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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조사, 정치인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댓문댓답] 당신이 궁금한 공론조사의 모든 것

정인선 2017년 11월 23일

정부가 시민참여를 통해 중요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합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는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열려, 최초로 전국 규모 공론조사가 진행됐습니다. 471명의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시민대표참여단은 3개월 동안 배우고, 토론하고, 서로 설득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정책권고안을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25일, 지자체 중에선 처음으로 의사결정과정에 공론조사 방식을 도입한다고 밝혔고, 정부도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 사안에 공론화 등으로 국민참여를 넓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대 대체 공론조사가 뭘까요? Deepr 디퍼는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공론조사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궁금해 하는 공론조사에 대한 모든 것, 디퍼가 전문가들에게 대신 물었습니다. _Deepr

  • 공론조사가 뭐예요? 여론조사와 어떻게 다른가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본격 가동되기 한달여 전인 지난 8월 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민주연구원 주최로 ‘탈원전과 신고리 5, 6호기 공정한 공론화 방향 모색’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날 발제를 맡은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여론조사와 구별되는 공론조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숙의’를 꼽았습니다.

여론조사가 대규모 시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조사하는 거라면, 공론조사는 “과학적 표집을 통해 200~400명 정도의 대표성을 가진 시민들을 선발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숙의하게 한 다음 공적 판단을 도출하는 공공참여의 한 방법”이라는 게 이영희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영희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선호취합(preference gathering)
  2. 숙의(deliberation)

공청회나 여론조사, 국민(주민투표)가 선호취합 방식에 속한다면, 합의회의와 시민배심원 제도, 공론조사 등은 ‘숙의’ 방식에 속합니다.

여론조사=조사, 공론조사=여론 형성

22일 김지형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지형 위원장은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진행 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했는데요. 첫 번째 차이는 참여자의 구성입니다. 공론조사에선 전체 시민을 대표하는 표본을 구성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경우 우선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사전조사를 한 뒤, 이들 가운데 거주 지역과 연령, 성별을 고르게 안배해 478명을 ‘시민대표참여단’으로 추출했다고 합니다.

김지형 위원장이 말하는 두 번째 차이는 이영희 교수가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숙의’인데요. 478명의 시민대표참여단은 약 한 달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동안 온라인 강의, 학습자료, 전문가 강의 등을 통해 주제에 대해 상세히 공부했습니다. 또 최종적으로는 2박 3일동안 조별 토론, 전체 토론에 참여하며 서로의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제각기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여론조사가 말 그대로 ‘조사’라면, 공론조사는 숙의를 통한 여론 ‘형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4대강 사업도 공론조사로 정하자?

  • 중요한 사회갈등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나요? 공론조사로 결정하기 적합한 이슈는 어떤 이슈인가요?

김기환 독자님이 댓글로 남겨주신 질문에 김지형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은 공론조사 방식이 어떤 단위에서 행해지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이번에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문제를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한 건, ‘전국민적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한 이슈’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원전의 위치는 울산 쪽에 있지만 이걸 그냥 지역 문제로 보지 않고, 전 국민적 이슈로 봤고, 그렇게 해서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논의를) 시작한 거였습니다.”

디퍼는 김지형 위원장에게, 그럼 앞으로 또 어떤 사회갈등이 공론조사와 같은 방식으로 논의될 수 있다고 보는지도 물어봤습니다. 김지형 위원장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을 들어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과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문제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4대강사업 같은 걸 공론조사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을 하시기에, ‘아, 그런 사안이라면 우리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다뤘던 사안과 비슷한 정도로 중요하게 다룰 수 있는 사안일 수 있고, 전 국민적 관심과 의견 수렴이 필요한 사안으로 볼 수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최근에는 지자체에서도 공론조사 방식을 정책 결정을 위한 의견 수렴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지난 10월 25일 <시민참여형 의사결정을 위한 공론화 사업 기본 계획>을 발표한 서울시가 대표적입니다.

10월 26일 한국일보는 서울시의 이 계획과 관련해 “어떤 의제를 공론조사에 부칠지는 여론조사로 정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서울시 강윤애 갈등조정담당관 갈등조정팀 주무관은 이에 대해 22일 디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사업이 확정된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여론조사에 부치기보다는, 시정 주요사업이라던지 이슈화 된 사업 위주로 (공론화) 계획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는 특히 ‘공론화추진단’을 구성해서 그 안에서 세부적인 이슈를 결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요. 지난 2013년 출범한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이 이 공론화추진단에 일부 들어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서울시의 <시민참여형 의사결정을 위한 공론화 사업 기본 계획>은 이곳에 일부 공개돼 있습니다.

한편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어떤 의제를 공론화로 해결할지 정하는 것 역시 경우에 따라 그 자체로 갈등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 단위의 경우) 국회 원내 정당들 간의 합의로 결정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지문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는 정부의 자의적 결정 대신,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경우 20만 명 이상이 청원을 하면 답변을 해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국민의 혹은 지자체 주민 일정 수 이상이 요구할 경우 공론화 의제로 삼거나, 국회의원 또는 시∙군∙구의원의 몇 분의 일 이상이 요구할 경우 공론화 의제로 삼는 등의 방법도 고민해 볼만 합니다."

