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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여성기획자컨퍼런스(1)] 우린 그만큼 해 봤고, 그만큼 잘 하니까요

정인선 2017년 11월 16일 조경숙

지난 11월 4일 토요일 오후 디퍼는 테크페미가 주최한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이하 여기컨)’에 다녀왔습니다. 개발자, 디자이너, PM 등 IT 분야의 다양한 직업군 가운데 기획자, 그 중에서도 여성 기획자로 자신만의 자리를 다져 나가고 있는 스피커 네 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두 편의 기사로 나눠 디퍼 독자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연사들의 이야기 뿐 아니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받은 청중의 질문도 함께 전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물음표 혹은 느낌표가 떠오르시나요? _Deepr 디퍼


여성 기획자는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옥지혜(테크페미/여성기획자컨퍼런스)

  • 한 줄 요약: "더 많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아야 합니다. 그만큼 해봤고, 그만큼 잘 하니까요”
  • 청중 리액션 한 줄 요약: 폭풍 끄덕끄덕
  • 오픈카톡 리액션 한 줄 요약: “기획자..뭘까...?”

지금 당장 나를 지키는 페미니즘을 하고 싶다

저는 첫 직장에서 저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이 전부 권고사직을 당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 때 저는 나름 열성 페미니스트였는데,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는 접고 가야 하는구나’하고 느꼈어요. 돈을 벌려면 좀 무덤덤해져야 했어요. 일상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사건에 매번 에너지를 쏟기에는 시간도 없고, 솔직히 ‘짤릴까봐’ 무서워, 늘 감각들을 회피했어요.

그러던 중 작년에 강남역 사건이 터졌고,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지키는 페미니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에 공감 받고 싶기도 하고, 혼자이고 싶지도 않아 ‘테크페미’ 제안을 하게 됐어요.

아무런 목적도 없이 15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강남역 사건 1주년 추모 사이트를 함께 만들고, 그때그때 이슈가 터지면 성명서를 함께 쓰기도 했어요.

기획자=리더+커뮤니케이터, 그럼 ‘여성 기획자’는?

기획자는 무슨 일을 할 지 정하고, 어떻게 할 지를 고민해서, 그 일이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테크 업계에서 기획자는 리더이자 커뮤니케이터인데요, 이게 여성이 하기엔 꽤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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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ISCA라는 미국 정보기관에서 테크업계 내 여성이 마주하는 문제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43%는 “멘토가 적거나 없다”고 답했고, 42%는 “롤모델이 테크업계 내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면 조롱을 받는 경우가 많으니, '너무 나댔나?’ ‘너무 직설적이었나?’하고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를 남들도 똑같이 받고 있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성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성차별에 대한 인내가 포함된다

여성의 커뮤니케이션에는 반드시 성차별에 대한 인내가 포함됩니다. 특히 저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는데, 서른 이전의 여성을 대할 때의 방식이 매우 성차별적이죠.

제가 실제로 일을 하며 들은 말들입니다.

“개발팀에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아저씨들밖에 없으니, 여자인 네가 가서 이야기 하는 게 더 설득력 있다.”
“너는 여자이니 꼼꼼하고,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도 많이 써 봤을테니, 화면 기획은 네가 해라.”

총체적 엉망이죠. 그렇지만 문제제기 그 자체가 (기획자 업무의 중요한 요소인) 협업의 걸림돌이라고 여겨지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은 거죠.

테크 업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임금 노동을 하는 여성 전반에 대해,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인 것이다’ 혹은 ‘너는 힘들면 금방 튕겨나갈 거잖아’ 하는 식의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린 그만큼 해 봤고, 그만큼 잘 한다

테크페미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문제는 명백히 여성들이 처해 있는 문제'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어졌습니다.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없는지, 그럼에도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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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강연은 이미 많지만, 주로 남성 연사들이 진행합니다. 물론 배울 점이 많죠. 하지만 제가 여성 기획자로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답은, 기술을 습득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불만에 대해) ‘너는 예민해’라는 대답 대신, 내 경험을 긍정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참석한 모든 연사가 페미니즘과 테크의 접점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각자 기획자로 어떻게 버텨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얻은 팁은 뭔지 이야기하실 겁니다. 이런 자리 자체가 매우 적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 이유는, (우린) 그만큼 해 봤고, 그만큼 잘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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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팬이 교육 앱 1위가 되기까지, 넓고 얕은 기획

정인혜(슈퍼팬 기획자)

  • 한 줄 요약: 책, 책, 책!
  • 청중 리액션 세 줄 요약: 진짜 딱, 기획자들이 서로 지식을 공유하러 온 분위기, 서로의 지식을 유용하게 받아 먹는 유쾌한 분위기. 업무 노하우, 실제 읽은 책 리스트가 슬라이드에 뜰 때마다 곳곳에서 ‘찰칵'
  • 오픈카톡 리액션 두 줄 요약: 좋은 사수를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후임에게 좋은 사수가 되기 위한 노하우가 궁금해요!

강연 전 여기컨 스태프 분들과 사전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기획자가 될 수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저도 잘 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 안에서 잘 하는 기획자가 되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하는 기획자=성공 사례를 만들어 낸 기획자

잘 하는 기획자가 있다며 소개를 해 준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뭐 성공 시켰어?” “어떤 서비스 했는데?”

