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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총선리포트②]선거운동, 이건 될까? 그럼 저건? 고민고민하지마

독일의 정당은 유권자의 참여를 어떻게 조직, 동원할까?

정인선 2017년 10월 23일

[독일총선리포트①] 독일의 정당엔 OOOOO이(가)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이건 될까? 저건 될까?”

독일 정당들의 선거운동을 엿보면서 속으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 출마 경험이 있는 황종섭 정치발전소 이사(정의당 이정미 대표실 비서)도 “와, 한국에서도 이런 거 할 수 있나? 선거법에 걸리겠지? 아니, 안 걸려도 정당들이 안 하겠지?” 혼잣말을 계속했다.

지난 9월 22일 오전, 정치발전소 독일 총선 기행단은 청년기민당(JU, Junge Union)과 JU의 선거운동 전략에 대해 듣는 세미나를 가졌다. 기행단은 사전에 JU에게 궁금한 점을 뽑아 미리 전달했다.

  • 선거 시기 당원들의 선거 캠페인 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유도하나?
  • 최근 선거운동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 당원 교육 프로그램은 어떤 식으로 구성돼 있나?

가장 고전적인 선거 캠페인, CONNECT17

질문지를 보낼 땐 대단한 걸 기대했다.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기민당 멤버 한나 니어마이어(25세)의 발표를 통해 본 청년기민당의 선거운동은, (황종섭 이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선거운동”이었다.

별 거 없다. 그냥 집집마다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우리 당에 대해 설명하고, 뽑아 달라고 호소하는 거였다.

image Connect17의 슬로건은 '선거운동은 문 앞에 서 있다(Der Wahlkampf Steht Vor Der Tür.)'였다. 사진=정치발전소

사실 선거 때마다, 아니 굳이 선거 시기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늘상 해 온 방식이다. 굳이 프로젝트 이름을 붙여서 호별방문을 조직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2005년, 메르켈이 처음 총리에 당선된 연방의회 선거였다. 2005년에 teAM KUKUNFT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출발, 선거 때마다 변화를 거듭해 가며 ‘CONNECT17’까지 이어져왔다.

“최근 들어 독일에서는 ‘스윙보터(swing voter)’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거 바로 전날에야 지지 후보와 정당을 결정하는 ‘언디사이디드 보터(undecided voter)가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할수록, 집에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게 중요해집니다. 가구방문은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입니다. 바깥에서 선거판을 조망할 때보다, 직접 대화함으로써 사람들은 더 많이 설득됩니다."

선거 전날에야 선호를 결정하는 유권자는 2012년에 20%였지만, 2013년에는 무려 40%까지 늘어났다. 또 AfD(독일을 위한 대안)을 비롯한 신생 정당도 늘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청년기민당이 ‘가장 고전적' 선거운동 방식에 집중하기로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선거운동도 SNS 게임처럼 즐긴다

한가지 ‘세련된’ 구석이 있다면,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당원과 지지자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할 인센티브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원이 아니더라도 지지자라면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는 ‘Connect17’ 앱은 매우 직관적이다. 문을 두드려 유권자와 대화를 나눈 뒤, 앱에 해당 가구의 주소를 입력한다. 주소 입력 창 아래엔 호감-중립-불호 세 가지 이모티콘이 있다. 그 중 하나를 눌러 유권자의 기민당에 대한 선호도를 기록한다. 이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 선거 때 어느 집이 ‘불호’이니 굳이 갈 필요가 없는지, 어느 집은 ‘중립’이니 몇 번 더 방문하면 효과가 괜찮을지 판단하는 근거 자료가 된다.

image 청년기민당 멤버 한나 니어마이어가 Connect17 스마트폰 앱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치발전소

Connect17 캠페인 참가자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유권자를 만났는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메시지 등으로 전송도 할 수 있다. 선거운동을 게임처럼 즐기게 하는 거다. 높은 순위에 오른 참가자에게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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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17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당원과 지지자들을 선발하는 등 참여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설득이 아닌 유권자 데이터 축적이 목표

청년기민당은 ‘Connect17’을 통해 지난 1월부터 9월 중순까지 약 8개월 동안 전국에서 약 100만 가구의 문을 두드렸다. 그 중 50%의 유권자가 문을 열어 줬고, 80%는 기민당에 우호적 혹은 중립적인 반응을 보였다. 본래 투표소에 갈 의사가 없었던 유권자 열 명 중 두 명은 청년기민당의 가구방문 후 마음을 돌려 투표소로 향했다.

궁금했다. 어차피 기민당이 이기고 있는 선거였다. 숫자 말고, 실제로 기민당 지지자가 아니었던 유권자를 기민당 후보 찍도록 유도해 낸 사례가 있었는지 물었다.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달라고 하자 한나는 웃으면서 “당신이 기대하는 그런 에피소드는 없다. 한 당원이 물벼락을 맞을 뻔 한 적은 있지만 용케 피했다고 한다”며 웃었다. 한 번 더 물었다. 옆에 있던 크리스챤이 이어받아 대답했다.

