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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서울, 애증의 ‘부동산’

우리집, 아니 내 집은 어디에?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하민지 2017년 11월 24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마민지 감독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는 위와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 내레이션은 이렇습니다. “이 도시의 운명은 우리 가족의 운명이다.”

image 사진=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포스터.

서울은 여러분에게 어떤 곳인가요. 제게는 애증의 도시입니다. 공부할 기회, 일 할 기회가 많은 곳이지만 이곳에 정착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저는 현재 경기도에서 보증금 300에 월세 30만 원 월셋방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서울로 이사하려고 방을 알아봤더니, 제가 가진 돈으로는 반지하나 옥탑방밖에는 살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땠을까요. 88올림픽 전후, 모두가 중산층을 꿈 꾸던 경제 호황의 장밋빛 시대도 잠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됩니다. 출근하는 척하던 아버지, 노숙자, 빚더미에 올라 앉은 사람들이 늘어나던 때가 그때였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소위 ‘잘 나가던 시대’를 잊지 못 하고 아직도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image 사진=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젊고 잘 나가던 시절의 마 감독 부모님.

“이거 우리 집 얘기 같아”하는 분들 계실 거예요.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는 한국 현대 경제사의 흐름 속에서 사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일지라도 ‘내 얘기 같다’며 공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공통된 경험과 정서를 공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진 가난의 대물림, 아직도 ‘부동산 한 방’을 꿈꾸는 부모님과 현실과 타협 중인 나. ‘즐거운 우리집’은 이제 바랄 수 없는 걸까요. Deepr민달팽이 유니온이 마련한 게스트 하우스 파티 <버블패밀리> 공동체 상영회에서 마 감독과 관객에게 물어봤습니다.

“결국 우리는 지는 게임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

다큐멘터리는 부모님의 가난, 그게 지긋지긋했던 마 감독의 독립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부모님은 이른 바 ‘집 장사’로 한몫 챙겼던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1970~80년대,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나고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의 경제 호황이 계속되면서 마 감독의 부모님은 건설 사업에 뛰어듭니다. 집을 짓고, 짓자 마자 파는 것입니다. 그러다, 주택 개발 제한 지역에 개발이 풀릴 것이란 얘길 듣고 전 재산을 투자한 부모님은 결국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됩니다.

부모님은 아직도 ‘땅 부자’를 꿈꾸십니다. 그러나 마 감독을 포함한 우리 세대의 소원은 ‘독립’입니다. 학자금 대출 갚기도 버거운데, 부동산 투자라니요. 조금 작아도 좋으니,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우리 세대의 소망과 부모님 세대의 소망은 이렇게도 다릅니다. 영화는 집을 둘러싼 세대 갈등의 원인을 현대사 속에서 추적합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이 “너희에게 가장 영향을 미쳤던 한국 현대사가 뭐냐”라고 질문하셨어요. 제가 IMF라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이 놀라시더라고요. 기성세대 입장에선 이미 지나간 역사고, 충분히 논의가 된 얘기이지만, 당사자의 얘기는 충분치 않았단 생각이 들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마 감독이 얘기하는 당사자는 부모님과 자기 자신입니다. IMF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기는 하지만, 그때 무너진 집안의 경제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한국의 현대 경제사와 마 감독 가족의 사적 이야기가 알맞게 균형을 이루며 진행됩니다. 마 감독의 부모님이 잘 나가던 시절, 마 감독의 어머니는 매일 ‘홈 비디오’를 찍었습니다. 홈 비디오의 마지막 촬영 년도는 1997년. 작은 빌라로 이사 가기 전, 마지막으로 넓고 좋은 아파트 집을 촬영한 어머니는 그 이후 한 번도 홈 비디오를 찍지 않았습니다.

image 사진=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마 감독의 어머니가 찍은 홈 비디오 중 한 장면. 어린 시절 마 감독의 모습과 고급스러운 아파트.

현대사 속에서 마 감독 가족의 이야기를 봤을 때, 가난이라는 불행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 모릅니다. 급하게 진행된 경제 계발 이후 맞이한 IMF는 모두에게 가난을 안겨줬습니다. 영화 내래이션의 한 구절처럼, 결국 우리는 지는 게임을 하도록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와 우리 가족은 내 집 하나 없는 서울 땅에서 이제 어떤 집을 꿈꾸고 바라야 할까요.

부동산이 아닌 생활 공간으로서의 ‘집’

마 감독의 부모님은 투자 실패 이후 큰 아파트를 정리하고 건너편 작은 빌라로 이사갔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그 집에 쭉 살고 계십니다. 마 감독은 월셋방을 얻어 독립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부모님 집의 집 주인이 이 집을 젊은 애들 좋아하는 원룸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니 집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마 감독은 자신의 소중한 독립을 포기한 채, 부모님의 집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image 사진=민달팽이 유니온 '게스트 하우스 파티' 공동체 상영회 현장. (왼쪽)하민지 기자, (오른쪽)마민지 감독.

기자: 지금도 계속 부모님과 살고 계시는 거죠?
마 감독: 네. 독립하고 싶어요. 인터넷을 통해 계속 알아 보고 있는데, 한 번 알아보기 시작하니까 그만 두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나가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독립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이 돼요. 관객분들과 같이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관객: 부모님 세대의 주거 문제가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와 연결돼 있잖아요. 살면서 필요한 주거 형태나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마 감독: 정릉에 예술인 마을이 있어요. 거기에 독립 영화 감독들이 많이 살고 계세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마을을 만들어 살면 서로 도움도 주고 받고 좋을 텐데, 지금은 한 군데밖에 없어서 아쉬워요. 저도 열 번 넘게 이사를 다녔거든요. 500에 30, 옥탑방, 물 새는 곳으로 다니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image 사진=민달팽이 유니온 '게스트 하우스 파티' 공동체 상영회 현장.

기자: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대안 공동체나 대안 마을 같은 주거 형태를 꿈꾸시는 거예요?
마 감독: 독립 공간이 필수로 보장된 상태에서 마당 같은 데 나오면 관심사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관객: 우리가 정원 딸린 집에 살기는 이제 어려울 거예요. 이런 현실에서 희망이 있다고 보세요?
마 감독: “지금만 견디면 잘 될 거다”라는 생각들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유예시키는 걸 우리 세대가 너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학자금 대출 같은 빚 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부모님 세대는 박정희 정권의 시대정신을 배우셔서 그런지 “노력하면 잘 될 거야”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저한테는 그 희망이 잘 보이지 않아요. ‘현실 인식을 했는데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기자: 맞아요. “그 다음은?”이라는 것에 대한 답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유독 우리 세대에 대안 가족, 유사 가족, 비혼에 대한 열망이 큰 것 같아요. “그 다음은?”에 대한 뚜렷한 답은 없지만, 지금까지 답습해 왔던 문제들을 반복하기는 싫은 거죠.

부모님 세대에겐 집이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겠지만 우리 세대에겐 안전하고 독립적이며 대안 가족과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 공간으로서의 집. 물론 “그 다음은?”에 대한 답과 현실보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아직 요원합니다. 부모님 세대와 무수한 갈등을 빚으며 ‘그 다음’에 대한 답을 찾는 우리는 생활 공간으로서의 집을 언젠가 가져볼 수 있을까요.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서남권 주거의제 거점공간 조성사업’으로 민달팽이 유니온의 취재 지원을 받은 기사입니다.

커버사진=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계약' 위에 '우리 집 행복'이라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