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남자 신발 두기'는 여성 자취 꿀팁이 될 수 없다

여성 1인 가구 안전 정책이 성평등 교육을 필요로 하는 이유

윤지원 2017년 12월 14일

Deepr는 9월 18일, Season 2. Episode 1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 에서 다음과 같은 취재 요청을 받았습니다.
“여성 1인 가구의 심리적인 불안, 근본적인 해법은?”
독자 koq4046님은 “여성 1인 가구는 늘 안전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살아요. 가족과 떨어서 혼자 살다 보니 ‘지금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와 내게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누구 한 명 구하러 오기 힘들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 현실의 다음 단계로써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Deepr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상세히 말해주셨습니다.
응모에 참여한 다른 독자도 "당사자로서 불안이 점점 심해집니다. 불안과 공포를 간간이 느낄 때마다 무력해지고요. 하지만 이건 대책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목소리와 대책이 쏟아지면 좋겠습니다. 십 년후에도 비혼여성으로서 제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요.”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 귀가할 때 매일 같은 길로 다니지 마세요.
  • 분홍색 커튼 달지 말고, 검정색 블라인드를 다세요.
  • 절대로 혼자 산다고 말하지 말고, 집 사진을 SNS에 올리지 마세요.
  • 엘레베이터 탈 때, 곧장 집이 있는 층에 내리지 말고 다른 층에 내려서 계단으로 가세요.

이쯤 되면 간첩도 아닌데, 내 집으로 가는 길 한 번 참 힘들다 싶다. 인터넷에 '여자 혼자 자취를 시작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내용이다.

‘자취 꿀팁’은 여성이 안전하게 살기 위해 해야할 것, 하지 말하야 할 것을 규정짓는다. 심지어는 그 ‘트릭’도 이미 간파됐다고들 한다. 정말 여성은 집을 ‘여성스럽게’ 꾸미면 안 되고, 남성이 있는 공간인 척 해야 할까? 왜 여성 1인 가구는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아야할까?

image 사진=네이버 웹툰 '공복의 저녁 식사' 장면 갈무리

같은 환경, 다른 공포

민달팽이 유니온은 올해 5월 청년 가구 주거안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20~30대 응답자 242명이 응답했고 이 중 남성 123명, 여성 117명이다(기타 2명). ‘귀갓길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유(복수응답)’에 여성의 67%가 ‘누군가로부터 물리적 위협을 당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반면 남성 가운데 25%만이 같은 응답을 해, 40% 넘게 차이가 났다. 한편 남성의 30%가 '위험을 느끼는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지만, 여성은 불과 6%만이 이렇게 답했다.

집 안에서 겪는 위험 상황에 대한 응답도 성별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누군가 몰카를 찍고있다는 의심이 들었다'에 남성의 11%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여성은 그 두 배인 22%가 그렇다고 답했다. '낯선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했던 적 있다'는 질문에도 여성은 18%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10%가 그렇다고 답해, 범죄 가능성이 있는 물리적 상황에 처한 경험이 여성에게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위험한, 위협적인 상황을 겪은 사례’를 묻는 항목을 남성은 123명 중 11명만이 채워 적었지만, 여성은 절반에 가까운 50명이 구체적인 경험을 적어 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큰 차이로 주거불안을 느끼고 있다. 집은 안팎으로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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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달팽이 유니온이 청년 가구 주거안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만든 인포그래픽. 상대적으로 주거불안과 위험을 크게 겪는 여성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홈 스윗 홈’ 속에 숨겨진 여성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도, 집 안에서도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대체 여성이 사는 곳은 어떻게 해야 안전해질 수 있을까. 민달팽이 유니온은 지난 11월 집과 관계를 맺는 요소에 대해 탐구하고 논하는 ‘다정한 집담회’를 3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11월 19일 열린 ‘다정한 집담회’ 1회차 주제는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의 집’이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1 연구위원인 김영정 박사가 발제하고 박미리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리서치랩 연구원, 한겨레 토요판에 ‘이런 홀로’를 연재 중인 김혜지 작가가 패널로 참석했다.