“Connect17 참가자 교육을 할 때, 기민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만나면 굳이 설득하지 말고 바로 돌아서라고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설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AfD 지지자인지 사민당 지지자인지도 묻지 않습니다. 다만 기민당을 지지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뿐입니다.”

정당의 유권자 데이터 수집이 불법은 아니냐는 최필경 정치발전소 이사의 질문에도 크리스챤은 황당해 했다. 그는 마침 며칠 전에 이 문제를 두고 큰 토론이 있었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디지털 사회에서 구글, 아마존 등 기업들은 훨씬 많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데, 모두 불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집하는 유권자 정보는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인∙공적인 정보입니다. 법적으로 이를 제한할 이유가 없는 거죠.”

단순히 '이번 선거에서 꼭 뽑아달라'라는 호소가 아니라 데이터 축적을 바탕으로 타겟 유권자층에게 정확히 가 닿는 정치를 하는 게 청년기민당 Connect17 프로그램의 목표였다.

선거에서 데이터는 생명이다. 누가 우리 정당을 지지하는지,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만 정확히 파악해도 많은 ‘헛발질’을 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제106조는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하여 또는 선거운동 중 입당의 권유를 위하여 호별로 방문할 수 없다”고 금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 기간과 사전선거운동 기간에도 제한을 둔다. 또 사전에 등록된 선거운동원과 자원봉사자만이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선거운동의 방식, 기간뿐 아니라 참여 가능한 사람까지 법이 세세하게 제한하고 있는 탓에,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유권자로부터 여론을 직접 들을 충분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다른 시민들에게 알리기에 제약이 크다.

파주의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들은 밤마다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현재 정의당 대표실 비서로 일하고 있는 황종섭 정치발전소 이사는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연설문, TV 토론문, 언론 인터뷰 답변지 등을 작성하는 메시지 라이터로 일했다. 당시 심상정 후보 캠프의 핵심 타깃은 20대 여성 유권자층이었다. “물론 TV토론회가 끝나면 해당 유권자층에서 지지도가 올라가는 게 숫자로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어떤 메시지에 왜 반응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선거가 끝난 뒤 심 후보 캠프는 전국 선거구 가운데 득표율이 높았던 곳들을 꼽아 봤다. 그 중에 눈에 띈 곳은, 유세를 한 번도 가지 않은 파주의 한 선거구였다. 뜬금없이 여기서 왜 득표율이 높게 나왔을까 분석해 보니, 해당 선거구에 한 대기업 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는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사람들이 선거 기간에 일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만약 호별방문이 허용되면, 당직자들과 후보들이 이런 이야기를 두 귀로 직접 들을 수 있겠죠."

김성희 정치발전소 상임이사는 “정당이 선거 기간에 유권자의 여론을 들을 통로가 제약돼 있다 보니 사기업의 여론조사에 의존해 정치행위를 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반기문 현상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당시 유권자들이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느껴 반사 이익으로 반기문 후보의 지지율이 반짝 높게 나왔고, 반 후보는 이를 근거로 출마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실체가 없었다. 또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야권 분열 필패론’을 말했지만,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여론조사에 의존하면 여론을 정확히 파악해 정치 행위를 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규제 위주 선거법은 유권자의 자기검열을 낳는다

같은날 저녁 방문한 사민당 총리 후보 마르틴 슐츠의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도 “선거운동을 이렇게 해도 되나?”하고 움츠러드는 순간이 많았다. 베를린의 젊은 유권자층을 주된 타깃으로 하는 정당인 만큼, 콘돔에 ‘#정의’ ‘9월 24일(선거일)에 둘이 함께 투표소로’와 같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 메시지를 인쇄해 나눠줬다. 이외에도 이어플러그, 연필깎이, 박하사탕, 병마개 등 '이게 대체 선거와 무슨 상관인가' 싶은 물건도 있었다. 공통점은 전부 집에 돌아가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물품들이라는 점이었다.

image #정의, 둘이 함께 투표소로! 사진=정인선

image 길에서 나눠주길래 아무 생각 없이 한 움큼 집어 왔다가, 내용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사진=정인선

image 청년사민당(Jusos)은 이어플러그, 박하사탕, 병마개 등 당장 집에 가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물품을 유권자들에게 나눠줬다. 사진=정인선

반면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선거 후보자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 배포할 수 있는 홍보물의 품목은 물론 크기와 기재 내용까지 엄격하게 제한한다. 후보자의 이름과 얼굴, 정책공약이 인쇄된 명함 뒷장에 지하철 노선도를 인쇄해 나눠줘도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이 나온 적도 있다.

독일총선기행에 함께 참가한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사민당이 콘돔을 나눠주면서 알리려는 나름의 가치가 마음에 들어 찍건, 콘돔이라는 물품에 혹해서 찍건, 그건 유권자의 양심에 맡길 문제다”라고 말했다.

“과도한 선거운동 규제는 후보자의 알릴 권리와 유권자의 알 권리를 모두 침해한다. 선거운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만 정해 두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유권자는 그걸 선호 후보를 고르는 데 판단 근거로 삼으면 된다.”

[독일총선리포트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