  • 공론조사가 자칫 ‘이슈 블랙홀’이 돼버리면 어쩌죠?

이두현 독자님의 위와 같은 질문에 김지형 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공론조사는 제임스 S. 피시킨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가 고안해, 1991년 저서 <민주주의와 공론조사>에서 처음 소개했습니다. 피시킨 교수가 고안한 방식의 공론조사는 지금까지 세계 27개 국가에서 100여차례 이상 시행됐는데요, 대체로 6개월에서 9개월의 기간동안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그보다는 좀 더 짧았죠.) 만약 공론조사가 굉장히 장기화된다거나 하면, 한 이슈에 여론이 지나치게 집중될 우려가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장기적으로 공론조사를 시행한 사례는 없습니다.
또 공론조사의 목적 자체가 ‘의견 수렴’이라는 것도 중요한데요. 그래서 전체 국민을 논의에 다 포함시키는 게 아니라, 대표성을 띄도록 구성한 일정 수의 ‘시민 대표’들이 한정된 기간 동안 의견을 모읍니다. 여론조사와 공론조사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죠. 따라서 한 이슈가 다른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거라는 우려는 크게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 다른 나라에서도 공론조사란 걸 많이 하나요? 공론조사 결과는 어떻게 쓰이나요? 해외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공론조사 방식의 여론 수렴을 해 본 국가에서 공론조사 결과가 실제 정책 결정권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공론조사 결과는 정책 자문 정도의 역할을 합니다.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는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엄밀히 말하면 일반적인 공론조사보다 한 발 더 나아간 형태입니다. 본래 공론조사는 어떤 결론을 내지 않고, 단지 조사 결과를 정부에 전달하는 것까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번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조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러이러한 내용을 권고한다는 권고안까지 전달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먹고살기 바빠도 여론 형성에 똑같이 기여할 수 있을까

  • 아르바이트 노동자, 취업준비생 등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공론조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시간을 빼기 어려울 수 있는데, 결국 여유 있는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건 아닌가요?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에 끝까지 참가한 시민대표참여단에게는 총 85만원의 참가비가 제공됐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숙의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는 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는데요. 그럼에도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이나, 스스로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의 경우 참여의 기회가 배제될 수 있지 않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김지형 위원장은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해당 문제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김 위원장은 “사전조사에 참여한 2만여 명 가운데 무려 6000명이 공론화위원회에 참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중 500명을 지역과 성별, 연령을 고려해 추출했습니다. 추진단 내부에서도 시간적 제약이나 각자의 형편 등으로 인해 500명 가운데 350명 정도만 참여해도 양호하다고 봤는데, 실제로 9월 오리엔테이션에는 478명이, 10월 2박 3일 합숙토론에는 471명이 참여하는 높은 참여율을 보였습니다. '노 쇼'가 거의 없었던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표성을 띈 집단을 골라 내는) 샘플링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는 어떤 방식을 적용하더라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였는데요. 한 부소장은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에는 지역과 성별, 연령 분포는 고려됐지만 직업, 소득수준 등까지 고려해 샘플링이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더 오랫동안 받게 될 청소년 등 미래세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없는 구성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기도 합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회의원이 있는데 시민대표참여단이 왜 필요하냐고요?

  • 국회의원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숙의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와 각각 어떻게 다른가요?

김지형 위원장은 최근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민은 다음 선거를 의식할 이유가 없다. 그만큼 사안을 보는 눈이 정치적이지 않고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퍼는 전화 인터뷰에서 “오히려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만큼 시민 의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는데요. 김지형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가 만든 이야기는 아니고, 제임스 피시킨 교수가 공론조사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지역구 의원의 경우 큰 국가적 의제를 전체 국익 차원에서 생각하기보다 지역 유권자들의 이해관계에 좌우되기 쉽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의 경우 당론에서 자유롭기 어렵고요. 공론조사를 통해 지역대표성과 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의견을 모은다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고리5,6호기 시민대표참여단이 10월 14일 종합토론회에서 전문가와 질의응답을 주고받고 있다.

숙의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는 대립항이 아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은 “대의민주주의는 무조건 나쁘고, 숙의민주주의는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론화 등 숙의 과정을 통해) 기득권과 무관한 일반 시민들에게 정책 결정 과정을 개방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입니다. 또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전문가 독재’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 역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약속한 공약을 후퇴하는 데 숙의민주주의를 동원한다면 그건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지난 11월 16일 열린 '민주주의자의 변론: 직접민주주의라는 착각’ 특강에서 “정치인 또는 이해당사자가 빠진 채 소위 '순수한 시민'이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정책 결정 행위에는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하는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그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라고 신중한 입장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동의를 구하는 과정

  • 공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신뢰하나요?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공론조사 결과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전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론조사에 앞서 해당 이슈를 공론조사에 부쳐야 하는 이유가 뭔지를 전체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합니다. 또 공론조사에 참여하는 시민참여단 뿐 아니라 다른 시민들에게도 (해당 이슈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지속적으로 공개돼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공론화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공론조사 결과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더라도 정당성 시비를 줄일 수 있고, 숙의민주주의의 의미에도 더 맞습니다.”

사단법인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취재 지원을 받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