김영정 박사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인 '집'에도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에 대한 은유나 상징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1. Home : 가족 구성원의 친밀한 관계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정 폭력이 친밀함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는 공간이기도 하다.1

  2. Family : 가족 내에서 여성은 다른 가족을 보살피는 돌봄 노동의 역할을 담당한다.

  3. House : 과거 여성 잡지는 집 내부를 청소하고 예쁘게 단장하는 것을 여성 주부의 전문적인 역할로 학습시켰다.

김 박사에 따르면 전통적인 집-여성 담론은 여성의 영역을 집 안으로 한정짓고, 여성은 가족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성별 이분법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공사 구분과 성별 분업의 원칙에서 ‘부지런히 치울 임무’는 여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며, “1인 가족의 경우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안락한 공간을 즐기는 것과 그것을 마련하는 것 모두 자신의 몫일 것이다. 반면 가족은 공동의 공간을 위해 마땅히 n분의 1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가부장제의 집-가정 담론이 수행되는 가정 살림의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성, 특히 주부에게 할당된다”_김주현, 2016, 집과 가정:젠더와 주거 디자인

독립=자유로운 신체+주체적인 자아

김 박사는 연구 표본으로 만나는 여성 인터뷰이들이 혼자 사는 것의 장점으로 ‘자유’를 압도적으로 꼽는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독립은 본가에서 나온다는 신체적인 자유뿐 아니라 남성의 통제와 보호 하에 있는 가부장제로부터의 자유를 같이 의미한다.

딸에게만 요구되는 통금 규정에 대한 불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혹은 집 안에서도 브래지어를 아버지 앞에서 쉽게 벗어던지지 못하거나, 남성 형제의 밥이나 빨래를 누나와 여동생이 대신 해야 하는 경우 등도 그렇다.

저는 집주인의 손녀가 아닌데, 왜 저를 통제하는 거죠?

그러나 본가에서 나왔다 해서 가부장제의 견고한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패널 김혜지 씨는 과거 살던 집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임대인은 60대였는데 평소에도 20대 여성인 김 씨에게 임차인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선 관계를 요구했다.

“남자친구라도 방문하는 날이면 난리가 났어요. 마치 손녀를 단속하는 것처럼 ‘엄마에게 이르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문제가 있을 때 당사자인 제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제 부모님에게 말한다는 거예요. 이 단속의 구조가 너무 웃기더라고요. 제가 남성 세입자였어도 어르신이 똑같이 대하셨을까, 남성이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을 여성 세입자가 많이 겪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됐어요.”

경첩 좀 고쳤다고 '1등 신랑감’?

한 여성 참가자는 “집 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사실 성인 여성이라면 할 수 있는 수준인데도 기술 교육을 많이 못 받았다. 배선이나 전기, 수도 등에 대한 지식을 학교에서 많이 접하지 못하고 컸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여성이 직접 문제를 진단해서 고칠 수 있게 하는 교육과 사회적인 분위기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미리 연구원 역시 “전구를 가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는데, 부모님께서 남동생을 시키거나, ‘네가 남동생이 있어서 이 집에서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거야’란 말을 하시더라. 마치 남동생이 아버지를 대신해 나를 지켜주는 사람처럼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김혜지 씨도 “혼자 살기가 벌써 7년이기 때문에 웬만한 정도는 내가 수리한다. 한 번은 여자인 친구네 집에 경첩이 느슨해졌길래 내가 고쳐줬다. 그걸 친구가 찍어서 올리면서 여자인 제게 농담으로 ‘1등 신랑감’이란 제목을 붙이더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 역할 프레임이 강하다고 느꼈다”고 공감했다.

집 수리는 전통적으로 남성 영역에 속했기 때문에 여성은 관련 기술에 접근할 기회 자체가 적다. 재해·재난 생존 교육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여성의 재난역량 실태와 정책과제’(김동식,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재난에 더욱 취약한 ‘재난 약자’다.

