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빈 칸으로 시작된 이름을 내 힘으로 채워오기까지

[너의 이름은②] 독자 기고 <이름에 대한 단상>

D Deepr 2017년 12월 02일

독자 은비 님이 기고해 주신 글입니다.

전 애인에게는 8살 차이가 나는 누나가 있었다. 그 언니의 이름은 ‘그냥저냥 살라’는 뜻이다. 누나 기가 약해야 아들이 나온다는 할아버지의 굳은 믿음에서 비롯한 이름이었다. 할아버지도 면은 있었는지 가족 몰래 한자를 바꿔 호적에 올렸다. 당사자는 서른이 넘어서야 이 사실을 알고 개명했다.

남자 형제를 위해 이름붙여진 언니들

한 지인은 오빠의 안녕을 위해 이름을 여러 번 바꿔야 했다. 10대일 때 한 번, 성인이 되고 또 한 번.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오빠의 일이 생각보다 잘 안 풀렸다. 부모님은 싫다는 지인을 물리치고 강제로 이름을 받아와 바꿔버렸다. 다행히 이분은 탈 가정에 성공했고, 지금은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내 이름은 ‘은비’다. 한글이고, 90년대 생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만화 캐릭터 이름과 같다. 멀쩡해 보이는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겠나 싶겠지만 스무 살이 되면 개명부터 하고 싶었다. 엄마의 성을 이름에 추가하는 성씨 변경 말고, 그저 은비라는 이름이 싫었다. 뜻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글이라서가 아니라, 날 사랑해줄 사람들이 고심하고 바라서 불러준 이름이 아니고 별 의미 없이 뚝 떨군 이름이란 생각이 강해서.

'무명이' 보다는 '은비'가 나으니까

엄마는 나를 낳기 전 성별 확인을 하지 않았다. 장남인 아빠의 어머니는 실망한 모양이었고, 아빠의 아버지는 장남의 요청에도 손녀의 이름을 지어주길 거부했다. 그리고 내 출생 이후로 3~4년간 나를 모른 척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태어난 나는 한동안 나름 무명기를 가졌다. 어른들이 '이 애를 어쩌지' 고민하던 중에 누가 “은비 예쁘지 않아?”해서 붙인 이름이 지금의 내 이름이다.

한동안 ‘은비’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했다. 한 교수님께서는 "네 이름에 왜 뜻이 없냐"며, 엄마 아빠는 그분들의 바람을 담을만한 가장 예쁜 글자를 찾았을 것이라 하셨다. 그 말씀에 마음이 갔다. 좋고 싫고를 넘어서, 우리 가족 내에서 내 존재와 내가 맺은 관계에 얽혀 있는 여러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항상 아쉽다. 환영받지 못했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 그 가운데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꿈틀댔던 기억들.

이제 과거에 대한 유감은 별로 없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이 날 많이 사랑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부모님, 특히 아빠의 기억과 나의 기억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간극이 있다. 내가 정보다 무관심에 더 익숙했다 한다면, 아마 아빠는 배불러 하는 헛소리라 하실지 모른다. 그 가상의 외침은 계속해서 내가 가진 아쉬움과 의심을 또 의심하게 만든다.

'원래 어른들은 그래, 네가 이해해….’

귀엽게 말해 방울이지, 사실상 엄홍식 씨의 누나에게 주어진 이름은 음낭이다. 일상적 언어로, 불알.

이름이 한 사람의 일생을 모두 정의하지는 못하지만, 삶의 시작에서부터 투영된 주변의 바람은 그 사람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은 타인의 의도로 시작하고, 그 의도에 따라 길러진다. 귀남, 막례를 넘어서 보다 세련된 형태로.

빈 칸으로 시작된 이름을 내 힘으로 채워오기까지

수많은 누나들이 태어나지도 않은 남동생을 위해 살았듯, 내가 어딘지 모를 허함과 함께 자라야 했던 건 아마 내 이름의 의도가 빈칸으로 시작한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렸을 적 내가 '새 이름에 반드시 넣어야지' 했던 글자는 '인연 연(緣)’ 자였다. (아이 유치해!)

대학에 오고, 여유가 생기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나는 내 힘으로 나의 이름을 채워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응원받고 신뢰받으면서, 그리고 가진 것이 많은 것을 복으로 여기면서 나는 어느 정도 ‘나’로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은비’가 가장 순수한 이름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엄마, 아빠와 내가 만나 함께 맞추었을 이름. 뜻이 글자로 박혀있지 않아서, 누군가를 위해 지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내 의도로 채울 수 있는 그런 이름. 오롯이 내 몫인 이름. 누가 불러줘도 좋을 그런 이름.

그럭저럭 살라는 바람을 넘어

누가 더 자기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는가를 따지고 싶지 않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에 맞는 고민이 있다. 하지만 ‘차별적 사랑’이든 뭐든 성별 위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던지 시혜를 받았을 남형제들에 비해, 나와 같은 여형제에게 ‘나’에 대한 고민은 다소 길을 돌아오는 듯하다.

왜 나는 이렇게 불려야 했지? 왜 나는 일차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지?

그럭저럭 살라는 바람, 오빠를 위해 살라는 바람, 우여곡절 끝에 비워진 바람으로 덮인 사람들에게 부차적 존재로서의 나와 대상으로서의 나는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쳐 가고 치열하게 극복해야 할 관문이다. 내가 가진 아쉬움은 여기에 있다. 나도 남이 아니라 나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쉽게 ‘은비’라는 이름 밑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좋고도, 또 좋고도, 항상 아쉽다.

cover=트위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