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내 동의 없이 지어진 이름, 새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의 이름은 ①] 어머니 성씨와 자신의 이름에 대한 20~50대의 다양한 고민들

하민지 2017년 12월 01일

배우 유아인 씨가 요즘 화제입니다. 이른바 '넷페미'들과의 선전포고를 하며 장문의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로 시작한 이 글에는 본인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까지의 과정이 짧게 실려 있습니다. Deepr 기자들은 유아인 씨의 글 중 자신의 누나 이름을 설명한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작은누나의 이름은 한글로 ‘방울’이다. 그때까지는 내 조부모들의 귀한 자식들인 내 부모가 가진 자식들이 딸 둘 밖에는 없어서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으라고 할머니가 그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엄방울’ 불쌍하고 예쁜 이름.'
부모님이 이름을 지어줄 때, "내 이름 그렇게 지어도 됩니다"라고 동의했던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대개 이름에는 부모의 바람이 투영되고, 우리는 그저 그 이름의 무게를 지고 삽니다. 성씨도 본인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아버지 성씨만 물려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아인 씨의 누나처럼,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여성이 이름이 아무렇게나 지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Deepr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고민했던/하지 않았던 5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성을 붙여 쓰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 호적상 이름을 그대로 쓰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페미니즘 실천을 이어가는 사람 등, 이름에 대해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또한, Deepr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독자의 의견을 받습니다. 딸은 이제 끝이라는 '말자, 말순, 끝순'이나 다음은 꼭 아들이라는 '후남, 필남'의 이름을 가진 분들, 동의 없이 지어져 새로 이름을 만든 분들, 호적상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지만 그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분들 등 이름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계신 독자분들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1.

• 이름

박김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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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23살

• 나는?
대학생, 교회 전도사

• 나의 젠더는?
전형적인 남성으로 저를 인식하고 있어요. 이성애자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 이름이 왜 그래요?
호적상 이름에 어머니 성을 붙였어요. 어머니가 박씨고 아버지가 김씨예요.

• 언제부터?
정확한 건 기억 안 나는데, 1년 가까이 되가는 것 같아요. 법적으로는 ‘김성록’이어서 공식적 서류엔 ‘김성록’이라 쓰고, 공식적 자리가 아닌 자리에선 저를 ‘박김성록’이라고 소개해요.

교회 주보엔 ‘김성록 전도사’로 올라가 있는데, 가끔 어떤 교인들은 저를 ‘박김성록 전도사’라고 불러요. ‘박 전도사’라고 불릴 때는 상당히 기뻤어요. 평소에는 아버지 성으로 대표되는 ‘김 전도사’라고만 불리다가, 어머니 성으로 대표되는 ‘박 전도사’로 불리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 이름을 바꾼 계기가 뭐예요?
불현듯 바꾸게 됐어요. 어느 날, 제가 편의점에 밤 늦게 야식 먹으러 가고 있었는데, 여성인 친구가 저한테 그런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성록이 너가 이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어떤 느낌이야?” 라고 물어 봤는데, 그때 많이 깨달았어요. 저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밤길을 걸어가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저는 잠재적 가해자일 수도 있단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그때부터 생활 속 언어부터 들여다보게 됐어요. ‘여신’은 있는데 ‘남신’은 없고, ‘여왕’은 있는데 ‘남왕’은 없고, ‘여인’은 있는데 ‘남인’은 없잖아요. 3인칭 단수 남성은 ‘그’인데 여성은 그’녀’고요. 언어가 남성중심으로 단단히 고정돼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나는 이 언어부터 바꿔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부모님’을 ‘모부님’이라 부른다든지, 교회에서 ‘형제 자매’를 ‘자매 형제’로 불렀어요. 그리고, 제 이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름을 바꾸기 전에 역사적으로 추적해보니까, 여성 차별이 심각했더라고요. 저는 ‘은폐’의 개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 성만 물려 받을 때, 여성들은 은폐돼요.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나서 집안에 있는 남성들이 다 죽었는데 여성 한두 명이 살아있더라도, “대가 끊겼다”라고 표현했잖아요. 성씨에서 여성의 존재가 은폐되고, 대를 잇는 건 남성의 성씨뿐이라는 점이 억압적인 차별 구조라고 분석했어요.

image 박김성록이 읽은 책. 사진=동녘

그러다 강남순 선생님이 쓰신 <정의를 위하여>라는 책을 읽고 성씨에서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걸 더 깨달았어요. 어떤 사람은 “외국에선 여성이 결혼할 때 남성의 성으로 바뀌는데, 그에 비하면 한국은 나은 거 아니야?”라고 질문하기도 하잖아요. 강남순 선생님은 “성씨가 바뀌는 것보다 바뀌지 않는 게 더 심각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이유가 부계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이 가문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문에 받아들일 수 없어서 여성의 성을 남성의 성으로 바꾸지 않은 거래요.