  1. 여성은 재난에 대한 대비와 대응에 필요한 자원에의 접근성이 낮고

  2. 관련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적으며

  3. 여성에게는 어린이나 노인 등을 재난 상황에서 돌봐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김영정 박사는 "어린아이 등 약자를 챙기는 역할이 여성에게 있다 보니 가장 늦게 탈출하게 된다. 실제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다. 또한 남성은 소방 훈련·민방위 훈련 등 자기방어 훈련이 돼 있다. 하지만 여성의 안전 교육은 기껏해야 ‘누가 뒤에 있으면 전화하는 척을 한다’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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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달팽이 유니온 '다정한 집담회'에서 발표 중인 김영정 박사. 사진=윤지원

여성안심정책 신청 오히려 꺼리기도

종합하면 여성 1인 가구의 안전 문제는 범죄·폭력에서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여성이 이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란 것을 사회 구성원이 인지해야 한다. 여성 1인 가구 주거 안전 정책이 성평등 인식 개선 정책을 동반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미리 씨는 “여성안심귀가 등의 정책이 당장 필요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이런 정책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느낀다. 오히려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런 정책을 신청해도 ‘나 혼자 살고 있어요’라고 드러날까봐 꺼려진다. 배달음식 시킬 때 ‘문 앞에 놔주세요’라고 말해도 안전할 수는 없다. 배달하는 분이 내가 그렇게 부탁하는 이유가 여성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내 존재를 지워나가는 것의 한계를 요즘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1.0 → 3.0, 보호 대상에서 안전 주체로

서울시는 늘어나는 여성 범죄에 대비하기 위해 2013년부터 ‘여성안심특별시 정책’을 시행한다. 여성안심특별시 정책은 2013년 1.0 버전, 2016년 2.0 버전을 거쳐 2017년 3.0버전까지 발표됐다. 김영정 박사는 이후 Deepr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단계별로 사안에 대한 접근 방식이 조금씩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 버전에서 나온 정책은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나 '여성안심택배'로, 주로 범죄로부터의 안전에 집중했다. 2.0 버전의 슬로건은 '안전에서 안심으로’ 이었다. 일상 속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난과 재해로부터의 특히 취약한 여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대됐다. 기존의 서울시 재해·재난 메뉴얼을 성인지 관점에서 분석하고 보완해 재난 취약자인 여성 1인 가구 맞춤형 메뉴얼을 제작하는 사업이 여기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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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여성 보육 청소년 홈페이지의 여성안심특별시 3.0 정책 설명. 성평등 의식 개선을 위해'평등서울', '존중서울'에 배치한 교육 항목이 눈에 띈다.

김 박사는 여성안심특별시 정책이 단계별로 확장된 배경에 대해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에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여성의 안전이란 단순히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돕는 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성 평등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핵심이란 인식이 생겼다. 조금 더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정책뿐 아니라 교육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 정책도) 개선 지점을 찾아 (단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에게 안전이 큰 이슈인 것은 여성이 쉽게 폭력의 타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평등한 사회 분위기가 밑받침되지 않는 이상 범죄는 계속 일어납니다.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성은 쉽게 해하거나 혐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것이 사회적으로 학습돼야 합니다."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서남권 주거의제 거점공간 조성사업’으로 민달팽이 유니온의 취재 지원을 받은 기사입니다.

Cover=통계청 공식 블로그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당신의 다음 반 발짝을 고민해 보세요.
✔ 정인선 기자가 추천하는 책 혼자 살아가기: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송제숙 저/황성원 역,동녘)을 읽어 보세요.
✔ 기사 속 여성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집-여성 담론, 재난 약자 등의 개념이 흥미로우셨던 분들은 윤지원 기자가 참고한 연구 자료를 읽어보세요.
- 김주현, 집과 가정:젠더와 주거 디자인, 2016
- 서울시여성가족재단,포괄적 안전 개념에서 본 서울여성안전도시 구축을 위한 연구-재난재해로부터의 안전을 중심으로, 2015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인지 관점의 재난관리 매뉴얼 개발, 2016


  1. 김영정 박사의 소속을 ‘서울시여성가족복지재단’에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으로 바로잡습니다. (수정: 2018년 1월 29일 16:44)