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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모어 아가리드리머, 사무실 책상이 사랑스러워보이기 시작했다

[2017서울청년주간]무중력지대는 나의 오늘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정인선 2017년 11월 07일

#아가리드리머 #연극배우되다

10년을 망설였다. 대학 다닐 때 월세를 하도 밀려 이사 나올 때 소금을 맞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런 내가 무슨 뮤지컬 배우인가 싶었다.

포기가 도전만큼 어려웠다. 내년이 내후년이 되고, 내후년이 3년 뒤가 되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10년이 지나 있었다. 꿈에 다가갈 수 있게 강력하게 푸시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중력지대에서의 5주, 부모님도 애인도 대신 해 주지 않던 그 일이 일어났다. ‘아가리 드리머(입으로만 꿈을 꾸는 사람)’이던 내가 오디션을 보고, 시민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섰다. 동료 배우 지인이 “OOO 배역 맡았던 분은 전문 배우야?”라고 했단 걸 전해 듣고 연극 뽕 제대로 맞았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전업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나설 용기가 새로 솟아난 건 아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회사에 있는 내 책상이 사랑스러워보이기 시작했다. 두 발 모두는 아니어도, 방구석에서 한 발을 떼어 볼 힘이 생겼다. _송진아, ‘아가리 드리머’

#집순이 #어서와모임은처음이지

타고난 집순이다. ‘모임’이란 데 생전 가 본 적이 없다. 친구를 만나도 둘씩만 만나지 무리지어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여행을 하고,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옥상 위에서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한강에 가서 치맥을 해 보기도, 수제 고추장을 만들어 먹기도 모두 난생 처음 한 일이고, 앞으로도 두 번은 없을 것 같은 일들이다.

재밌는 일이라고 할 만한 게 없던 생활에 에너지가 생겼다.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가장 강력하다는 걸 처음 느꼈다. 앞으로도 어떤 모임에 참여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또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_집순이 아름

청년공간이 뭔데?

집 근처 혹은 회사 근처에 퇴근 후 마음 놓고 들러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카페같은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요한 건 ‘카페’가 아니라, ‘카페같은’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매일 4, 5천원씩 나가는 커피값이 모이면 은근 부담이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어도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그러다가도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작은 실험을 도모해 볼 수 있는 열린 공간. 게다가 이용료는 무료. (물론 양심껏 커피값 500원을 내도 괜찮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가산디지털단지역 바로 앞 빌딩숲 사이에 위치한 무중력지대 G밸리가 딱 그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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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밸리는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 가리봉동 등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의 산업단지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무중력지대 G밸리는 이 동네에 살거나 근처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지난 2015년 1월 서울시가 문을 연 청년 개방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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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지대는 웹툰과 만화책, 일러스트북, 아트북 등 짧은 시간에 나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 위주로 채워진 ‘상상지대’, 강연, 상영회, 게임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창의지대’, 조용히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협력지대’, 그리고 자유롭게 드나들며 음식을 해 먹거나 간식을 즐길 수 있는 ‘공유부엌’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아침 시간대에는 취준생들, 점심 시간이나 퇴근 시간대에는 G밸리 인근의 노동자들이 주로 드나드는 등 시간대별로 이용객 면면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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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훈 무중력지대 G밸리 운영총괄 매니저는 “안내문이 없는 공간이 제일 좋은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거 하지 마세요, 저거 하지 마세요’ 금지 투성이 청년공간에서는 자율성이 피어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월요일에 온 사람은 금요일까지 쭉 출석 도장을 찍는 등, 제품으로 치면 “재구매율이 높아서” 빡빡한 규칙 없이도 자율적인 공간 운영이 가능하다.

대기업 퇴사 후 세계여행 말고, 지금 내 삶을 바꾸는 공간

같은 청년이라고 해도 제각기 처해 있는 상황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그래서 임병훈 매니저는 "드나드는 청년들에게 선택지를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 무중력지대 G밸리를 운영하며 가장 신경쓰는 것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같은 청년이라도 누구는 취업이 간절하지만, 누구에겐 퇴사가 간절해요. 대기업 1년차 대졸 신입사원 퇴사율이 역대 최고잖아요. 특히 G밸리 인근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겐 야근과 저임금, 고용불안 등이 큰 문제예요. 이런 상황에서 청년문제를 취업문제 하나로 퉁쳐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무중력지대 G밸리는 그래서 청년취업과 관련된 프로젝트 뿐 아니라 일터문화 개선 등 ‘취업 이후’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한다.

  • 공간문화 프로그램 ‘월간무중력’은 컨셉 자체가 ‘함께 혼자되기’다. 그 중 '상상책방'에서는 두 시간 동안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책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휴대전화와 전자기기도 모두 반납한다. 각자 책을 읽은 뒤 간단히 소감을 공유하고 헤어진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낯선 청년들도 부담 없이 왔다 갈 수 있다.
  • 땡땡땡 영화제’도 비슷한 컨셉의 프로젝트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의 장점은, 나에게 집중하면서도 옆 사람과 느슨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그대로 빌려 와, 나홀로 신청한 사람들이 와서 영화를 관람한 뒤, 후기를 나눈다. 다음 번에 볼 영화를 누군가가 신청하면, ‘정인선 영화제’ 식으로 그 사람 이름을 딴 영화제가 열린다.

  • 위의 두 프로젝트가 문턱을 낮춘 게 특징이라면, 타인과 어울리며 시너지를 얻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조금 더 끈끈한 선택지도 있다. ‘무중력 실험실’은 큰 비용이나 시간이 드는 일은 아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 지워 내려가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갈 수 있도록 서로 북돋아 주는 프로젝트다. 지난 6월 말부터 약 5개월간 9명의 직장인들이 함께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갔다.

함께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은 나의 오늘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11월 2일 열린 무중력 실험실 결과발표회에서 참여자들은 제각기 삶에, 일터에 생긴 크고작은 변화를 공유했다.

10년 동안 '아가리 드리머'로 꿈을 외면해 오던 송진아 씨는 처음으로 시민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섰고, 타고난 집순이 이아름 씨는 처음 '모임'이란 데에 참가해 봤다. 직업이 교사여서 늘 조리있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던 순찬 씨는 처음으로 아무 말 대잔치의 즐거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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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모임에 나와 버킷리스트를 지우기 위해 일주일동안 실천에 옮긴 일을 공유하는 게 고역 같았다던 참가자들은, 그나마 그 덕분에 꾸역꾸역 뭐라도 지워 나갈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손 닿는 곳에서 함께 혼자될 수 있는 공간이 보장될 때, 청년의 삶엔 이런 변화가 생긴다.

“청년정책 중엔 청년수당, 뉴딜일자리 사업 등 여러가지가 있어요. 대부분 직접적인 영향력을 크게 전달할 수 있지만, 참여 절차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죠. 반면에 공간은 접근이 아주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청년들이) 방문해서 직접 경험하면서 청년정책의 수혜자이자 주체로서 본인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뭔가 큰 도전의식이나 열정을 요구하기보다, 청년들이 공간을 통해 작은 성취를 조금씩 쌓아 나가면서 경험치를 늘려 나갔으면 좋겠어요.” _임병훈 무중력지대 G밸리 운영총괄매니저


사진제공=무중력지대 G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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