저는 종교와 관련된 학문을 전공했기 때문에 강남순 선생님의 말씀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유교에도 영생이 있어요. 유교에서는 가문과 이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계승한다고 봐요. 그런데 남성의 성씨만 계승되니까, 생명의 존속은 남성만 담당하게 돼요. 이런 유교적 사상에 비춰봤을 때, 유교에서 여성은 생명을 계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어머니랑도 제가 이름을 이렇게 바꾼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어머니가 감동 받아서 우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있어요. 이 이름을 사용하면 은폐됐던 우리 어머니가 나타나니까요.

• 그럼 성록 님은 페미니스트인 거예요?
음... “잘 모르겠다”는 게 제 대답이에요. 일단 저는 페미니즘에 있어서 언제나 예외라고 생각을 해요. 원칙은 (페미니즘의 주체가) 여성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페미니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제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고, 없고가 결정될 것 같아요. 다만 분명한 것은, 페미니즘은 남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1차적으로는 이 사회의 차별 구조로부터 여성이 해방돼야 하고, 2차적으로는 이 사회의 차별 구조에 복무하는 남성 역시 해방돼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여성 차별 구조를 종식시키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이름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름이 왜 그러냐”고 항상 물어봐요. 성씨야 말로 차별적인 구조라고 설명하면 “듣고 보니 그렇다”란 말을 제일 많이 들어요. 물론 관심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역차별 운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다”고 했어요. 근데 또 어떤 사람은 “그럼 나중에 자식들 이름은 어떻게 정할 거냐? 자식 성은 몇 자야?”라며 묻기도 해요.

• 그러게요. 자식 이름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건 지금은 생각이 없어요. 저에게 중요한 건 현재예요. 지금이 바뀌지 않으면 나중에 뭘 바꿀 수 있겠어요. 그래서 엄마 성을 앞에 뒀어요. 사실 ‘박성록’이 돼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요. 그럼 항상 또 등장하는 말이 “남성은 어디갔냐? 역차별이다”인데, 하지만 제가 박성록이 된다고 했을 때, 누군가 제 이름을 불편해 한다면 “왜 지금의 ‘김성록’에 대해서는 똑같은 불편함을 가지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2.

• 이름

줄라이

(인터뷰 시 가명 사용. 법적 본명으로 사회생활 중.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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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30대 중반

• 나는?
페미니스트

• 나의 젠더는?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성.

• 이름에 어머니 성이 없네요?
아버지 성을 물려 받는 게 가부장제의 전통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이름보다 당장 제 현실을 위협하는 문제들에 더 큰 관심이 있어요. 저한테는 지금 당장 안전한 것, 여성이 자신의 경력만큼 사회에서 인정 받는 것, 큰 컨퍼런스가 열릴 때 10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 스피커 비율을 보지 않는 것, 비례대표로 여성 국회의원을 겨우 뽑아주지 않으면 여성 정치인이 거의 나올 수 없는 구조인 것이 더 시급한 문제예요.


3.

• 이름

김윤지우

(인터뷰 시 가명 사용.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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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비가 오면 몸이 쑤시는 오십줄.

• 나는
페미니즘을 살아내는, 고체가 아니라 액체같은 사람.

• 나의 젠더는
뒤늦게 젠더 정체성에 대해 고민 중.

• 이름이 왜 그래요?
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 어머니 성을 붙였어요. 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김 씨고 어머니가 윤 씨예요. 그래서 ‘김김윤지우’인데, ‘김윤지우’라고 정했어요.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성을 붙인 셈이에요.

• 이름에 대한 고민은 언제부터 했나요?
사실은 90년대부터 ‘양성쓰기 운동’이 있었어요. 그때도 고민을 했지만, 바꾸진 못 했어요. 법적으로 바꾸려면 절차가 되게 복잡해요. 형제들까지 싹 바꿔야 되더라고요. 현재 페미니즘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데, 이 직업을 갖기 전에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부터요. 아빠가 김 씨여서 ‘윤김지우’로 하려다가, ‘굳이 아빠를 넣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image 양성 쓰기 운동은 지난 1997년 3월 8일, 한국여성대회 참가자들이 '부모성함께쓰기 운동'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양성쓰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모 커뮤니티 '양성쓰기' 검색 화면 갈무리.