현실에서는 구구절절 됐고, 성공 사례가 있어야 하고, 성공 사례를 여러 번 만들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잘 하는 기획자로 인정받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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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갭이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서 내공 쌓기의 출발점을 찾아야 했어요. 일도 잘 하고, 나도 잘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 거죠. 제겐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1. '뭘 해야하지?’보다 ‘왜 해야 하지?’부터 생각하기: '왜?’를 먼저 생각하면, 일단 업무가 늘 너무 많으니까 각각의 업무에 얼마나 강약조절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조금 어렵고 힘든 상황이 발생해도 견뎌낼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물을 그러면서 내는 것 같아요.

  2. 나아지는 것에 초점 맞추기: 모든 걸 최고로 잘 할 순 없더라도, 제품을 개선해 나가듯 나도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컴포트 존’에 머무르며 그냥 편하게 기획한다면, 계속 비슷한 기획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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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책: 이 컴포트존을 넓혀준 게 제겐 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읽습니다. 기획을 잘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읽기에서 끝내지 않고, 늘 이런 식으로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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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과 내공 쌓기를 일치시키는 방법

저는 지금 퀄슨에서 ‘슈퍼팬’이라는 영어 교육 콘텐츠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데요, 영화 미드 토크쇼 등 재밌는 영상들로 즐겁게 영어공부를 하는 서비스입니다. 슈퍼팬을 기획하는 과정과 제 내공을 쌓는 과정을 어떻게 일치시켰는지 사례를 들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1. 초기 기획: 진짜 문제가 뭔데?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기획은 2형식이다>(남충식)와 <기획의 정석>(박신영) 두 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두 책 모두 핵심 메시지가 기획의 핵심은 진짜 문제를 찾는 거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러려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그 ‘왜’를 해결해 주는 게 우리 제품이면 된다는 거죠. 슈퍼팬도 이 방정식에 넣어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태스크는 ‘유튜브 영상으로 영어 공부 하는 앱을 만들어라’였는데요, ‘왜 유튜브 영상으로 영어를 공부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습니다. 제가 생각한 답은 ‘유튜브는 다양하니까, 좋아하는 영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였어요. 그럼 왜 좋아하는 영상으로 공부해야 하지?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본질적 문제를 정의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걸로 공부하지 않아서 꾸준히 못 하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아도 제품에 적용했을 땐 많이 달랐습니다.

  2. 결제 전환율 개선: 서비스 철학을 곳곳에 심자
    결제 전환율을 개선하는 과정에선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이랑주)라는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핵심은 “고객의 눈에 철학이 훤히 보여야 한다” 였습니다. 유저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플로우가 조금 길어지더라도 우리 서비스만의 철학을 얻는 실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원 가입 전 단계에 워크스로우(walkthrough)를 넣어 왜 우리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넣었습니다. 물론 다른 여러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서비스 철학을 눈에 보이게 하는 요소를 곳곳에 넣어 두니 결제 전환율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3. 네이밍: 직관성 있는 이름, 일반적이되 완전히 일반적이지 않은 이름
    처음 네이밍을 할 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슈퍼팬의 컨셉이 ‘좋아하는 걸로 공부해서 영어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앱’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팬(fan)이 되면 영어가 된다’고 사고를 확장했습니다. ‘그럼 그냥 팬 말고 ‘슈퍼팬’을 만들어버리자!’해서 즉흥적으로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유저가 좀 모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나더라고요. ‘슈퍼맨’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많았고, (‘빨간펜’이 연상되시는지) ‘슈퍼펜’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심지어 친한 친구는 ‘피터팬’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웃음) 잭 트라우트의 <포지셔닝>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좋은 이름의 특징이 1. 직관적인 이름 2. 카테고리를 대표할 수 있는 이름 (즉, 일반적이면서도 완전히 일반적이지 않은 이름) 두 가지라고 하더라고요. 다음 서비스를 만들 땐 이 원칙을 꼭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다음 달엔 ‘리얼클래스’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런칭합니다. ‘클래스’이니 수업이라는 게 직관적으로 들어오고, 영화 미드 애니 등 실제(리얼) 콘텐츠를 수업에 활용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네이밍인지는 시장에 나와 보면 알게 되겠죠?

그런데 내공은 혼자 쌓을 수 있어도, 이상한 사수를 만나면 혼자서 노를 아무리 열심히 저어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또 그에 앞서 좋은 배, 그러니까 좋은 회사를 만나야겠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물이 아니라 땅에 정박하고 있으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윽박지르는 회사는 아닌지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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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사례 하나가 쌓이면 내공의 급이 달라진다

성공 사례를 하나 만들 때마다, 다른 급의 내공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할 땐 (다음 번에)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지만, 성공하는 법은 못 배웁니다. 반면 성공을 경험하고 나면 ‘이렇게 해야 성공하는구나’를 배울 수 있고, 그래야 더 빨리 성장합니다.

앞으로 몇 년 후에 잘 하는 기획자가 될 것 같으신가요? 저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안에는 ‘잘 하는 기획자’가 되어야겠다고 느낍니다. 근데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프로젝트 기간을 기준으로 10년이면, 1년이 한 프로젝트 정도이니 열 번의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네요. 이 기회들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지 고민 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성장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되게 경계해야 하는 일이긴 해도, 그보다 성과 없는 일에 열심히 하는 게 더 슬프잖아요. 안 그래도 힘든데, 좋은 사수, 그리고 좋은 회사와 함께 즐겁게 기획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정인혜,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 제공
여성기획자컨퍼런스(2)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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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은 2형식이다, 남충식
- 기획의 정석, 박신영
-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이랑주
- 포지셔닝, 잭 트라우트, 알 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