻게 바뀔지, 부모에게 육아휴직이 더 폭넓게 허용되면 어떻게 되는지 등. 자신들의 정책이 담보할 미래를 방 한칸에 모두 담았다.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미지 정치’에 그쳤을 테지만, 유권자들에게 믿음을 주려는 노력도 보였다.

전시관에서 나갈 때 손에 쉽게 닿는 위치에 에이포 용지 한 장짜리 유인물이 비치돼 있었는데, 그 한 장 안에 실제 기민당이 지금까지 실현시켜 온 가족정책, 앞으로 시행할 가족정책의 구체적 방안 등이 소개돼 있었다. 이상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이상향에 가 닿을 방법까지 방 한 칸만 갖고서도 책임 있게 보여주는 거다.

image CDU의 가족정책을 설명한 유인물과 CDU의 다양한 굿즈. 사진=정인선/Deepr

image 유인물에 담긴 내용은 프로젝트 하우스 웹사이트에서 훨씬 심층적으로 볼 수 있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고-믿음을 준 뒤-스스로 정보를 찾아오게 만드는 3단계 전략이다. 사진=CDU 웹사이트 캡쳐

가족정책을 한큐에 정리한 전시관을 보면서, 민달팽이 유니온과 디퍼가 함께 진행 중인 스토리펀딩 ‘튼튼한 임차인의 필수품 원룸상식사전’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리워드 ‘원룸키트’에는 일러스트 엽서 열 장이 들어 있는데,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들에게 직접 물어 본,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누리고 싶은 삶의 모습을 그린 엽서다.

image 민달팽이 유니온이 추구하는 가치를 엽서 한 장에 담았다면, 독일의 정당은 건물 한 채에 담고 있었다. 사진=정인선

친구 초대하기, (옆 방에 피해 끼칠 걱정 없이) 방 안에서 자유롭게 통화하거나 노래 부르기, 내 개성껏 인테리어 하기 등. 청년 임차인들이 바라는 미래를 담은 엽서가 세상에 처음 나와 사람들에게 가 닿은 때의 감동을 기억한다. 그런데 독일의 정당은 그 엽서 한 장에 담았던 가치와 미래를 아예 전시관 한 칸, 건물 한 채로 옮겨 놓고 있었다. 다음 전시관은 어떤 주제, 어떤 컨셉으로 채워져 있을지 기대가 부풀었다.

‘쿵, 쿵’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흘러나왔다. 2층까지 뻥 뚫린 높은 천장에서부턴 커다란 빨간색 봉제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image "경제=독일의 심장" 사진=정인선/Deepr

"심장소리를 들어 보세요. 느리지만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 마치 독일 경제처럼." 가이드의 위트 있는 말에서 유머와 자신감이 함께 느껴졌다. 스튜디오처럼 생긴 이 공간의 주제는 '경제', 컨셉은 '심장'이었다.

image 자신감의 근거를 양 옆 스크린에 잔뜩 띄워 놨다. 사진=정인선/Deepr

image 사진=정인선/Deepr

양 옆 벽에는 푸른색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독일의 경제가 얼마나 튼튼한지, 그리고 과거와 비교해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를 실업률, 노동시간 등 주요 경제지표와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의 수, 안정적 주거 환경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수, 대학에 진학한 학생 수 등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의 변화 추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image 이 스튜디오는 앙겔라 메르켈 등 CDU의 리더 정치인들이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청년 당원들과 파티를 갖는다거나, 방송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실제로 이 공간을 정당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사진=정인선/Deepr

최근에는 가족정책과 관련한 행사가 있었는데, 성인 유권자들 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많이 와서 직접 메르켈 총리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9월 12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프로젝트 하우스를 찾아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 Jörg Thadeusz와 대화를 나눴다.

image "우리가 잘 사는 독일을 위해" 사진=정인선/Deepr

다음 전시관은 조명이 거의 없이 어두침침하고, 그 사이에 키오스크처럼 생긴 스크린들이 서 있었다. 컨셉은 ‘게임’, 주제는 ‘사이버 안보’. 직접 독일을 지키는 수비수가 되어 보라는 사명이 떨어졌다.

“우리의 삶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집니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글자로만 써 두면 딱딱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산을 요리조리 움직여 어린아이를 ‘바보’, ‘걸레’ 등 악플로부터 지키는 게임을 즐기다 보니 승부욕과 함께 경각심이 저절로 들었다.

image "사이버 테러로부터 독일을 지켜라!" 사진=정인선/정치발전소

마지막 방의 주제는 ‘유로파(유럽)’였다. 통로를 지나는데 마치 롯데월드에서 ‘신밧드의 모험’을 타는 것 같았다. 흰 옷이 형광색으로 빛나는 검은 통로를 지나가면, 우주처럼 둥근 천장의 방이 나온다. 유럽연합 깃발을 연상시키는 색깔의 하늘에 노란 별이 떠 있다.

그 아래 스크린엔 “유럽이 강해져야 독일도 강해진다”는 슬로건에 맞게, 사회적 시장경제, 인권, 통합, 관용, 민주주의, 다양성 등 CDU가 유럽 국가들 간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써 있다. 방문자가 이 중 하나를 선택한 뒤, 자기 이름을 입력하면 천장에 별자리 모양으로 뜬다.

image "민주주의" -정치발전소 사진=정인선/Deepr

image 사진=최필경/정치발전소

미래, 가족, 경제, 사이버 안보, 유럽 다섯 가지 주제를 담은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다양한 포토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image 프로젝트 하우스 출구 바로 옆에 마련된 포토 부스. 사진=정인선/Deepr

▵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이모지는 메르켈이 자주 취하는 손 모양을 상징으로 만든 것이다.

가이드는 "사진을 자유롭게 찍은 뒤 꼭 SNS에 올려 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검색을 해 보니, 프로젝트 하우스를 방문한 사람들이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이 쏟아졌다. 체험을 했으면 가서 알리라는 전략이 아주 잘 먹히고 있었다.

▵내 표정 변화에 따라 이모지의 표정도 바뀐다.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삼각형을 만들면 얼굴이 똥 모양이 된다.


▵한 방문자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인증샷. 메르켈의 상징 손 모양을 따라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12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24일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도 제1당 자리를 지킨 기민당은 이처럼 세련된 방식으로 유권자들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선거운동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을까? 힌트는 지금까지 본 것과는 달리 매우 전통적이었다는 점이다. ☞독일총선리포트②에서 계속.

▵독일까지 직접 가 볼수 없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CDU 프로젝트 하우스에 직접 걸어들어가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으니까.

▵360도 영상을 통한 체험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