저는 페미니즘 신학을 전공했어요. 엄마와 증조할머니도 신학을 하셨어요. 증조할머니는 옛날 일제시대에 신학 공부하신 다음 교회에서 목회자로 활동하셨어요. 그러다보니 엄마 쪽으로 이어지는, 나도 모르는 끈끈한 정신적 맥락 같은 게 있어요.

그리고, 할머니의 한스러운 삶도 잘 알고 있어요. 증조할머니는 20대에 40대 남자랑 결혼해서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가셨어요. 시집 가셔서 줄줄이 애 낳으시고, 남편은 죽고, 혼자가 돼서야 신학을 하시고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활동을 하셨어요. 외할머니도 남편이 바람나서 혼자 우리 엄마와 이모들 네 명을 줄줄이 키우면서 사셨고, 저도 이혼하고 10여 년 동안 애 둘 키우고 살면서 페미니스트가 됐어요.

가부장제의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삶을 몸소 겪고 살아낸 증조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저로 흐르는 페미니스트적인 핏줄이랄까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어요. 이런 정신적인 흐름이 있어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요.

image 여성신학은 1960년 대에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교계 전반에 펼쳐져 있는 여성 억압적 현실과 성차별주의를 드러내고, 교회에서 억압당하는 여성들의 '인간화'를 실천하는 학문이다. <여성의 삶, 그리고 신학>은 한국 여성신학을 대표하는 책이다. 사진=대한기독교서회

현재 시점으로는 조금 후회하기도 해요. ‘성 자체를 붙이지 말 걸’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실 혈연이라는 게 어떨 때는 참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특히 페미니스트로 살다 보면 혈연으로 마음을 같이 한다기 보단, 사회적으로 엮이고 서로 돕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힘이 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성을 붙이는 게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후회하고 있어요. 그래도 어쨌든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모계에 흐르는 혈통을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어요.

• “모계 성씨 붙여봤자 어차피 다 남자 성씨 아니냐”라는 비아냥도 있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나’를 기준으로 봤을 땐 엄마의 성을 붙여 명명해서 사람들한테 불리는 게 의미가 있어요. 물론 나 자신이 엄마 성을 따를 건지, 아빠 성을 따를 건지 선택할 수 있는 게 제일 좋겠죠.

그런데 양성 다 써서 호적에 올릴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게 90년대예요. 얼마 되지 않았어요. 호주제가 폐지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저런 비아냥은 의미가 없다 생각해요.


4.

• 이름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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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40대 초반

• 나는
도시 재개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는 사람.

• 나의 젠더는
남성

• 언제부터 그런 이름을 썼어요?
15년 정도 됐어요. 예전에 양성 쓰기 운동 있었을 땐 양성을 쓰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같이 각자의 별명을 주로 썼어요. 그때는 사진 작가들이 별명을 자주 썼는데요, 그때는 제 별명이 ‘토리’였어요. 근데 ‘토리’라는 이름이 사진쪽이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양성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박김형준’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아버지 성 먼저 쓰면 ‘김박형준’인데요, 현재 어머님과 살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아버지 성을 뒤로 붙이고 어머니 성을 앞에 붙인 지 15년 됐어요.

• 그냥 ‘김형준’이란 이름으로 작가 활동 해도 됐을 텐데요.
학생운동이나 여성운동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그때는 아예 성을 빼고 활동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 분들의 활동을 당연히 지지했지만, 제가 판단할 때는 성을 빼고 활동하는 게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운동보다 덜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부작용이 있었냐면, 예를 들어 이름이 ‘민지’라고 하면, 성이 ‘민’이고 이름이 ‘지’인 줄 아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이렇게 성 떼고 이름 두 글자만 쓰면 외자 이름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아예 부모 성을 다 붙여서 이름을 네 글자를 쓰고, 사람들이 물어보게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싸이월드에 ‘박김형준’이란 이름을 썼는데 누리꾼들이 방명록에 많이들 물어봤어요. 저는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그랬죠.

• 그럼 형준님은 여성운동을 위해서 사회적 실명을 새로 만든 거예요?
결론적인 건 그렇긴 한데요,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부모님이 일찍 이혼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왜 아버지 성만 달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아예 성을 빼는 것보다는 여남의 성을 같이 쓰는 것들부터 조금씩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이름을 이렇게 쓰기 시작했어요.

image 사진=네이버 '박김형준' 검색 화면 갈무리.

• 작가로 이름 걸고 활동하다 보면,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누리꾼들이 많이 불어보더라고요. 일본 이름 같다면서요. 그 외에 사람들이 많이 비아냥거리진 않았어요. 사진 작가 이름이라 그런지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간 것 같아요. 오프라인에서 조심스럽게 실명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어요. 네이버에 제 프로필 검색하면 ‘박김형준’이라고 떠요. 처음에는 ‘김형준’이라고만 뜨는 거예요. 알아 보니까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연예인이 아니면 본명을 써야 된대요. 그래서 제가 활동 내역과 전시 내역을 보내주니까 이름을 바꿔줬는데, 괄호 치고 ‘김형준’이라고 써 놨더라고요.

• 형준님은 페미니스트인가요?
페미니스트를 지지하고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저는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어요. 제가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너무 자만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남성으로서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 페미니스트라고 얘기 하는 것은... 저는 이성애자 남성이고 연령도 많아요. 이미 갖고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한다면 거만한 일이에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어머니 성을 붙인 이름으로 살면 어떤 게 좋은가요?
저는 저 자체가 기분이 좋아요. 아버지를 부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를) 함께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 성을 같이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제 이름 앞에 어머니 성을 붙였다고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저 스스로 만족감을 느껴요.


5.

• 이름

홍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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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서른 살

• 나는
좌파/기독교인/페미니스트. 멀쩡한 다른 인간들이 사는 게 궁금해 문학을 전공하다 망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저자.

• 나의 젠더는
여성이지만 젠더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 호적상 이름을 그대로 쓰네요?
양성 쓰기를 처음 알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차적으로 고민했던 건 ‘양성을 쓰는 나와 파트너를 만났을 때 자식은 성이 4개가 되는 건가?’였어요. 또, 성을 잇는다는 게 개인보다는 가문의 아이덴티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잖아요.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어요. 그렇다면, ‘할 수 있으면 이름에서 성을 떼고 쓰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 성을 붙이면 이름이 ‘김홍혜은’이 되는데요, 내가 성을 떼든 ‘김’을 붙이든 사회는 나를 ‘홍혜은’이라고 대우하는 거예요. 다른 선택지를 나에게 주지 않았어요. 그런 조건에 내가 이미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물려받은 성을 떼고 싶고 바꾸고 싶어도 호적이 나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그럼 ‘홍혜은’이란 이름을 갖고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성과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법적 실명을 드러내면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 저에게는 의미가 있어요. 제 이름에는 예전에 제가 했던 일들이 연결돼 있으니까요. 이런 연속적인 실천과 활동과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했어요.

활동명을 갖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활동명이나 가명을 자주 바꾸면서 자기 자신의 서사에 연속성이 단절되는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활동명을 만드는 건 유보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것도 영향력이 있어요. 그런데 자기 이름을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에도 의미가 있어요. 연속성과 책임감을 의미해요.

image 홍혜은은 저서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되기까지, '저소득층 중년 여성'인 엄마와 등졌다가 '여성'의 이름으로 다시 관계 맺게 되기까지에 대해 썼다. 사진=아토포스

• 앞으로 이름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거예요?
그렇진 않아요. 가령 법적으로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면 성을 바꿀 수 있잖아요. 얼마든지 ‘김혜은’으로 바꿀 의향이 있지만 ‘홍혜은’이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스트 실천을 이어온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커요.

물론 이름을 새로 짓는다는 게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과 주체성을 갖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 성함은 원래 지으려고 했던 이름이 아니에요. 외할아버지랑 동사무소 직원 사이의 잘못된 소통으로 지어진 이름이죠. 저는 이 이름이 엄마에게 붙어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래서 엄마가 언젠가는 본인이 불리고 싶은 걸로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현재 저는 사회적 자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이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남들한테 많이 공격 받을 글을 내놨을 때, 그걸 가명으로 내놨을 때와 본명으로 내놨을 때 글이 읽히는 방식이 다르겠죠. 저는 제 이름으로 내놨을 때의 무게에 책임을 진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제 이름과 제 이름으로 써 왔던 글, 해왔던 활동을 그대로 이어나가면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어요.

성경을 보면 이름 짓는 일은 창세기부터 나와요. 아담은 모든 생물체에 이름을 붙여서 지배하고 다스렸어요. 이름은 모든 문화권 통틀어서 주술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는 아이가 살길 바라는 인생대로 지어줘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가 새로 명명하는 건 의미가 있어요.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고, 이름의 기표에 기의가 연결되는 건 사회적 합의로 이뤄지잖아요. 저 혼자서 이걸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칙을 세우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만약 가명을 만든다면 ‘그 이름으로 내가 떠나는 게 혹시 숨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름에 대해선 아직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